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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쿼카킴 Jan 12. 2019

일회용품 5. 세상을 바꾸는 작은 용기


 최근 친구 J는 독립해서 직장과 가까운 곳에 작지 않은 자기만의 방을 갖게 되었다. J는 새로운 집을 꾸미고 그곳에서 살아갈 미래에 대한 설렘으로 가득해 보였다. 나를 집들이에 초대해주었는데, 우리가 좋아하는 와인이 있다며 함께 마시자고 엄청 흥분했다.

 “내가 퇴근하고 집 들어가는 길에 일회용 와인잔을 사갈 테니까, 집에서 같이 마시자!”

 그 이야기를 듣고 신나는 한편 마음이 불편했다. ‘왜 일회용 와인잔이 필요할까?’ 하는 생각에 특유의 오지랖이 발동하며 말리고 싶었지만 쉽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일회용 와인잔을 사용해본 적이 없어서 그게 다회 사용이 가능한 플라스틱인지, 아니면 정말 한 번 마시고 버리는 용인지조차 잘 알지 못하기도 했고, 아무런 대화의 맥락도 없이 다짜고짜 일회용품 사용하지 말자고 말하는 것은 인간관계에서 여러 문제를 일으킬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친구 J는 정말 절친한 사이인 만큼 내 의사를 충분히 이해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또 종종 환경 문제를 이야기했던 까닭에 길게 설득하지 않아도 이 문제에 충분한 공감대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이런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여전히 유쾌한 일이 아니다. 얼마만큼의 편의를 포기할 용의가 있는 나조차도 때때로 플라스틱을 사용하게 되는데, 다른 사람에게 편리함을 포기하라고 말할 수 있을까? 편의를 포기하고 귀찮음과 비용을 감수하라고 말하는 게 과연 타당한 일일까?

 그러나 한편에는 친구에게도 말을 꺼내지 못한다면, ‘검은 봉지의 습격’ 속에서 내가 느꼈던 세상의 불편함과 죽어가던 아기 새의 눈빛은 언제까지고 그대로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 굉장한 사명감과 정의감이 있어서 이 세상을 좋은 곳으로 바꾸고 말겠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언제까지나 내가 살아가는 세상의 문제에 방관자이자 타자로만 나 자신을 내버려 두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세상을 바꿀 때 원래 용기가 필요한 법이라던데, 나는 나 자신을 바꾸는 것에도 이렇게 큰 용기가 필요한 법이란 사실을 그동안은 모르고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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