‘작고 불편해도 좋아!’
몽당연필 깎고 또 깎으며, 몽당연필 손에 쥐고 하루 종일 뭔가를 쓰고 또 쓴다.
서울에서부터 갖고 있던 몽당연필들. 회사 다닐 땐 좋은(?) 필기구가 많아서 거의 쓸 일이 없었는데 산골에 오니 드디어 제 몫을 한다.
이 작은 연필들. 끼워 쓸 볼펜 대 챙기느라 애먹고, 손에 꽉 잡히지 않아서 힘겹고, 툭하면 깎아야 하니 귀찮고, 눈에 훤히 보이는 길쭉한 새 연필들 외면하느라 애달팠고. 이 산골에서도 몇 번이나 버릴까 말까 망설이게 만든 몽당연필들을 차마 버리지 못하고 곁에 두었다.
이 봄, 잘되면 내 입도 먹고살고 잘되지 않아도 내 마음만큼은 이미 행복하게 먹여 살려 준 어떤 일을, 평화와 만나고 싶은 어떤 길을, 작심하고 몽당연필로만 쓰고 또 쓰고 있다.
그렇게 몽당연필로 채워 간 종이가 어느덧 수십 장이 넘는다. 엄청 못 쓰는 글씨지만 몽당연필로 써 내려간 덕인지 다시 들여다보는 마음이 왠지 흐뭇하다. 서울에서 장수까지 그 먼 길 이삿짐에 몽당연필 빼놓지 않길 참 잘했지.
작고 불편한 몽당연필. 조심조심 손에 쥐고 자꾸자꾸 깎다 보니 작아서 불편하기보단 정겹고, 자주 깎아야 해서 번거롭기보단 오히려 사각사각 재미난 연필 깎는 그 시간이 기다려진다.
오후에 깎은 몽당연필 가운데 세 개가 어느새 뭉툭해졌다. 그만큼 내 마음도 평화로워진 것만 같다. 이 마음 그대로 안고 슬그머니 잠자리에 들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