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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골짜기 혜원 Jul 24. 2019

주방과 산골에서 펼치는, 더 나은 내일을 위한 시도

작은 작가들이 펼친 서울국제도서전 노래 사인회, 그 후

2019년 6월 서울국제도서전에서 <내일을 생각하는 오늘의 식탁>의 전혜연 작가와 함께한 ‘노래 사인회’가 어느덧 한 달이 훌쩍 넘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제 마음에서 살아 꿈틀대는 듯해요. 그날의 풍경과 사람들 그리고 노래까지. 


2019년 6월 서울국제도서전에서 <내일을 생각하는 오늘의 식탁>의 전혜연 작가와 함께한 ‘노래 사인회’ 풍경.


작은 출판사 작은 작가들의 작은 사인회. 길게 늘어선 줄은 없었지만 시시각각 찾아드는 한 사람 두 사람 덕분에 환하고 신명 나게 흘러갔습니다. 


특히 (지난해 이맘때쯤 바로 제가 그랬듯이) 막 인생 첫 책을 펴낸 전혜연 작가를 찾는 분들이 많아서 제가 덕을 좀 봤어요. 허전할 틈이 없었거든요. 저 혼자였다면 제 아무리 노래가 있어도 좀 쓸쓸했을지 몰라요. 첫 만남만으로도 “뭔가 멋지다! 꼭 다시 만나고 싶다!!”는 마음을 잔뜩 불러일으킨 전혜연 작가와 함께한 시간은 뭐랄까, 엄청난 행운 같았어요. 


문득 그날 잊을 수 없는 분이 떠오르네요.


“000 이름으로 사인해 주세요. 선물하려고요. ‘웃고 살아요’라고도 써 주세요. 선물할 사람한테 꼭 해 주고 싶은 말이거든요.”


제가 쓴 <이렇게 웃고 살아도 되나>를 내밀면서 이런 말씀을 건넸던, 검정 원피스가 단아하게 잘 어울리던 어느 분이 자주 생각납니다. 제 책을 선물 받게 될 그분도 궁금해지고요. (이름이 참 멋졌어요!)


지난해도 도서전에서 노래 사인회를 흥겹게 치렀건만, 이번에는 왠지 더 떨리고 걱정도 많았답니다.


지난해 서울국제도서전에서도 자리를 마련해 준 산지니출판사 덕분에 노래 사인회를 흥겹게 치렀어요. 나름 경험이 있는데도 이번에는 왠지 더 떨리고 걱정도 많았답니다. 그래도 힘을 낼 수 있던 건, 산골혜원과 즐겁게 행사를 만들어 준 전혜연 작가 덕분이죠. 작은 노래 사인회에 발걸음해 준 소중한 독자 여러분들 힘이었고요. 책은 사지 않더라도 스치듯 지나가는 노랫소리에 귀 기울이는 모습은 정말 큰 힘이 되었답니다.


떠나왔어도 언제나 그리운 서울을 뒤로하고 산골에 돌아왔어요. 전혜연 작가의 책을 열어 봅니다. 사인회 같이하기 전까지는 그이의 책을 미처 보지 못했거든요. ‘더 나은 내일을 위한 시도 주방에서 시작하세요’라는 사인부터 눈에 들어오네요. 참 마음에 드는 글귀예요. 이렇게 슬쩍 바꿔 보고도 싶네요. '더 나은 내일을 위한 삶터, 산골에서 시작해 보세요~.'


역시! 첫인상도, 함께 나눈 사인회도 마음에 착착 안기더니만 책 또한 마찬가지였어요. 시작부터 글맛 좋고, 내용은 더 쑥쑥 와 닿아요. 


‘내가 이렇게 멋지고 재밌는 사람이랑 같이 사인회를 열었단 말이야? 오, 대박!’ 

이런 생각을 하면서 책과 만났답니다. 전혜연 작가랑 마치 이야기라도 나누는 기분에 젖어서. 


“이제 막 마크로비오틱의 문을 두드린 사람에게 요구하는 것은 자신의 몸에 충분히 집중하고,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가짐이다.” 
“마크로비오틱은 겉보기엔 ‘요리’ 공부인 듯했지만, 판단력을 익히며 자기 삶을 만들어가는 ‘인생’ 공부에 가까운 것이었다. 퇴사 후 일본으로 돌아가 마크로비오틱을 익히며 내가 얻은 소중한 가르침은, 현미밥 짓기나 체질에 맞춘 식단 구성이 아니라, 바로 ‘나다운 삶’이었다. 누군가의 기대에 부응하며 이른바 ‘있어 보이는 삶’을 살고 있던 나는 마크로비오틱을 만나며 조금 더 스스로 주도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 


음식이든 삶이든 자기 앞에 다가온 시간들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참 깊어요. 무엇보다 전혜연 작가의 삶을 바꾸었다는, 이름이 길어서인지 외우기가 좀 어렵던 ‘마크로비오틱’이 무언지 슬슬 느낌이 옵니다. 


전혜연 작가의 사인. 글귀도 글씨도 참 마음에 착착 안기더군요.


“24절기에 맞춰 땅에서 나고 자란 것만 먹고 살아도 먹을거리가 넘쳐난다. 내게는 그 시기에 가장 맛있는 음식이 있기에 다른 것을 먹을 여유가 없다. (…) 입과 몸으로 계절의 변화를 즐긴다.” 
“밥을 찌는 대신 전자레인지를 쓰고, 수건을 삶지 않고 키친타월을 쓰던 시절. 그 얼마 되지 않는 시간을 아껴서 나는 무엇을 하고 지냈던 건지 문득 궁금해졌다.” 
“요리 선생님이기 이전에, 요리를 업으로 하는 한 사람으로서 나는 접시를 통해 어떤 이야기를 전달할 것인가. 그리고 그 음식을 먹는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갖고 갔으면 하는가. (…) 이 두 가지 질문을 마음에 새겼다.” 


저보다 한참 어린 나이 같았는데 어쩌면 이렇게 속 깊은 이야기를 풀어놓는지, 책장을 넘길수록 감탄이 일어납니다. 그러다가도 가끔은 웃음이 막 터지는 곳도 있었어요. 


“한 그릇 식사로 뚝딱 끝내는 날들이 계속되니 채소 반찬 욕구가 샘솟다 못해 폭발하고 말았다.” 


“스콘만큼은 시대의 흐름에 굴복했지만, 밥상만큼은 지지 않으리.” 


입을 앙 다물고 다짐 또 다짐하는 모습이 떠오르는 거 있죠. 두어 시간 같이 지내서 그런지 꼭 ‘목소리 지원’에 ‘표정 지원’까지 되는 느낌이었죠. 그렇게 천천히, 조금씩 책 속에 빠져들면서 어느덧 산골혜원과 비슷한 마음들이 슬그머니 다가왔어요.    


큼직한 호박잎이랑 전혜연 작가의 <내일을 생각하는 오늘의 식탁>이 제법 잘 어울리죠?


“봄동, 얼갈이, 배추는 비슷해 보이고 용도도, 다루는 법도 거기서 거기일 것 같지만 미묘하게 다르다. 그래서 채소의 세계는 심심할 여지가 없다. (…) 채소로 밥상을 차려 낸다는 것은 드라마나 공연을 올리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나의 마크로비오틱 수업은 나만이 할 수 있다. 손님들의 반응이 없었다면 맛과 건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레시피, 그리고 탄탄한 이론을 동반한 마크로비오틱 베이킹 수업은 여전히 내 자격지심 뒤에 숨어 있었을 것이다. (…) 요리를 하는 사람으로서 가져야 할 자신만의 색깔을 손님들이 만들어 주었다.”


저도 그랬어요. 고사리, 취 같은 산나물부터 텃밭에서 나는 온갖 채소들을 조물조물하며 손님들 맞이할 산골밥상을 내는 시간을 참 좋아해요. 산나물은 손이 많이 가는지라 힘낼 겸 음악 크게 틀고 부엌에 있을 때도 많았어요. 


‘이 나물은 저 언니가 좋아할 거야, 저 반찬은 이 오빠가 잘 먹겠지?’ 

바삐 몸 부리면서 이런저런 생각에 젖어서는 음악에 맞춰 가끔 어깨를 들썩이고 있으면, 꼭 무슨 식당을 주제로 한 모노드라마 주인공 같기도 했어요.  


무엇보다 전혜연 작가와 산골혜원이 가장 닮은 건, 바로 ‘채식!’ 까닭은 잘 모르겠으나 저는 아주 어릴 때부터 고기를 아예 못 먹어요. 조금도 맛을 모르기도 했지만 억지로 입에 넣었다가는 설사를 하던 뭔가 몸에 탈이 나곤 했어요. 하다못해 생일날 엄마가 내주는 쇠고기 미역국조차도 넘기질 못했지요. 어쩌다 돼지고기 김치찌개라도 끓이는 날이면 엄마는 제 몫으로 고기 없는 찌개를 꼭 따로 만드셨어요. 곰국으로 떡국을 끓일 때도 마찬가지였고요. 육 남매 가운데 저만 그랬어요, 참 신기하게도. 


호박, 가지, 오이, 양파만으로도 여름 산골밥상은 풍성하답니다.


고기 먹을 기회가 흔하지 않은 때라서 스물 넘을 때까지 별 탈은 없었지만 직장 생활 시작하면서는 좀 힘이 들었네요. 게다가 사람을 많이 만나는 일이었기에 더 그랬고요. ‘고기를 몸에서 소화시키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현실을 사람들은 잘 이해하지 못했어요. 보통은 없어서 못 먹는 게 고기라고들 하니까요. 


이러구러 살다 보니 어느 날 갑자기 ‘채식주의’라는 말이 나오더군요. ‘무슨 주의’ 이런 거 별로 안 좋아하지만 그나마 다행이기는 했어요. 사람들한테 우스갯소리도 건넬 수 있었고요. “저는 하늘이 내린 채식주의자예요. 복 받았죠!” 


맞아요, 고기 못 먹는 체질을 이젠 참 행운이라고 여겨요. 만일 제가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을지라도 충분히 ‘채식’을 고민하고 실천하려고 애썼을 것 같거든요. 그랬으면 고생깨나 했겠죠. 좋아하는 음식을 ‘끊는’ 건 사랑하는 이와 헤어질 때처럼 힘들 것만 같거든요.  


전혜연 작가가 꾸리는 비건 식탁, 언젠간 꼭 가 보고 싶어요.


“만인에게 이해받을 필요는 없어도, 오랜 시간을 함께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내 선택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 함께 식탁을 나누는 사이인 만큼 나로 인해 식탁의 구성이 달라지는 점에 대해 상대방에게 충분히 설명하지 않는 것은 무조건 나를 이해하라는 무언의 강요와도 같다. 반대로 내 식생활을 숨기고 다른 사람들을 위한 식탁에 억지로 동참하는 것은 내 스스로를 억압하는 일이어서 지속될 수 없다.” 


이 글을 보면서는 전혜연 작가가 그동안 마음고생 좀 했나 보다, 지레짐작으로 느껴졌어요. 왠지 안쓰럽기도 하고요. 마크로비오틱도 채식도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테니까요. 


문득 지금 사는 산골에서 마을 분들이랑 첫 점심밥을 먹던 날이 떠올랐어요. 세상에나, 감자탕이 나왔어요. 그것도 한 사람 앞에 한 사발씩. 적당히 먹는 척이 불가능한 상황이었죠. 고민 끝에 말씀드렸어요.


“저, 정말 죄송한데요, 제가 고기를 어릴 때부터 못 먹어요. 먹으면 탈이 나거든요. 이 감자탕 손 조금도 안 댔으니까 그냥 물려도 될까요? 정말 죄송합니다.”


산골에 뿌리내리고자 마음먹고 작은 삶터까지 마련했던 그때. 아직 잘 모르는 분들이었지만  말해야 할 것만 같았어요. 어설피 음식 남겼다가는 ‘쯧쯧, 도시 것들이 다 그렇지 뭐.’ 이런 오해라도 살까 봐 겁이 났거든요. 그 뒤로 어떻게 됐을까요. 복날이라고 마을에서 닭이라도 잡는 날이면 마을회관 밥상에 전이라든가 밥 같은 게 같이 나와요. 


“고기 못 먹는데 이거라도 맛봐.” 


다정한 목소리도 여러 번 들었고요. 해물 반찬이 나올 때도 더러 있었네요. 특히 저희 집에 한번씩 안주 들고 찾아오는 한 마을 아저씨는 저를 위해 과일이며 맥주 같은 걸 꼭 챙겨 오세요. 그래서 가끔 생각한답니다. ‘1분 1초가 길게만 느껴졌던 그때 그 첫 밥상에서 고기 못 먹는다고 고백하길 참말 정말 잘했다!’ 


천천히, 조금씩 책 속에 빠져들면서 어느덧  전혜연 작가와 산골혜원 사이에 비슷한 마음들이 슬그머니 다가왔어요.


“사람이 많은 도시가 싫지만은 않다. 전철 안에서 사람 구경을 하며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는 이른 주말 아침 출근길은 꽤나 즐겁다.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얽히며 사는 것은 달갑지 않지만, 사람들을 관찰하며 이들로부터 영감을 얻는, 혼자가 아닌 혼자의 시간이 좋다. (…) 복잡한 서울을 떠나는 삶을 동경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나처럼 연결된 듯 연결되지 않은 듯한 도시의 삶을 바라는 사람들도 사실은 꽤나 있지 않을까? 이런 사람들은 서울을 떠났다가 아차, 싶을 수도 있다.”    


전혜연 작가의 솔직한 마음을 읽고 나니 이번 서울국제도서전에 오로지 저를 만나러 찾아온, 참 사랑하고 아끼는 두 도시 여자한테 술안주 삼아 건넨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난 서울도 좋고 산골도 좋아! 그래서 참 줏대가 없는 여자야~.”

맞아요, 저는 서울살이가 좋았어요. 언제고 만날 수 있는 마음 고운 이들이 많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살 만한 곳이었죠. 그래서 이번 도서전처럼 그리운 이들을 많이 만나고 돌아오면 가끔 착각에 빠지기도 해요. 몸은 산골에 있는데 마음은 서울에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소리 한 점 흐르지 않는 산골 밤이 참 좋은데, 온갖 소리 넘치던 서울도 그립기만 한 그런 시간. 


도시가 싫지만은 않다는 전혜연 작가의 글을 보니 혼자 이런 생각을 해 봐요. 시장에서 장본 재료만으로도 그토록 감탄이 넘치는 당신. 만일 그 채소들을 기르고 거두는 시간까지 겪는다면…. 오! 새로운 음식 이야기가 마구 탄생할 것만 같아요. 더불어 이미 충분히 멋진 <내일을 생각하는 오늘의 식탁>에서 한 걸음 열 걸음 훌쩍 나아간, 옹골차게 맛깔난 글도 막 쏟아질 것만 같은 상상이 된답니다.     


말 나온 김에 전혜연 작가한테 슬쩍 한마디 건네 보고 싶어요.


“지금 산골 텃밭에는 고구마, 호박, 박, 참외, 수박, 오이, 가지, 옥수수, 고추, 토마토, 양배추, 브로콜리, 부추, 비트, 도라지, 땅콩, 우엉…. 뭐가 아주 많아요. 다품종 소량 농사 철학으로 기르는 온갖 채소들이 자라고 있답니다. 언제 한번 날아와서 이 많은 재료들로 마크로비오틱 요리를 해 보면 어때요? 보면서 좀 배우고 싶어요. 그리도 맛깔나게 밥상 차리는 그 마음도, 손맛도요. 아, 물론요. 산골혜원이 정성껏 마련한 산골밥상부터 먼저 맛본 뒤예요. 


밭에서 막 거둔 재료로 빚은 마크로비오틱 밥상. 텃밭 귀퉁이에서 누군가를 애틋하게 기다리는 산골 원두막에서 만나면 더없이 어울릴 것도 같답니다. 


텃밭 귀퉁이에서 누군가를 애틋하게 기다리는 산골 원두막, 마크로비오틱 밥상과도 잘 어울릴 것만 같아요.


참! 책 보면서 진짜 궁금한 게 있는데, 젓갈과 설탕 없이 어떻게 깍두기를 만들죠? 전 매실액이랑 젓갈을 쓰거든요. 서울 갈 일이 워낙 드물어서 자신은 없지만요, 그 깍두기가 먹고 싶어서라도 언젠가 한번은 팝업 식당 ‘오늘’에 가 보고 싶어요. 


서울에서든 산골에서든 밥상 앞에 두고 우리 꼭 한번 만나요! 그날까지 서로 웃으며 살기를 바라면서 노래 한 자락 불러봤어요. 당신과 잘 어울릴 것만 같아서 사인회 때 함께 부르려고 정성껏 연습했던 노래여요. 제목이 ‘밥상’(백창우 시, 곡)이거든요. 텃밭 앞에서 펼쳐진 산골혜원의 수줍은 노래, 한번 들어 봐 줄래요?”  


전혜연 작가와 그이가 쓴 책을 생각하며 텃밭에서 부른 노래, '밥상'.


*덧붙이기: 같이 사인회를 하면서 전혜연 작가도 브런치에 글을 쓴다고 들었어요. 산골에 돌아와서 살피니 아니, 제가 벌써부터 그이를 ‘관심작가’로 꼭 담아 두었더라고요. 우린 만나기 전부터 브런치를 징검다리 삼아 이미 연결되어 있었던 거죠. 그게 참 기뻤어요. 그래선지 앞으로도 우리는 분명 이어질 것만 같아요. 주방에서든 산골에서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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