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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골짜기 혜원 May 25. 2019

예쁘다고 바라볼 수만은 없어요

슬프고도 달콤한 찔레꽃차 만들기

요즘 마을 곳곳에 모내기가 한창입니다. 손모내기 풍경은 볼 수 없지만 찰랑찰랑 물이 넘칠 듯 말 듯한 논에 작은 모가 좌르륵 늘어선 모습은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흐뭇합니다. 


이맘때면 저절로 흘러나오는 노래가 있죠.


모내기 전에 돌아가리라, 
찔레꽃이 피기 전에 돌아가리라~♬

동학농민혁명과 얽힌 아프고도 당당한 우리 역사를 담고 있는 노래, ‘돌아가리라.’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을 테지만 이맘때면 자주 생각나곤 합니다.


언제 나타날지 마냥 궁금했던 새하얀 찔레꽃. 드디어 앞산에 뭉게뭉게 피어났습니다.
꽃망울이 활짝 피기 전, 지금이 찔레꽃차 만들기에 딱 좋아요.


모내기랑 찔레꽃 피는 때가 엇비슷하다는 건 여기 살면서 저절로 알게 되었어요. 이 논 저 논 차곡차곡 모가 들어서는 모습을 보면서 언제 나타날지 마냥 궁금했던 새하얀 찔레꽃. 드디어 앞산에 뭉게뭉게 피어났습니다. 어느새, 정말로 꽃 폈더라고요!


예쁘다고 바라볼 수만은 없어요. 꽃망울이 활짝 피기 전, 지금이 딱 좋으니까요. 바로 찔레꽃차 만들기!


올봄 첫 찔레꽃 따기. 처음이니까 조금만 합니다. 시동 걸듯이 말이에요. 앞산이 좀 그늘져서 꽃이 아직 적기도 하고요. 달콤한 찔레꽃을 벌들도 참 좋아하는지 여기저기서 ‘윙~’ 소리가 끊이질 않습니다. 


‘크게 죄지은 것 없으니 설마, 벌 받지는 않겠지?’


가시에 찔리고, 벌에 물릴까 겁나고. 찔레꽃 따기가 만만치 않게 힘이 듭니다.


조금은 겁나는 마음 애써 누르고 한 송이 두 송이 꽃을 땁니다. 가시가 많아서 잘 찔린다고 ‘찔레나무’라고 하던가요. 긴 옷 입고 하는데도 자꾸만 찔려요. 아파도 참아야죠. 귀한 꽃 그냥 가져가는데 이 정도 대가는 치러야 마땅할 것만 같으니까요. 


바구니에 소담하게 담아온 찔레꽃을 먼저 물에 씻어요. 먼지가 있을까 봐 그런 건 아니에요. 달콤한 꽃에 숨어 있을 벌레들 때문이죠. 꽃을 물에 담그면 깨알 같은 작은 벌레들이 알아서 빠져나오거든요. 


물 위에서 활짝 핀 찔레꽃이 참 예쁩니다.


물 위에서 활짝 핀 찔레꽃이 참 예쁩니다. 나무에 있을 때랑은 또 다른 아름다움이 흠뻑 묻어나네요. 역시나 예쁘다고 구경만 할 수는 없어요. 꽃차가 되려면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았거든요.


조심조심 씻어낸 꽃을 삼단 솥에서 세 번 찝니다. 한 번 쪄서 식히고 또 쪄서 식히고,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찝니다. 혹시나 숨어 있을 벌레들 마저 잡고요. 또 이렇게 하면 꽃차 향내가 더 그윽해진다고 하네요. 그러고는 그늘에서 말리기 시작합니다.


물에 씻은 찔레꽃을 삼단 솥에 세 번 찐 뒤에 그늘에서 말리면 향긋한 꽃차가 됩니다.


어둠 속에서 서늘한 바람 맞으며 조금씩 꽃차가 되어 가고 있을 찔레꽃이 생각나는 밤입니다. 깜깜해지니 또 노래가 떠오르네요. 곡도 노랫말도 좀 많이 애잔한, ‘찔레꽃’이죠. 


엄마 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 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
배고픈 날 가만히 따 먹었다오, 엄마 엄마 부르며 따 먹었다오~♪

친정 엄마 하늘로 보내고선 날마다 마루에 나와 이 노래 부르면서 목 놓아 울던 때가 있었어요. 십오 년도 더 전에, 스물 몇 살밖에 안 되었을 때.


가끔 그때 생각하면 좀 웃겨요. 찔레꽃이 어떻게 생겼는지, 무슨 맛인지, 왜 노래 속 아이는 그 꽃을 따 먹어야 했는지 아무것도 몰랐을 때거든요.


근데 모르길 잘한 것도 같아요. 찔레꽃에 담긴 슬픈 이야기를, 그 희디흰 빛깔을 알았더라면 아마 이 노래를 아예 부를 엄두도 내지 못했을 거 같거든요. 특히나 그땐 며칠 내내 몸을 감싸던 하얀 소복이, 흰 머리핀이 너무 서럽고 슬퍼서 흰색과 이어진 건 그게 뭐든 쳐다보기도 싫었어요.


그래서 다행인 거죠. 비록 한 소절도 못 부르고 눈물범벅으로 그칠 때가 많았지만 그래도 그때 이 노래가 있어서 조금이나마 견딜 수 있었거든요.


조금씩 마르면서 꽃에서 꽃차가 되어 가는 찔레꽃.


그렇게 엄마를 생각하면서 동학농민혁명군을 떠올리면서 찔레꽃을 따고 차를 만듭니다. 일 년 내내 언제든 이 마음 향긋하게 우려낼 수 있는, 달콤한 찔레꽃차를 만들 수 있어서 참 행복합니다.


찔레꽃을 만나게 해 준, 무엇보다 ‘찔레꽃’ 노래를 무려 삼절까지 울지 않고 부를 수 있게 산골혜원을 보듬어 준, 이 작은 산골짜기도 무척이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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