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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쿼카킴 Jan 12. 2019

일회용품 2. 검은 봉지의 습격


 그래서, 라고 하기엔 너무 작은 일이지만 친구들과 함께 스테인리스 빨대를 구입했다. 색도 예쁜 로즈골드로. 카페를 그렇게 자주 다니는 입장에서, 이제 카페 내에선 일회용 컵 사용도 금지되었는데 떡하니 일회용 빨대를 쓰는 게 영 마음에 걸렸다. 그렇지 않아도 자주 가는 채식 카페에서는 아주 예전부터 종이 빨대를 사용하고 있었다며 나의 선택을 반겼다. 대단한 일을 시작한 것도 아닌데, 환경운동가라도 된 것처럼 주변에서 기대에 찬 눈빛을 보내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워졌다. 아주 어릴 때부터 플라스틱과 일회용품이 미치는 환경적 악영향에 대해 배워왔고 수많은 환경학자의 경고에도 눈 하나 깜짝 않다가 결국 나에게 피해가 미치기 시작해야 행동으로 옮기게 되었을 뿐인데…. 부끄러울 마음이었다.

 그 후의 삶이 예전과 같을 수는 없었다. 내 눈이 닿는 모든 곳에서, 모든 시간 동안 일회용품이 사용되고 버려지고 있었다. 예전에는 어떻게 이것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지 믿기지가 않았다. 길거리에서는 컵부터 뚜껑, 빨대까지 전부 플라스틱인 테이크아웃 커피가 마시다가 분리수거도 제대로 되지 않은 채 버려지고 있었고, 배달음식을 시켰더니 모든 용기가 플라스틱과 스티로폼 용기에 담겨 와서 경악스러웠다. 비가 오는 날엔 어딜 들어가려고 할 때마다 새로운 우산 커버를 쓰느라 엄청나게 많은 비닐이 버려졌다. 일회용 젓가락과 포크 따위는 왜 말하지도 않고 계속 넣어주는지, 물어봤다면 절대로 넣지 말아 달라고 얘기했을 텐데 말이다!

 한 번 의식하기 시작하니까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마침내 텔레비전과 영화, 심지어는 유튜브에 나오는 쓰레기들도 거슬리기 시작했다. 

 ‘저 사람은 왜 분리수거를 안 해?’

 ‘저건 굳이 비닐장갑을 안 써도 될 것 같은데?’

 남들의 삶에 참견하고 싶은 욕구가 파도처럼 일었기 때문에 나는 그 마음을 참기 위해 차라리 눈을 감아야 할 지경이었다. 참고로 나는 이걸 ‘검은 봉지의 습격’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동안 눈치채지 못했던 불편한 진실들이, 어느 날 걷잡을 수 없게 눈에 띄고 신경이 쓰이며, 마침내 내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는 거대한 습격이었다.

 사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 여전히 나를 수치스럽게 한다. 바로 얼마 전까지 이 문제에 대해 “걱정이지.” 라고 말하면서도 거의 신경 쓰지 않았고, 지금도 완벽하게 일회용품의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과거의 몇몇 기억은 내가 이 쓰레기 문제의 주범인 것 같은 죄책감을 준다.(사실 주범이 맞기도 한 것 같다.)

 자취생활 할 때가 대표적이다. 혼자 살고, 정신없이 살고, 정돈되지 않게 살았던 때일수록 일회용품 사용도 늘었다. 이상하게 비닐봉지에 그렇게 집착을 했었는데, 놔두고 모아두면 어쨌든 요긴하기 쓸 데가 있다는 게 나의 생각이었다. 일반 쓰레기는 물론 재활용, 음식물 쓰레기 처리할 때도 편하고,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먼지 묻지 않게 넣어서 보관하기에 좋다고 일부러 필요 이상의 비닐봉지를 더 받아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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