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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쿼카킴 Jan 12. 2019

일회용품 4. 낭비와 소비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기


 놀랍게도 서비스가 좋아질수록, 산업이 발달할수록 낭비는 사회를 유지하고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된다. 그래서 더 많이 쓰고 더 많이 버릴 것을 조장하는 지금의 사회에서는 가끔은 소비를 함으로써 연쇄적으로 또 다른 소비가 필요해지기도 한다.

 어여쁜 나의 로즈골드 스테인리스 빨대를 처음 택배로 받았을 때, 택배 상자 안에서 빨대가 최소한의 포장도 없이 뒹굴뒹굴 굴러다니고 있던 모습에 충격을 받았었다. 빨대 내부를 청소하기 위한 솔, 들고 다닐 파우치를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얼마나 ‘스테인리스 빨대’라는 이미지에만 현혹되어 있었기에, 실제 사용에 대해선 제대로 고려도 안 해보고 우선 주문부터 했던 걸까. 어쩔 수 없이 빨대를 담을 만한 파우치나 통을 사러 돌아다녔다. 마땅한 케이스도 없었을 뿐 아니라 일회용품 사용을 막기 위해 물건을 사고, 그 물건을 사용하기 위해 또 소비를 이어가는 나 자신이 좀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뿐이 아니다. 한 번은 나와 함께 스테인리스 빨대를 구입한 친구가 의도치 않은 불편함에 대해 고백한 적이 있다.

 “아니, 빨대를 가지고 다니면서 사용하려고 하니까 천으로 된 케이스를 사용하면 천에 다 묻는 거야. 내가 막 엄청 민감한 편은 아니지만, 솔직히 청결하지 못하다는 느낌을 주잖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불만이었다. 나 역시 천으로 된 케이스였기 때문에 음료를 마신 후 화장실에서 빨대를 씻거나 휴지나 냅킨을 사용해 닦았다. 일회용 빨대를 사용하지 않으려고 산 건데 일회용 냅킨을 사용하게 되다니! 정말 벗어날 수 없는 일회용의 늪이었다.

 이렇게 일회용품이 내 삶 전체를 둘러싸고 있어서 벗어날 수 없다고 느낄 때 나는 마음 깊은 곳까지 우울함이 스며들었다. 혹은 빨대를 들고 다니는 것, 배달음식을 시켜 먹지 않는 것, 테이크아웃을 하지 않는 것, 버려진 우산 커버를 재사용하는 것, 일회용품은 넣을 필요 없다고 잊지 않고 말하는 것과 같이 스스로 했던 작은 약속조차 지키지 못할 때 무력감과 실망감에 슬퍼지곤 했다. 그리고 그런 우울함은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좀 더 극단적으로 나타났다.

 오롯이 혼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밥도 먹고 쇼핑도 다니고 같이 사회적인 활동을 하기 때문에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으려는 결심은 결코 비밀이 될 수 없었다. 나에게 예쁘고 당당한 빨대가 있기 때문에 일회용 빨대가 필요 없다는 얘기를 하면 물론 다수의 사람은 관심을 갖고 지지해주는 편이지만 때로는 예민하고 까다로운 사람이라고 여기는 일도 있었다. 슬프게도, 그런 반응은 가까운 사람일 때 더 쉽게 일어난다.

 “냅킨은 쓰면서?”

 “네 생활이나 잘하지.”

 상처 줄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저런 반응은 꽤 상처가 된다. 마음 한편으로는 내가 충분히 행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스스로의 죄책감이, 또 다른 한 편엔 민감하고 귀찮은 사람이 될 것이라는 두려움과 슬픔 속에서 내가 어떤 태도를 취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그런 상황을 피하고 싶다고 해서 조용히 있는 게 결코 좋은 해결책이 아니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문제는 용기를 내는 일이었다. 가끔 실수를 하고 예전의 나의 모습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을 때도 실망하지 않고 계속 나아갈 수 있는 용기, 완벽한 인간에 대한 기대나 냉엄한 도덕적 잣대 앞에서 분노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하나씩 해나가는 성취의 기쁨을 누리는 용기, 또 다른 사람에게 함께 하자고 이야기를 건넬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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