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부부 고구마순 심은 이야기
점심 전 고구마순 심을 땐 해가 짱짱했다.
한 가닥 두 가닥 흙속에 고이 넣어 준다. 이 푸릇하고 가는 줄기에서 주렁주렁 실한 고구마가 열리다니…. 햇볕이 뜨거워 그랬을까, 왠지 마음이 시큰하다.
작은 텃밭에서 그래도 큰 자리를 차지하는 고구마 밭. 여섯 골 김매는 데는 일주일쯤 걸린 듯한데(종일 일한 건 아님) 심는 데는 두 시간도 채 안 걸린다.
올봄 마지막 농사, 고구마를 다 심고 허리는 뻐근해도 마음만은 뿌듯하게 점심밥을 먹고 있는데 어라, 하늘이 갑자기 흐려진다. 밭에 있을 때 해는 뜨거워도 바람이 시원하게 불더니만 설마, 비님이라도 오시려나? 한동안 가물기만 했지 날씨 예보에 분명 비 소식은 없었는데. 비만 와 주신다면, 물 많이 먹는 고구마가 엄청 좋아할 텐데!
그 뒤로도 해가 났다, 들어갔다 오락가락한다. 하늘만 살짝 흐려지면, 욕심인 줄 알면서도 바라게 된다.
‘비야 와라, 비님 부디 와 주세요.’
하늘 보며 내내 그러고 있으니, 애틋하고 따뜻하게 봤던 일본 영화 제목 하나가 불쑥 떠오른다.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만일 예고에 없던 비님이 오시면 애타게 물 기다리는 고구마순한테도, 농사 서툰 산골부부 삶에도 기적이 내리는 기분이 들 것만 같다. 산골부부 고구마순 심은 날,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예보에 없던, 생각지도 않던 고마운 비님이 찾아오시는 기적이! 아, 설레고도 설레는 마음….
오전에 고구마순을 심고 나서 오후 내내 기다리던 비는, 어쩌면 진짜로 벌어질지도 모른다고 두근두근 기대했던 ‘자연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저녁에 마을회관에서 만난 아주머니가 그런다.
“오늘 찌뿌드드하게 후덥지근하기에 비 올지 모른다고 생각은 했는데 이 저녁 시원해진 걸 보니 비는 가신 것 같네요. 가을에는 찬 기운이 돌면 비가 오는데 봄에는 후덥지근한 게 이어져야 비가 와요. 그러니 기다리지 말고 밭에 물 줘요.”
자연에 기대했던 기적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아주 살짝 아쉽긴 했지만 괜찮다. 고구마순 심고서 딱 한 밤 자고 난 뒤부터 장대비가 시원하게 죽죽 내리고 있으니까.
넉 달쯤 지나면 저 여린 줄기들 아래서 큼지막한 고구마를 캐게 될 테지. 기적이 뭐, 따로 있나. 하루 이틀 그렇게 자연의 힘으로 고구마가 조금씩 자라는 시간들이, 나에겐 언제나 새롭고 놀라운 기적인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