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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골짜기 혜원 Nov 26. 2019

‘역시 난 김장을 포기할 수 없어!’

친정 식구들과 함께한 배추 백 포기의 여정

김장의 고갱이 배추를 위하여! 산골살이 첫해부터 인연을 맺어 온 유기농 부부네 밭으로 출발~.


우리는 첫 만남부터 그랬다. 배추 거두는 일을 함께하며 수확의 기쁨도 같이 나누었다. 한땐 나도 큰 칼 들고 배추 밑동 가르는 일을 시늉이나마 해 봤지. 의욕은 넘쳤으나 만만치 않은 일감 앞에 두 손 바로 들었다. 그저 배추 열심히 나르기가 나한텐 맞는 일인 듯.


김장의 고갱이 배추를 위하여! 산골살이 첫해부터 인연을 맺어 온 유기농 부부네 밭으로 출발~.


어느덧 일곱 번째를 맞는 산골 김장. 해마다 그럭저럭 맛이 좋았다. 지난해 담근 것만 해도 시큼하고 상큼한 맛이 어우러져 여전히 아삭아삭 맛나다. 절이기에서 버무리기와 보관까지 김장김치 맛을 좌우하는 것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배추의 몫도 아주 클 터이다. 그런 마음으로 열심히 몸 부리는 유기농 언니한테 한마디 건넨다.


“이 집 배추가 너무 좋아서요, 나 그냥 농사는 안 지을까 봐요. 지금처럼 계속 언니네 걸로 김장하고 싶어요. 농사 잘 지어 줘서 정말 고마워요!” 


내 말을 들으며 마냥 흐뭇하게 웃는다. 서로 마음이 맞았으니 얼씨구나 좋구나! 


김장 맛을 좌우하는 것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배추의 몫도 아주 클 터이다.


“묻지 말아요 몇 포기인지 묻지 말아요, 전에 하던 만큼 담글 거예요~♪” 


마당 한쪽에 차곡차곡 쌓인 배추를 보고 있으니 노래 한 곡 저절로 흐른다. 낙엽 떨어지는 철에 어울리는 ‘올가을엔 사랑할 거야’의 노랫말을 살짝 바꿔 불러 본다. 밭에서 얻어 온 기운 덕인지 엄청나게 닥쳐올 김장 여정을 담대하게 맞이할 힘이 나는구나. 


무엇보다, 그 무엇보다! 농부의 땀이 서리고 맺힌 채소들이 제빛을 발할 수 있도록, 이 땅에 온 까닭을 빛낼 수 있도록 참말로 정성을 다해 김장을 맞이하겠노라 마음 굳게 먹는다. 유기농 부부한테 진심을 담아 몇 번이나 했던 말을 다시금 되새기면서.


“농사 못 짓는 제가 두 사람 덕분에 김장 걱정이 없어요. 믿는 재료가 있으니까 그게 큰 힘이 되거든요. 농사짓느라 수고 정말 많으셨어요. 잘 먹겠습니다!”


‘꼭 이렇게나 많이 해야 할까’ 

백 포기 가까운 배추를 들이기 전 김장에 쓸 장을 봤다. 뭐 살 게 그리 많은지 두어 시간 넘게 걸리네. 영수증이 몇 개나 되는지. 에구구, 안 그래도 없는 돈 엔간히 많이도 썼다. 장 봤다고 끝이 아니다. 마늘과 생강 껍질 까고 빻기, 텃밭서 자란 쪽파와 무 거두어 다듬기. 거기다 냉장고, 김치냉장고 샅샅이 치우고 집안 곳곳 말끔히 정리하기까지. 아, 준비부터 참으로 긴 여정이 필요하나니.


산골살림의 ‘대마왕’ 김장을 앞두고 몸도 마음도 긴장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자면 별생각이 다 든다.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꼭 이렇게나 많이 해야 할까. 아니야, 아니야. 엄마 아빠 없는 하늘 아래, 산골 김장을 그토록 좋아하는 친정 형제들 생각하면 힘들어도 해야만 해. 한 번 진하게 고생하면 산골밥상도 일 년 넘게 넉넉히 차릴 수 있는데…. 역시 난 김장을 포기할 수 없어. 암, 그렇고 말고!’  


산골살림의 ‘대마왕’ 김장을 앞두고 몸도 마음도 긴장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자면 별생각이 다 든다.


한참 하고도 아주 한참 전. 먼저 가신 아빠를 뒤따라 엄마까지 하늘로 떠난 뒤로 우리 형제들한테 김장은 먼 나라 이야기가 되었다. 나도 마찬가지였고. 누가 주면 받아먹거나 사서 먹으면 그뿐. 


2013년 가을, 귀촌한 첫해부터 그런 친정 형제들을(나는 육 남매 가운데 넷째!) 생각하며 백 포기 넘게 김장을 해 왔다. 김치를 보내면 다들, 사랑스러운 조카까지도 어찌나 좋아하는지. 그 모습을 떠올리며 힘들어도 끝내는 행복을 안겨 주는 김장을 꾸역꾸역 치러 왔다. 


이런 내 마음이 드디어 통하였을까! 올해는 친정 오빠랑 언니, 그리고 막내 여동생까지 김장을 하겠노라 산골로 나섰다. 처음엔 그랬지. ‘해 봐야 얼마나 하겠어.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고맙고 행복해.’ 


배추 절이고 김칫소 만들어 버무리기까지. 친정 형제들과 함께한 이박삼일이 흘렀다.
김장에 수육 배추쌈이 빠진다면 앙꼬 없는 찐빵!


어설픈 짐작은 고맙게도 완전히 어긋나 버렸다. 어찌나 열심히 제대로 일을 하는지, 지켜보는 내내 감탄이 샘솟았다. 나야 해마다 하는 일이니 몸에 배겨 어찌어찌 견딜 수 있다만 저러다 몸살이라도 나면 어쩌나, 걱정이 일렁이기도 했다. 노동집약적인 김장 일에 한 사람 손이라도 보태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도 절절히 깨달았다. 


배추 절이고 김칫소 만들어 버무리기까지. 친정 형제들과 함께한 이박삼일이 흘렀다. 저마다 원하는 만큼 김치를 싸 가는 모습이 흐뭇하면서도 떠난 빈자리가 애잔하기만 하다.  


치열한 김장 노동 속에 어릴 때 저마다 겪은 추억을 함께 나누던 시간들이 떠오른다. 아들한테는 웬만해선 집안일을 시키지 않던 우리 엄마. 오빠는 김장이 이렇게나 힘든 일인 줄 몰랐다며, 숭고한 노동에 절로 고개를 숙이게 된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다. 어린 시절 나보다 훨씬 더 김장에 치였을 언니는 그때 이야기들을 담담하게 건넨다. 나도 한마디 보태지 않을 수 없지.                                                                                                                                                                                                               

“새벽에 일어나 배추 씻을 때 맨손으로 하느라 너무 시렸어. 고무장갑 그거 얼마나 한다고 끝내 사지를 않냐고, 우리 엄마는!”  


김장 노동을 함께 나눈 친정 형제들이 떠난 빈자리가 헛헛하기만 하다.


헛헛한 마음 달랠 새도 없이 배추 버무리기에 밀렸던 동치미를 담그고, 김장 뒷정리까지 하느라 또 며칠이 지났다. 


‘산골살이 일곱 번째 김장을 결국 해낸 우리 부부, 정말 잘했다! 몸살 나기 일보 직전까지 힘써 준 친정 오빠, 언니, 동생 참말로 고맙다!!’


두 가지 생각이 마음속을 꽉 채운다. 아마 내년에도 백 포기 가까운 배추에 도전할 테고, 여지없이 긴장된 나날들을 보내겠지? 이 느낌 그대로 간직했다가 김장철이 다가올 때쯤 슬며시 꺼내 봐야지. 힘겨운 김장을 포기하지 않게끔 이끌어 줄 확실한 힘이 되어 줄 것만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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