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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골짜기 혜원 Jun 02. 2019

오늘의 네코무라씨와 오늘의 산골혜원씨

만화책 보면서 반성도 하고 위로도 받는 밤

잘 안 그러다가 어쩌다 그런 날이 온다. 


밥하고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나물하고 밭일하고 김치 담그고….  대체로 즐겁게(가 아니면 보람이라도 차게) 하던 일들이 어느 순간 막 짜증 나면서 눈물이 울컥 날 것 같은 그런 때. 


며칠 전에는 점심밥을 차리다가, 그러니까 압력솥에 밥 안치고 콩나물 씻어 삶고 무치고 그 국물에 김치콩나물국 끓이고 쪽파 송송 썰어 계란말이까지 부쳐서 밥 푸기 일보 직전에 밭일하고 들어오는 옆지기를 향해 나도 모르게 징징 외쳤다. 


“나 속상해! 왜 그런지 모르겠어. 이거 정말 별거 아닌 일인데 오늘따라 부엌에 두 시간 가까이 서 있는 이 시간이 너무 화나. 이러다 주부 우울증이라도 걸리면 어떡해, 엉엉.” 


힘들게 밭일하고 온 사람한테 그렇게 말하는 게 미안하면서도 뭔가 안에서 끓는 무언가를 참지 못해 일단 질러는 놓고, 곧바로 정신 차려 마저 밥 푸고는 아무 일 없는 듯 점심을 먹었다. 


밥하고 청소하고 밭일하고 김치 담그고…. 끝없는 집안일에 어느 순간 막 짜증 나면서 눈물이 울컥 날 것 같은 그런 때가 있다.


끝없이 이어지는 집안일 앞에 나도 모르게 일어나는 스트레스. 전에는 잘 없던 일인데 하물며 옆지기가 집안일도 농사일도 나보다 백만 배는 더 많이 하는데도 낫살 든 티를 내는 건지 여름 앞두고 있어 그런지 불쑥불쑥 마음에서 솟아날 때면 이 만화책을 펼친다. <오늘의 네코무라씨>.


고양이가 가정부로 살면서 인간세상을 보고 느끼고 깨우치고, 또 반대로 사람들에게 깊은 깨우침까지 안겨주는 참 재미나고 감동스러운 만화책이다.


고양이 가정부 네코무라 씨는 남의 집 살림을 도맡아 하면서도 늘 노래를 부르곤 한다. 그 일이 진정 좋아서 그렇다. 그러면서 자주 스스로에게 말한다.


“나는 요리라든가 청소가 특기인데, 좋아하는 일이 적성에도 맞다니 정말 럭키한 고양이야!”

그런 네코무라 씨 모습을 보면서 왜 그렇게 찡하고, 멋지고, 사랑스럽고 또 자주 부끄럽기만 하던지. 


날마다 즐겁게 일하고 잠드는 네코무라씨, 당신 덕분에 나도 행복했음!


고양이로 태어난 네코무라 씨는 어쩔 땐 사람보다 더 사람을 사랑하고 이해하면서 살아가는 듯하다. 그 사랑과 이해를 밥하고 청소하고 빨래하는 온갖 집안일들로 표현한다. 참으로 즐거워하면서. 


나와 옆지기. 오로지 두 사람 한 끼 두 끼 먹자고 밥 차리는 일마저 잔뜩 스트레스받는 내 모습을, 네코무라 씨를 보면서 반성도 하고 또 위로도 받는다. 해도 해도 티 안 나는 듯 보여도 살아가는 길에, 살아갈 시간들에 ‘먹고 사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 네코무라 씨의 삶과 말들 속에서 저절로 느껴지게 되니까. 


고마운 언니가 선물해 준 이 만화책, 어느새 다 봐 버렸네. 하루 살림만으로도 열나게 피곤한 밤에도 이 책 한 권 쓱 보고 나면 잠들 때 괜스레 흐뭇해지곤 했다. 만화는 다 봤지만 가끔 이 책을 꺼내 들 것 같다.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빨래하는, 책 표지에 나오는 네코무라 씨 모습이 너무 사랑스럽고 행복해 보여서 그렇다.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설거지, 청소, 빨래 다 행복하게 하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표지만 봐도 기분 좋은, 사랑스러운 오늘의 네코무라 씨.


‘오늘의 네코무라씨’는 그렇게, ‘오늘의 산골혜원씨’ 삶도 따스하게 어루만져 준다. 주인공 네코무라 씨도 고맙고, 만화를 그린 호시 요리코 씨도 고맙고, 이 책을 안겨준 서연 언니도 고맙고, 다 고마운 밤이다. 이 마음들 켜켜이 쌓아 두었으니 앞으로 엔간하면 집안일로 급 짜증 내는 일은  잘 없을 것도 같다.


어쩌면 난 평생 적성검사만 하면서 살지도 모르겠다. 집안일도 농사일도. 그래도 괜찮다. 싫을 때보다 좋을 때가 더 많으니까. 더구나 서울 살 땐 집안일이라면 죽도록 싫어하(고 정말 죽도록 안 했)던 내가, 하루 두 번 설거지도 척척 해내고. 게다가 벼랑 보리도 가려내지 못하던 멍청이가 그 비슷해 보이는 양파랑 마늘 줄기도 알아볼 수 있게 됐으니, 농사도 살림도 이만치나마 하게 된 게 어디야. 그것만으로도 나는 럭키한 네코무라 씨 못지않게 럭키한 산골혜원일 거야! 


신나게 노래 부르고 나니 천근만근으로 다가오던 싱크대 가득한 설거지도 신나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산골살이에 일요일 공휴일 따로 있겠느냐마는, 그런 마음으로 설거지 가득 쟁여둔 오늘 밤에는 이 노래를 부르고만 싶다. 산골혜원 춤추게 하는 ‘설거지송~♬.’


일요일이 다 가는 소리, 아쉬움이 쌓이는 소리, 내 마음 무거워지는 소리~♪

신나게 노래 부르고 나니 천근만근으로 다가오던 싱크대 가득한 설거지도 늦은 밤 신나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만화책 못지않게 역시나 노래도 나의 힘! 내 노래에 대답이라도 하듯이 낮에 울던 뻐꾹새가 다시 또 운다. “뻐꾹, 뻐어꾹~♪” 그 소리 참 곱기도 하지. 왠지 이렇게 들리는 것도 같네. 


“럭키한 산골혜원씨, 오늘도 정말정말 수고했어요!^^”  

집안일 다 마치고 늦은 밤 만화책과 함께하는 럭키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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