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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쿼카킴 Jan 12. 2019

일회용품 7. 편리함의 중독성


 옛날에는 짜장면을 시키면 식당에서 먹는 것과 똑같은 그릇에 배달이 오고, 그릇을 가지러 다시 배달하는 분이 오시곤 했는데 이젠 뭘 시켜도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 온다. 인간의 노동력을 이런 식으로 적극적으로 줄여주는 게 일회용품의 장점이지만, 소비자의 입장에선 무엇을 선택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아예 선택권이 없어져 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는 이런 현상이야말로 편리함에 우리 사회가 중독되고 있다는 증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가 편리함에 중독되었을 때 늘어나는 것은 쓰레기만은 아니다.

 일본에 잠시 살다가 나름대로는 굉장히 오랜만에 한국에 놀러 왔을 때의 얘기다. 친구 L과 밥을 먹으러 식당에 갔는데, 계산하는 곳이 따로 없고 키오스크(무인매표기)가 떡 하니 서 있었다. 처음에 나는 그 기계의 용도도 모르고 빠르게 지나쳐 곧장 자리에 앉으려고 했다. L이 웃으면서 주문도 안 하고 어딜 가냐고 했는데 그때까지도 문제가 무엇인지 전혀 알아차리질 못했다. 키오스크로 주문해야 한다는 사실을 듣고도 처음에는 버벅대며 ‘뒤로 가기’를 다섯 번쯤 눌렀다. L이 옆에서 계속 친절하게 알려준 덕에 나는 세트메뉴에 음료까지 추가로 주문하는 데 성공했다.

 젊은 게 좋긴 좋은지 한 번 그렇게 사용법을 익혀놓으니까 그다음부터는 패스트푸드점, 카페, PC방, 영화관, 식당 어디에 있는 키오스크든 두려움 없이, 빠르고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그래서 처음의 기억은 완전히 잊고 나도 키오스크에 익숙해져버렸을 무렵이었다. 키오스크만으로 주문이 가능한 동네 패스트푸드점에서 주문을 끝내고 앉아 음식을 기다리고 있는데, 50대 즈음으로 보이는 아주머니 한 분이 들어오셨다. 주문을 하려고 하셨지만 쉽지 않으신 게 분명했다. 아르바이트생은 무관심하고 나는 속이 타들어 갔다. ‘당장 엉덩이를 움직여 도와드리지 않고 뭐해!’ 내 안의 나에게 따끔하게 혼이 나며 몸을 일으키는데 아르바이트생이 드디어 보았는지 아주머니의 주문을 받아주었다. 

 “어머니, 이거 원래는 이렇게 주문 안 되는 거예요.”

 “아니, 내가 저런 기계를 언제 써 봤어야 알지.”

 빠르고 편리한 것은 좋다. 단, 그걸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한해서. 당장 나만 해도 가게마다 도장 찍어 쿠폰 적립하다가 이 어플을 설치하셔야 하고, 어느 웹에 가셔서 인증을 하셔야 하고 하는 얘기를 들으면 머리가 새하얘지고 어색하게 웃으며 “그냥 저 안 해도 괜찮을 것 같아요.” 하는 사람이다. 좀 더 간단하고 혁신적이고 편리한 세상의 변화는 모두에게 해당하지 않는다. 극단적으로 시각장애인이 키오스크를 사용할 수 있을까? 키오스크 전체 화면에 손이 닿지 않을 휠체어 이용자들은?

 인간 문명이 발달한 미래에 대해 상상할 때면, 우리는 편리함이 극도로 강화된 사회를 떠올린다. 고도의 기술이 사회적 약자에게 편리함을 제공하고 더 쉽게, 더 많이 사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돕기를 꿈꾸면서 말이다. 그러나 편리함에 익숙해질수록, 실제 세상은 우리의 상상과 커다란 차이를 벌리며 멀어지는 것 같다. 인간의 노동을 크게 줄여준 일회용품과 편리를 제공해주는 기술들은 이미 많은 것을 배제하면서도, 그 소외된 것들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만들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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