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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골짜기 혜원 Jun 05. 2019

택배 상자 하나에 얽힌 나와 너, 우리들의 이야기

<까대기>에 담긴, 참 대단한 만화가의 삶 그리고 열정

돈 버는 농사 하나 없는 우리 집마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철이다. 어쩌다 마주치는 마을 분들 얼굴이 까맣게 타들어 가고 몸은 비쩍비쩍 마르는 모습이 괜스레 안타깝기만 한 그런 나날들. 그리고 또, 온갖 산나물과 농산물들 덕분에 택배를 많이 보내는 때이기도 하다. 


얼마 전, 항암 치료하시는 둘째 아주버님께 산두릅 쪼끔이랑 이거 저거 건강에 도움될 것들 택배로 챙겨 보내던 날. 자주 봐서 낯익은 우체국 살림꾼께서 내가 든 상자를 보자마자 불쑥 한마디 건넨다.


“이거 두릅이죠?”


“어, 어떻게… 아셨어요?”


“요즘 다들 두릅 보내는 때라서요.”


“아아~ 그래서 아셨군요.”


바쁜 중에도 여기저기 산골 먹을거리들 보내느라 택배 상자 싸는 일이 꽤 많다.


서울 살 땐 택배 받을 일이 거의 없었다. 예나 지금이나 물건 사는 일이 마음 체질에 영 맞지 않아서, 보내는 일이든 받는 거든 택배까지 동원할 일은 웬만해선 벌어지지 않았다.


귀촌하고서야 비로소 택배와 가까워졌다. 끊임없이 날라 오는 시어머니 택배 상자부터 고마운 인연들이 보내주는 빵, 과자, 커피 등등 또 온갖 먹을거리들. 그리고 또 우리 부부가 이 도시 저 고장으로 실어 보내는 소박한 산골 먹을거리들. 아, 또 있구나. 산골살림이랑 내 마음살림을 알뜰하게 지탱해 주는 책 관련 일감 택배들까지.


집에 늘 있으니 택배 기사님도 자주 마주한다. 까칠한 기사님, 언제나 웃는 기사님, 문 열고 나가기도 전에 현관 앞에 택배 툭 놔두고 가는 분까지. 택배회사가 여러 곳이라지만 그래 봤자 서너 곳으로 합쳐지니 한 번 본 기사님을 보고 또 본다.


환히 웃으시든, 일에 지쳐 찡그리시든 추운 겨울날, 더운 여름날 더욱 마음 쓰이는 그 모든 분들을 생각하며 이 만화책을 본다. 택배 상자 하나에 얽힌 수많은 이야기를 담은 <까대기>. 먹고살려고, 월세 내고 학자금 대출 갚으려고 새벽 알바로 까대기(택배 상하차 일) 알바를 6년 동안이나 했던 경험을 만화로 그려낸 책.


귀촌하고서야 비로소 택배와 가까워졌다. 보내는 일도 많지만 고마운 인연들이 빵, 과자에 커피 같은 온갖 기호식품을 자주 보내주는 덕분이다.
택배 상자 하나에 얽힌 수많은 이야기를 담은 <까대기>.


알고 보니 이 책을 펴낸 이종철 만화가는 어린이 잡지 <개똥이네 놀이터>에 ‘바다 아이 창대’를 연재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우리 조카가 엄청 많이 좋아한 만화였는데….


<까대기> 본문에 잡지 연재를 시작하게 된 장면이 나온다. 이젠 연재도 끝났고 어느새 세 권 책으로 묶여 나왔는데도 ‘다행이다, 잘됐다!’ 이런 소리가 책 보면서 저절로 나오더라니. 지옥의 알바라고 한다는 ‘까대기’ 시간들을 잘 버텨내고, 또 이렇게 만화로 남겨 준 만화가에게 많이 고맙다.  


<까대기> 본문에 잡지 연재를 시작하게 된 장면이 나온다.
택배 노동을 하면서 어린이 잡지에 만화까지 연재한 이종철 만화가, 참 대단하다!


“두 발에 힘 꽉 주고 버텨. 꿋꿋하게. 버티다가 힘들면 이 누님한테 언제든 연락하고.” 

책 말미에서 만난 장면. 솔직히 좀 빤한 이야기일 수 있는데, 이거 왜 이리 마음을 울리는지. 까대기는, 진짜로, 두 발로 버텨야만 할 수 있는 일이라서 그런 걸까.


택배가 바뀌려면, 택배 기사들의 삶과 까대기 알바님들의 하루하루가 온전하게 꾸려지려면 택배 구조가, 그 뿌리부터 바뀌어야 할 테다. 그전까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택배기사님들의 삶을 응원하고 보듬어 주는 일일 게다.


“두 발에 힘 꽉 주고 버텨. 꿋꿋하게. 버티다가 힘들면 이 누님한테 언제든 연락하고.” 뻔한 장면인데 무척이나 찡했다.


택배 늦는다고 괜스레 항의하지 말고, 국물 새지 않고 물건 깨지지 않도록 안전하고 단단하게 택배를 싸고. 더운 날엔 시원한 마실거리 한잔, 추운 날엔 뜨뜻한 물이라도 한잔 내드리고. 배고플 시간 즈음 오시는 분들껜 과자 한 조각이라도 건네 드리는 일.


어느새 택배 없이 살아갈 수 없게 된 우리들의 삶을 지탱해 주는, 고마운 택배 기사님들께 딱 그 정도만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까대기>를 본 사람들이라면 왠지 그 정도는 저절로 하게 될 것만 같다. 그래서 이 책이 참으로 고맙다. 봄 가뭄 끝에 산골 텃밭 구석구석 촉촉이 적시는 귀한 단비처럼.  


택배는 사람들의 일상을 편리하게 하지만 그 뒤에는 고된 노동이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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