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책 보면서 반성도 하고 위로도 받는 밤
잘 안 그러다가 어쩌다 그런 날이 온다.
밥하고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나물하고 밭일하고 김치 담그고…. 대체로 즐겁게(가 아니면 보람이라도 차게) 하던 일들이 어느 순간 막 짜증 나면서 눈물이 울컥 날 것 같은 그런 때.
며칠 전에는 점심밥을 차리다가, 그러니까 압력솥에 밥 안치고 콩나물 씻어 삶고 무치고 그 국물에 김치콩나물국 끓이고 쪽파 송송 썰어 계란말이까지 부쳐서 밥 푸기 일보 직전에 밭일하고 들어오는 옆지기를 향해 나도 모르게 징징 외쳤다.
“나 속상해! 왜 그런지 모르겠어. 이거 정말 별거 아닌 일인데 오늘따라 부엌에 두 시간 가까이 서 있는 이 시간이 너무 화나. 이러다 주부 우울증이라도 걸리면 어떡해, 엉엉.”
힘들게 밭일하고 온 사람한테 그렇게 말하는 게 미안하면서도 뭔가 안에서 끓는 무언가를 참지 못해 일단 질러는 놓고, 곧바로 정신 차려 마저 밥 푸고는 아무 일 없는 듯 점심을 먹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집안일 앞에 나도 모르게 일어나는 스트레스. 전에는 잘 없던 일인데 하물며 옆지기가 집안일도 농사일도 나보다 백만 배는 더 많이 하는데도 낫살 든 티를 내는 건지 여름 앞두고 있어 그런지 불쑥불쑥 마음에서 솟아날 때면 이 만화책을 펼친다. <오늘의 네코무라씨>.
고양이가 가정부로 살면서 인간세상을 보고 느끼고 깨우치고, 또 반대로 사람들에게 깊은 깨우침까지 안겨주는 참 재미나고 감동스러운 만화책이다.
고양이 가정부 네코무라 씨는 남의 집 살림을 도맡아 하면서도 늘 노래를 부르곤 한다. 그 일이 진정 좋아서 그렇다. 그러면서 자주 스스로에게 말한다.
“나는 요리라든가 청소가 특기인데, 좋아하는 일이 적성에도 맞다니 정말 럭키한 고양이야!”
그런 네코무라 씨 모습을 보면서 왜 그렇게 찡하고, 멋지고, 사랑스럽고 또 자주 부끄럽기만 하던지.
고양이로 태어난 네코무라 씨는 어쩔 땐 사람보다 더 사람을 사랑하고 이해하면서 살아가는 듯하다. 그 사랑과 이해를 밥하고 청소하고 빨래하는 온갖 집안일들로 표현한다. 참으로 즐거워하면서.
나와 옆지기. 오로지 두 사람 한 끼 두 끼 먹자고 밥 차리는 일마저 잔뜩 스트레스받는 내 모습을, 네코무라 씨를 보면서 반성도 하고 또 위로도 받는다. 해도 해도 티 안 나는 듯 보여도 살아가는 길에, 살아갈 시간들에 ‘먹고 사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 네코무라 씨의 삶과 말들 속에서 저절로 느껴지게 되니까.
고마운 언니가 선물해 준 이 만화책, 어느새 다 봐 버렸네. 하루 살림만으로도 열나게 피곤한 밤에도 이 책 한 권 쓱 보고 나면 잠들 때 괜스레 흐뭇해지곤 했다. 만화는 다 봤지만 가끔 이 책을 꺼내 들 것 같다.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빨래하는, 책 표지에 나오는 네코무라 씨 모습이 너무 사랑스럽고 행복해 보여서 그렇다.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설거지, 청소, 빨래 다 행복하게 하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오늘의 네코무라씨’는 그렇게, ‘오늘의 산골혜원씨’ 삶도 따스하게 어루만져 준다. 주인공 네코무라 씨도 고맙고, 만화를 그린 호시 요리코 씨도 고맙고, 이 책을 안겨준 서연 언니도 고맙고, 다 고마운 밤이다. 이 마음들 켜켜이 쌓아 두었으니 앞으로 엔간하면 집안일로 급 짜증 내는 일은 잘 없을 것도 같다.
어쩌면 난 평생 적성검사만 하면서 살지도 모르겠다. 집안일도 농사일도. 그래도 괜찮다. 싫을 때보다 좋을 때가 더 많으니까. 더구나 서울 살 땐 집안일이라면 죽도록 싫어하(고 정말 죽도록 안 했)던 내가, 하루 두 번 설거지도 척척 해내고. 게다가 벼랑 보리도 가려내지 못하던 멍청이가 그 비슷해 보이는 양파랑 마늘 줄기도 알아볼 수 있게 됐으니, 농사도 살림도 이만치나마 하게 된 게 어디야. 그것만으로도 나는 럭키한 네코무라 씨 못지않게 럭키한 산골혜원일 거야!
산골살이에 일요일 공휴일 따로 있겠느냐마는, 그런 마음으로 설거지 가득 쟁여둔 오늘 밤에는 이 노래를 부르고만 싶다. 산골혜원 춤추게 하는 ‘설거지송~♬.’
일요일이 다 가는 소리, 아쉬움이 쌓이는 소리, 내 마음 무거워지는 소리~♪
신나게 노래 부르고 나니 천근만근으로 다가오던 싱크대 가득한 설거지도 늦은 밤 신나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만화책 못지않게 역시나 노래도 나의 힘! 내 노래에 대답이라도 하듯이 낮에 울던 뻐꾹새가 다시 또 운다. “뻐꾹, 뻐어꾹~♪” 그 소리 참 곱기도 하지. 왠지 이렇게 들리는 것도 같네.
“럭키한 산골혜원씨, 오늘도 정말정말 수고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