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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골짜기 혜원 Dec 29. 2019

7년 동안 한결같이 메주를 쑨 여자

아침부터 어둑해질 무렵까지, 가마솥 불 지피고 또 지피며 큰 국자로 콩을 젓고 저으며 대망의 메주를 쑤었다. 정성 다해 네모난 메주를 빚고 볏짚 꾹꾹 눌러 청국장을 만들면서 그렇게 2019년 산골살림 공식 일정은 끝이 났도다~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 위로 콩 익는 냄새가 참으로 고소했다. 뜨끈한 아랫목에서 메주가 마르며 내뿜는 구수한 내음, 청국장 보따리에서 퍼지는 구릿한 향 모두 푸근하게 다가온다. 메주랑 청국장이랑 행복한 동거를 하는 이 겨울이 아늑하고 좋다.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 위로 콩 익는 냄새가 참으로 고소했다.


볏짚으로 감싸 메주를 띄우고, 내년 봄 장 가르기를 하여 긴 숙성 시간을 지나야 맛볼 수 있는 된장, 간장. 


이불에 꽁꽁 싸매서 진한 발효를 거쳐 탄생하는 청국장. 


꾸덕꾸덕 마르면서 하얀 곰팡이 슬슬 피는 메주를 보고 있으니 이것은 산골살림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걸 느낀다. 메주와 청국장이 안겨 줄 또 다른 살림의 시간들을 정성껏 받아 안으리라. 된장, 간장, 청국장 따라 산골혜원네 산골살이도 구수하게 맛깔날 수 있도록! 


푹 익은 콩에 볏짚 꾹꾹 눌러 박으며 청국장을 빚는다.


“메주를 쑤는 일은 참으로 숭고하다. 장을 만든다는 것, 만들어 보았다는 것, 만들고 있다는 것. 그리고 앞으로도 만들어 갈 거라는 것. 삼 년 차 시골살이에서 내가 얻은 가장 큰 보람이자 뿌듯함이다.”


4년 전 메주를 쑤면서 남긴 일기장을 열어 본다. 괜스레 기분이 좋다.  


뭘 하든 늘 늦고 모자라서 자괴감이 들 때가 많았는데 메주만큼은 적어도 4년 전보다 6일이나 빨리 만들었다는 사실! 그때부터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올해로 일곱 번째 메주를 했다는 현실!!


꾸덕꾸덕 마르면서 하얀 곰팡이 슬슬 피는 메주랑 함께하는 이 겨울이 참 좋다.


좌충우돌 우왕좌왕 오락가락 지지부진했던 산골혜원 인생에도 한결같은 실천은 있었구나. 바로 메주 쑤기! 다른 거 다 못나도 장을 내 손으로 만드는 삶, 그거만 해도 어딘가. 


내일은 또 내일의 자괴감이 새롭게 찾아들 것도 같지만 남은 오늘만큼은 자부심 좀 갖고 지내 보자. 나는야 7년 동안 한결같이 메주를 쑨 여자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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