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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쿼카킴 Jan 12. 2019

일회용품 3. 일회용품이 우리를 길들이는 법


 맙소사, 빨리 잊고 싶은 기억이지만 변명을 하자면 어쨌든 비닐봉지는 정말 편리하고 용이한 면이 있었다. 또 일 년짜리 계약으로 묶여 매달 월세를 내는 입장에서 오래 쓸 수 있는 비싸고 좋은 물건을 살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떠날 것이고 곧 정리할 생활이니까 짐만 되고 어차피 버리고 가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하나를 사더라도 오래 사용하고 재사용하려는 마음은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한곳에 정착해 안정적인 삶에 대한 확신이 있을 때 가능할 것 같았다. 방 한 칸 마련할 전세금도 없는 내게는 쉬운 일이 아니지만 말이다.

 사실 편리성이야말로 우리가 일회용품을 지금까지 절찬 사용 중인 가장 큰 이유다. 편리도 보통 편리한 게 아니어서, 일회용품의 사용은 확실히 인간의 노동을 줄여주었다. 우리는 옛날보다 덜 설거지하고, 짐도 덜 들고 다니고, 훨씬 많은 시간을 아끼고 있다.(그 아낀 시간에 또 다른 노동이 가득 들어찼다는 문제는 다음에 생각하기로 하자.)

 문제는 지나치게 많은 부분에서 일회용품에 의지하고, 이제는 일회용품이 없으면 생활이 안 되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산업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서비스가 발달하고 소비가 핵심이 되는 사회에서는 이제 쓰지 않고자 해도 어쩔 수 없이 일회용품을 사용해야만 하는 순간이 많다. 나는 우리가 소비에, 특히 일회용품 소비에 길들여지고 있다는 상상을 자꾸 하게 된다.

 스테인리스 빨대를 산 이후 나의 작은 행복 중 하나는 일회용 빨대를 사용해야 하는 순간에 가방에서 빨대를 꺼내는 일이다. 일행이 있으면 최근의 내 관심사인 일회용품에 대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고, 너무 소소하고 뒤늦은 나의 노력에 약간의 뿌듯함을 느끼는 순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소박한 기대를 갖고 있으면 두 번 중 한 번은 꼭 실망하는 일도 생긴다. 주문할 때 깜빡하면 이미 빨대가 꽂혀 나오는 경우가 그렇고, 카페 내에서 음료를 먹고 가는데도 일회용 컵에 담아져 나오는 경우가 그렇다.

 뒤늦게 “앗, 제가 빨대가 있는데요!” 라거나 “저 먹고 가는 건데 머그잔에 주시면 안 될까요?” 하고 이의를 제기한다고 해도 이미 일회용품은 ‘뜯어짐’으로 자신의 소용을 다 한 것이라 버려지는 결과는 똑같다. 일회용 빨대가 예쁘게 꽂혀 나온 일회용 컵을 들고 쓰린 속으로만 벌써 몇 번째 저 항의를 해봤는지, 나는 조용히 침울해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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