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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대한필맨 Mar 24. 2020

마케터 필맨의 일

세계 최초 선수단 마케팅 팀

작년 여름 재밌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세계 최초 선수단 마케팅 팀'이란 슬로건을 걸고 전 소속팀에서 마케팅 팀을 꾸렸다. 내셔널리그 특성상 코칭스텝 이외에 구단 프런트가 존재하지 않았었다. 구단에서 하는 마케팅이라고 한다면 내셔널리그 명예기자가 운영하는 인스타그램 주소뿐이었다.


마케팅 팀을 꾸려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는 텅 빈 관중석 때문이었다. 3부 리그 격인 내셔널리그라고 치더라도 관중 수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저 하부리그라서 그런 것일까?


아니다. 그저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노력은 마케팅이다. 먼저 3부 리그의 목포에 위치한 팀이라는 전제가 마케팅하기 힘들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마케팅을 해도 되겠냐?라는 의구심도 들것이다. 그러나 현대의 창업자 고 정주영 회장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봐 해봤어?" 그의 말씀 따라 일단 해봤다.




열성 서포터즈 ‘스카이하이’

애초에 목포시청 축구단에는 마케팅 팀 자체가 없었다. 시민들이 즐길 수 있는 문화생활을 확장시켜주기 위해 생긴 축구팀인데, 목포시민들 중 목포시청 축구단이라는 팀이 있는지 조차 모르는 경우가 허다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성적이 좋으면 관중수가 늘어날 거야" 그 말은 반대로 하면 성적이 좋지 않으면 줄어든다는 말이다. 관중의 규모는 팀 성적에 따를 수는 있다. 하지만 축구장에 발길을 딛는 관중은 성적 외 다른 요소로 발걸음을 할 수도 있다. 좋아하는 선수가 있어서, 지역 팀이라서, 경기장 분위기가 좋아서, 아이들이 축구를 좋아해서 등 축구장을 찾는 이유는 각양각색이다.


마케팅 활동을 하다 보니 목포시청 축구단의 존재조차 모르는 시민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축구팀의 존재를 몰랐으니 경기장에 찾아오는 경우는 적을 수밖에 없었다. 딱 한 번 관중이 많았을 때가 있었다. 개막전이었다. 구름처럼 몰려온 관중들은 전반전이 끝나자 구름처럼 달아났다. 보여주기 위해 동원된 사람들이었다. 생각보다 문제가 심각했다. 시민을 위해 탄생한 팀이 퇴색되어 우리들만의 리그를 치르고 있었다.


이런 생각이 꼬리를 물다 보니 결국 선수단 마케팅 팀을 만들어서 운영을 시작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축구인 중 한 사람으로서 사명감이 들었다. 선수들이 직접 마케팅을 하는 자체가 축구계에 신선한 자극을 줄 수 있을 거라는 기대와 함께 말이다.




왼쪽 마케팅팀 회의, 오른쪽 외부지원팀 부장님과 회의

선수단 마케팅 팀은 '시즌 마지막 경기, 서포터스석 100명 채우기'로 목표를 설정했다. 정확한 목표치가 동기부여에 크게 작용하리라 생각했다. 기획팀, 영상팀, 외부지원팀 이렇게 3개의 부서로 나눠서 시작했다. 기획팀과 영상팀은 실제로 선수들이 직접 기획하고 영상을 찍고 편집하는 역할을 맡았다. 외부지원팀은 내셔널리그 명예기자와 목포시청 축구단 서포터스 출신 대학생 그리고 호남대학교 학생 두 명을 섭외해서 꾸렸다. 그들을 일일이 직접 만나서 마케팅 팀 취지와 목적을 설명하고 프러포즈를 했다.

구색을 갖추자마자 우리는 실행으로 옮겼다. 나는 진지했다. 소귀의 성과를 얻고 싶었다. 기업구단에서도 시도하지 못했던 것들을 내셔널리그 팀에서 시도해보고 싶었다. 목포시청 축구단과 비슷한 배경을 가진 팀 중에서 성공적인 마케팅으로 관중 유치를 잘하는 팀을 물색했다. 일본의 '반포레 고후'라는 팀이 적합한 롤모델이었다. 그 팀은 인구 19만 명의 소도시의 팀이 한 시즌 평균 관중 1만 2천 명을 달성했었다. 현재에도 평균 관중이 7천 명 이상이라고 한다. 목포는 22만 명의 시민이 거주 중이다. 현재 평균 관중 수는 100명 채 되지 않는다.


반포레 고후도 평균 관중이 600명인 시절이 있었다. 반등할 수 있었던 계기는 적극적인 지역 밀착 활동이었다. 여기서 힌트를 얻어서 지역 밀착 활동을 키워드로 잡았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예산도 지원도 아무것도 없는 상태였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다.


스카이하이 서포터즈 형님들과

서포터스를 공략하라.

목포시청 축구단에는 '스카이하이'라는 열혈 서포터스단이 있다. 팀 창단 때부터 10년째 변함없이 응원을 보내고 있다. 서포터스 분과 직접 만나서 선수단 마케팅 팀에 대해 자문을 구했다. 목포시청 축구단이 시민들에게 어떻게 비칠까에 대해 알고 싶었다. 그리고 서포터스분들이 더더욱 팀에 애착이 불타오르도록 기름을 붓고 싶었다.


처음 시작한 프로젝트는 스쿨어택이었다. 매 경기 때마다 찾아주는 초등학교 5학년 학생을 위한 서프라이즈 이벤트였다. 여름이 되면서 경기 시간이 오후 7시로 늦춰졌다. 학생이 밤에 시작하는 경기 때문에 앞으로 직관을 오지 못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학교에 전화를 해서 프로젝트에 대한 기획을 말씀드렸다. 감사하게도 담임 선생님께서 한 시간을 우리에게 주셨다. 학생이 좋아하는 선수들을 데려가서 깜짝 이벤트를 한 시간 동안 했다. 준비한 선물도 건네고 목포시청 축구단에 대해 홍보도 했다.


그 후에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학생 부모님께서 아들의 축구관람을 위해 함께 경기장을 찾아주신다는 소식이었다. 실제로 시즌이 마칠 때까지 홈경기에 모두 출석을 했다.


왼쪽 : 스쿨어택, 오른쪽 : 결혼기념 액자 전달


이 외에도 서포터스 중 한 분의 결혼식을 기념하기 위한 서프라이즈를 기획했다. 경기 종료 후에 미리 준비한 액자를 선물하면서 단체 기념사진을 찍었다.



한계에 봉착하다

서포터스를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골대 뒤 응원 소리 볼륨을 높였다. 하지만 100명의 목표는 확장을 위한 기획이 더해져야 했다. 여고 앞 홍보, 목포 용병, 자체 미디어데이, 영화 패러디 경기 포스터 제작, 영상 공모전 참여를 하면서 박차를 가했다. 그러나 팀이 아닌 선수 개인의 역량으로는 마케팅의 한계가 존재했다.


더 많은 기획들이 있었지만 절차상 막히는 부분이 많았다. 지역 밀착을 위해 학교나 공공기관을 찾아가기 위해 문의 전화를 한다. 돌아오는 답은 정식 절차를 밟아서 서면으로 보내라는 것이다. 선수단 마케팅 팀의 역량이 확장되지 못하는 큰 문제였다.


시민들과 목포 도시 투어, 선수들과 함께 하는 풋살대회, 교실에서 하는 축구놀이(레크리에이션) 등 기획과 구성까지 맞춘 프로젝트들도 많았다. 딱히 하소연할 곳도 없었다. 온전히 선수들의 시간과 역량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왼쪽 자체미디어데이, 오른쪽 : 영화 패러디 포스터


수많은 시도를 했지만 서포터스석 100명 채우기는 절만도 미치지 못하고 종료되었다. 그러나 유의미한 도전이었다. <마케터의 일>을 쓴 우아한 형제들 마케터 장인성 씨는 마케터에 대해서 세 단어로 표현했다.


경험하고, 공감하고, 함께하는



<마케터의 일>을 읽으니 작년의 도전이 유의미한 도전이었다고 생각되었다. 마케팅을 경험했고, 서포터스를 공감하고, 선수 및 외부지원팀과 함께 했으니 말이다. 장인성 씨는 마케터란 유의미한 성과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유의미한 성과란 매출 상승이다. 마케팅 팀에는 관중 증가일 것이다. 목표는 100명을 두고 진지하게 임했지만, 쉽지 않은 목표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진짜 목표는 우리의 과정을 기록하는 것이었다. 그 기록들이 쌓여서 시즌이 끝나면 하나의 스토리로 만들고 싶었다. 이 스토리가 목포시청 축구단의 브랜딩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시즌이 끝나고 내셔널리그 연맹에서 팀 별로 리뷰를 했다. 그 리뷰에는 선수단 마케팅 팀에 대해 언급이 되었다. 소귀의 성과다. 당장 가시적인 성과가 드러날 수는 없지만 언젠가 우리의 흔적이 팀 마케팅의 발화점 역할이 되었으면 한다.  




가장 큰 성과는 개인의 성장이었다. 장인성 씨는 마케팅을 잘하기 위해서는 뭘 해도 잘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듣고, 보고, 이해하고, 핵심을 짚어내고, 말하고, 설득하고, 문서로 정리하고, 공감하고, 깨닫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들을 하는 사람이 마케터란다. 선수단 마케팅 팀은 위의 보기들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환경설정이 되었다. 팀을 꾸리고, 사람들을 만나서 설득하고, 공부하고, 연구하고, 논의하는 과정들은 나를 성장시킬 수밖에 없었다.


스스로 만든 마케팅 팀의 경험은 조금 더 넓은 세상을 보게 만들었던 경험이었다. 그리고 이 경험이 훗날 스포츠인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 개발이라는 비전에 좋은 자양분으로 쓰여지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선수가 아닌 마케터로서 한국 축구를 바라본 결과 든 생각은 이렇다. 팀, 지도자, 선수들이 먼저 팬들에게 다가가야 한다. 경기 결과로 관중을 모으는 게 아닌, 팀에 대한 애착으로 발길을 모아야 한다.


K-리그 2 안산 그리너스의 행보를 볼 때면 박수가 절로 나온다. 당장 전북, 서울, 수원만큼의 관중 수를 모을 수는 없지만 지금처럼 지속한다면 기하급수적으로 팬층이 두터워질 거라 예상한다. 즉, 긴 호흡을 둬야 한다. 각 지역 팀에 맞는 전략을 세우고, 장기적으로 실행하는 것이 코어가 되어야 한다. 반포레 고후를 만들 수는 없더라도 목포시청 축구단을 만들 수는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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