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앞둔 이때쯤 꼭 생각나는 고마운 밑반찬
느지막한 아침, 마당 수돗가에 놓인 두툼한 마늘쫑('마늘종'이 표준어지만 어릴 때부터 써 와서 왠지 정겹게 느껴지는 '마늘쫑'이라고 쓴다) 다발을 보았습니다.
누굴까?
몇몇 떠오르는 얼굴이 있지만 확인하기 전까진 알 수 없는 일이죠. 누가 주셨는지 알아보는 건 나중 일, 방금 뽑아냈을 마늘쫑 수습이 먼저입니다.
볶음도 맛있지만 마늘쫑 하면 아무래도 무침이 먼저 떠오르죠.
지난해 마늘 농사는 완전 죽 쒀서 마늘쫑 구경도 못 했어요. 올해는 쪼끔 나아졌다지만 마늘쫑 보기 어렵긴 마찬가집니다. 이번에도 마늘쫑 반찬은 못 먹겠구나, 내심 마음 내려놓고 있었는데 통통하고 길쭉한 것들이 눈앞에 보이니 은근히 기분이 좋았어요.
무침 만들기를 시작하려는데 어떻게 하는지 바로 생각나지가 않네요.
‘데쳐서 하나? 그냥 바로 해도 되나?’
그래도 몇 번 해 본 일인데 한 해 걸렀다고 머리도 손도 그 경험을 새겨 두지 못하고 있네요. 이래서 뭐든 꾸준함이 중요한가 봅니다.
어쩔 수 없이 인터넷에 여쭈오니 다들 살짝 데치라 하시네요. 어렴풋한 기억에도 날것으로 했을 때 좀 질겼던 것 같기도 하니 데치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마늘쫑 데치고, 양념 준비해서 후다닥 무치기까지 긴 시간이 들지는 않았어요. 액젓을 넣지 않고 간장과 고추장으로 간을 맞추는데 그래선지 김치 할 때보다 왠지 더 어려운 느낌입니다.
‘액젓을 안 넣으니까 김치가 아니라, 마늘쫑 무침이라고 하는 걸까?’
간을 보고 또 보는데 영 쉽지가 않네요. 좀 싱거운 듯한데 싱거운 대로 많이 먹으면 되지, 하면서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긴가 민가 하는 마음으로 옆지기한테 한입 넣어주니 “맛있구먼. 음식 잘하네~^^” 합니다. 응원인지 진심인지 가늠이 안 되는 한마디에 그냥 마음 놓기로 합니다.
하루 지나 간이 좀 들었을까 맛보는데 여전히 뭔가 조금 아쉬워요. 그래도 매콤한 마늘쫑 맛과 향이 코끝에서 입 안까지 오롯이 들어차니 그것만으로도 왠지 흐뭇합니다.
여름을 앞둔 이때쯤 마늘쫑을 먹지 않으면 왠지 섭섭하고 그랬어요. 마늘쫑 뽑는 그 짜릿한 순간을(조금이니까 그렇죠. 많으면 힘들 거예요) 놓치고 지나가면, 뭔가 놓친 듯 아쉽고 허전했지요.
마늘쫑 무침 한 접시 뚝딱 비우고 텃밭에 자라는 마늘을 보러 갔어요. 비실비실해도 마늘쫑이 있긴 있어요. 다 뽑아도 몇 개 안 되지만 이렇게라도 커 준 게 고맙고 다행스러워요.
텃밭이 키운 마늘쫑으로 볶음을 해 볼 거예요. 한 접시도 안 나올 게 빤하지만 그것까지 먹고 나면 건강하고 씩씩하게 여름을 맞이할 수 있을 것만 같아요. 긴 겨울을 견뎌내고 알알이 들어찬, 마늘의 꽃대인 마늘쫑. 이 속에 뜨거운 여름을 견뎌낼 매콤하고 알싸한 기운이 들어 있을 테니까요.
참! 마늘쫑 주신 분도 알아냈어요. 예상한 대로 앞집 할머니셨어요. 마늘쫑 뽑기가 조금 할 땐 재미있다지만 그게 은근히 팔에 힘을 써야 하거든요. 허리도 내내 숙여야 하고요. 팔순 할머니가 굽은 허리로 마늘밭 오가는 모습이 떠올라서 마늘쫑 무침 먹는 마음이 좀 시릿하기도 했어요.
올해도 지나칠 뻔한 마늘쫑 무침을 밥상에 올릴 수 있도록, 슬그머니 가져다 주신 할머니께 죄송하고도 고마운 마음을 글자로나마 새겨 봅니다. 할머니의 땀과 정성이 오롯이 새겨진, 귀하디 귀한 마늘쫑. 맛나게 먹은 기운으로 몸도 마음도 건강한 산골 이웃으로 오래오래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한 걸음 두 걸음 노력할게요.
무엇보다요, 매콤하고 알싸하고 그러면서도 달콤한 밑반찬이 있으니까 정말, 진짜, 많이 든든하고 좋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