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스스로 지켜라.
최근 연예인들의 잇따른 안타까운 자살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설리, 구하라, 차인하는 최근 한달 넘짓 사이에 자의로 세상을 등졌다.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대중의 사랑을 먹고 살아가는 연예인들은 사회적 시선에 민감할 수 밖에 없다. 자신의 심리 상태에 따른 진짜 모습이 아닌 대중이 원하는 페르소나를 보여줘야 한다. 딸이 수술대에 올라갔어도 무대 위에서 관객을 웃겨야 하는 삐에로처럼 말이다. 물론 모든 인간은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적절한 페르소나를 사용한다. 하지만 자신에게 맞지 않은 정체성을 늘 보여줘야 한다면 정신적 고통이 상당하리라 짐작해본다.
우리 인간은 타인에게 이상적인 모습을 기대한다. 경찰관은 정직해야하고, 검사는 공정해야하며, 정치인은 이타적이어야 한다. 만약 사람들의 머릿속에 심어진 이상적인 모습에 반하는 행동을 한다면 격한 불쾌감을 표출하게 된다. 가장 취약한 직업 중 하나가 연예인이다. 빈틈을 보인다면 사람들은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 막장 소설을 쓰고 사실로 치부해 버린다. 아무도 보지 않는 혼자만의 공간에서 악플을 써내려간다. 악플은 무형의 칼로써 상대방의 심장을 찌른다.
2019년 현재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국민들에게 삶을 이유를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할까? 단언컨대 행복을 가장 꼽지 않을까 싶다. 돈을 벌기 위한 노력, 승진하기 위한 노력,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한 노력들은 행복을 얻기 위한 행동들이다. 행복의 정의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으나, 확실한 것은 ‘상대적 우월감’과 ‘절대적 지지를 보여주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행복감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은 우리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우리는 사회라는 틀안에서 살아간다. 즉, 우리는 사회에 영향을 크게 받는 존재라는 의미다. 사회에 속하지 않는 이상 타인의 시선을 무시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자살을 선택한 연예인들은 자신이 인지한 사회에서 배척 당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을 것이다. 높게 쌓아 올린 사회적 지위만큼 고통을 느끼면 당연히 정신적으로 흔들리게 된다. 스마트폰의 시대에 접어 들면서 다양한 플랫폼으로 연예인들과 일반인들의 소통이 원할해졌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듯이 노출이 높아진 만큼 비판과 비난의 양도 증가했다. 개인방송의 시대가 열리면서 악성 댓글 ‘악플’은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고 있다. 현재로써는 강력한 법적 절차로 대응하는게 최선이다. 경각심을 심어주는 것이다. 그러나 슬프게도 우리의 스타들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거나 실수를 저지른 사람들에게 강한 비판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비판을 넘어서 비난을 일삼는다. 정도를 넘어선 비난까지 일삼는 사람들은 왜 그럴까? (비판의 대상에게 피해를 주고 싶다면, 그 대상이 제공하는 서비스나 제품을 사용하지 않으면 된다.)
[인간 본성의 법칙]의 저자 로버트 그린은 우리 인간에게 ‘억압의 법칙’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억압의 법칙은 집단에 적응하기 위해 자신의 본 모습을 감출 때 생겨난다. 예를 들어 상사가 하기 싫은 업무를 주더라도 웃으면서 ‘알겠습니다’라고 부하 직원의 모습을 말하는 것이다.
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모습을 ‘그림자’라고 하자. 그림자는 유아기 때 두개의 힘이 충돌하면서 만들어진다. 우리는 태어남과 동시에 엄청난 에너지와 격렬함을 가지고 있다. 백지 상태인 아기는 허용되는 범위와 허용되지 않은 범위를 구분하지 못한채 자신의 에너지와 격렬함을 쏟아 낸다. 부모의 사랑을 받기 위한 행동, 형제와 경쟁에 이겨서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 하고 싶은 행동 등 관심 받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한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감정이 교차되면서 쌓여간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는 전적으로 약한 존재로써 부모에게 생존을 온전히 의존한다. 부모는 자식의 에너지와 격렬함을 사회의 틀에 맞춰 재단한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본능을 감추고 사회가 원하는 모습을 그림자에 담아낸다.
집단에 적응하는 것이 첫 번째 동기가 됐기 때문에 우리는 내 인격의 어두운 면을 억제하고 꾹꾹 누르는 법을 배웠다. 우리는 내가 속한 문화의 모든 이상적인 것들을 내면화했다. 착하게 굴고 친사회적인 가치관을 가졌다. 이런 것들은 대부분 순조로운 사회생활을 위해 꼭 필요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 본성의 많은 부분은 지하로 그림자 속으로 자리를 옮겼다. 물론 이런 어두운 충동들을 제어하는 법을 결코 배우지 못하고 결국 실생활에서도 충동을 발산하는 사람들도 일부 있다. 악플러 들이 그렇다.
내면의 어둠을 감추려면 에너지가 필요하다. 반대로보면 에너지가 떨어질 때 어둠이 드리워진다는 말이다. 굳이 자신의 어둠을 감추지 않아도 되는 곳이 있다. 바로 온라인이다. 오프라인에서는 사회적 지위와 체면 그리고 관계 때문에 속내를 감춰야 한단. 온라인에서는 상대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댓글을 쓰기 때문에 자신의 속내를 감출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는 스스로 인정할 수 없는 욕망들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욕망들을 다른 사람에게 투영한다 .어떤 때는 남들을 심판하고 비난하기 위해 그냥 상상을 통해 아무 근거 없이 이들 특성을 투영하기도 한다. 또 어떤 때는 그렇게 터부시되는 욕망을 특정한 형식으로 표현하는 사람을 찾아낸 다음, 나의 반감과 혐오를 정당화하기 위해 그들을 과장해서 묘사하기도 한다.
많은 이들이 억압의 법칙에 의해 지금도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을 것이다. 내면의 어둠을 투영한 대상에게 상처를 주면서 만족하지 않을까 싶다. 무심코 던진 돌에 맞아서 개구리는 무지개 다리를 건넌다.
왜 악플러들이 악플을 달게 되는지에 대해 알아보았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악플러의 90퍼센트 이상이 억압의 법칙에 의해 행동하는거라 확신한다. 사회에 적응하기위해 만든 그림자를 거두고 어릴적 에너지 넘치고 격렬했던 때로 회귀하는 것이다. 온라인 안에서는 사회의 틀이 주는 억압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가감없이 날것을 보여준다.
악플러들은 내면의 어둠을 빛으로 전환시키는 방법을 알아야한다. 자신의 그림자를 바라보고, 포옹하고, 탐구하며 마지막으로 다시 드러내는 것이다. 이 또한 자신의 본성을 인지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인간은 본능에 반응하도록 프로그램되어있는데 의식적으로 이성을 깨워야한다.
하지만 인간의 본성에 대항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이성적인 사람은 그 사실을 안다. 본능에 충실해 타인에게 상처주는 자극에도 의연한 태도를 가져야 자신을 지킬 수 있다. 자신 또한 본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부족한 모습으로 인해 타인의 비판과 비난을 받더라도 의연함을 보일 수 있다.
대한민국은 자살률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다. 그만큼 대한민국 국민들의 정신질환이 심각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자살률이 높음에도 정신치료를 받는 비율은 다른나라에 비해 현저히 낮다. 만약 정신적으로 힘들 때는 의사의 도움을 받는게 도움이 될 것이다.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내가 변할 뿐이다.
악플러들에게는 강력한 법적 처벌을 내리고, 국민들에게 올바른 온라인 문화 교육을 통해서 안전한 온라인 사회가 만들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