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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골짜기 혜원 Apr 22. 2019

“좋다, 참 좋아. 쑥이 절정이야!”

절정에 이른 쑥 노동과 산골혜원표 쑥버무리

가운뎃손가락보다 조금 긴 쑥. 은은한 보랏빛이 감도는 푸릇한 자태가 참 멋스럽다. 뜯고 싶은 열망을 마구 불러일으킨다.


“좋다, 참 좋아. 쑥이 절정이야!”  

절정에 이른 쑥의 은은하고 멋스러운 자태.


듣는 사람도 없는데, 쑥 한 움큼 잡을 때마다 혼잣말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엄지손가락보다 작던 어린 쑥과는 달리 뜯기도 좋고 바구니도 쑥쑥 들어찬다. 한낮 햇볕이 등을 따갑게 내리쬐고, 등허리에 허벅지까지 쑤시는 데다가 잔가지에 숱하게 손을 긁히면서도 도저히 쉴 수가 없다.


지금이 절정인 쑥. 지금이 지나면 쏜살같이 쇠어 버린다는 말과 같기에 이 순간을 도저히 비켜가지 못하겠다.

어스름 무렵까지 쑥을 뜯고는 큰 대야에 좌르륵 부어 고이고이 씻는다. 씻으면서 느낌이 왔다.


‘오늘 쑥 덩이 꽤 나오겠구나!’


철퍼덕 주저앉아 쑥 뜯기 시작!
쑥이 커서 쑥쑥 바구니가 차고, 푸르던 쑥밭은 휑하니 사라지고~.


오래간만에 들통까지 꺼내 쑥을 데친다. 역시나 올봄 들어 가장 많은 쑥 덩이가 나왔다. 쑥 나눌 식구들이 이 사람 저 얼굴 자꾸 어른거리지만 저장을 위한 쑥은 이제 그만해야겠다. 자연이 준 선물일지라도 왠지 더 하면 욕심이 될 것 같으니.


후우, 뭔가 여한이 없는 기분이 들면서 힘이 쑥 빠진다. 앉고 일어날 때마다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오는 걸 보니 ‘절정의 쑥’에 눈이 멀어 무리를 하긴 했나 보다.


절정에 달한 쑥 노동의 결과물. 뜯을 때 잘 뜯으면 씻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아요.
올봄 들어 가장 많이 쑥을 한 날, 오래간만에 들통까지 꺼내 쑥을 데친다.


쑥 데칠 때 만들어 둔 쑥버무리를 저녁 삼아 먹는데, 찔끔 눈물이 날라 그런다. 밀가루랑 소금, 물만 넣은 울퉁불퉁 못생긴 쑥버무리가 너무 맛있어서, 그리고 어릴 때 꼭 이런 모양새로 쑥버무리를 쪄 주던 엄마 생각이 밀려와서.


참 신기하지. 뜨끈하고 담백한 쑥버무리에서 엄마가 삼십 년도 더 전에 해 주셨던 그 쑥버무리 맛이 느껴진다. 한 입 두 입 먹고 또 먹어도…. 


그래도 그렇지, 내가 만든 음식에서 한참 전에 하늘로 떠난 엄마 손맛을 느끼다니! 아무래도 절정에 이른 쑥과 어우러진, 절정에 달한 쑥 노동이 너무 힘겨웠나 보다. 그래, 그래서 그렇게 느꼈을 거야.


밀가루, 소금, 물만 넣어 찐 산골혜원표 쑥버무리. 먹을 때마다 돌아가신 엄마표 쑥버무리가 생각난다.


왠지 어디선가 환하게 웃는 엄마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바보야~ 난 밀가루도 많이 풀고 설탕도 듬뿍 넣어서 만들었는데 어떻게 맛이 같겠니? 갓 뜯은 산골 쑥으로 담백하게 만든 산골혜원표 쑥버무리가 아마도 훨씬 더 맛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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