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이럴 때 화가 난다.
주말에 훈련보다 더 힘든 생후 24일 차 신생아(아들) 육아를 하고 어젯밤(일요일)에 복귀했다. 숙소 복귀 후 새롭게 배정받은 방으로 옮겼다. 기존의 3인실에서 2인실로 옮겼는데 기대 이상으로 방이 좋았다. 룸메이트 후배와 함께 무려 3시간 30분 동안 청소를 했다. 우리는 방 컨셉을 '넓은 공간'으로 정했다. 컨셉에 맞추기 위해 침대도 옮겨가며 그동안 쌓인 먼지와 쓰레기를 깨끗이 치웠다. 몸은 고되었으나 깔끔하게 끝내고 나니 왠지 설레었다. 깨끗하게 된 방만큼 올 한 해가 잘 될 것 같은 기분이 팍팍!!
그때까지만 해도 청소가 오늘 밤 내게 화를 불러일으킬 나비의 날갯짓 인지도 몰랐다.
오늘 일정은 그야말로 빡빡한 일정이었다. 국세청 증빙 서류를 위해서 주민센터와 은행에 다녀오고, 급작스런 부주장 선임으로 코치님들과 주장 형과 함께 카페에서 1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선수 등록을 위해 교육영상을 보고 등록을 해야 했고, 내셔널리그 실적증명서를 뽑아야 했다. 아! 그동안 기부 증빙서류 자료도 받아야 했다.
지금은 동계훈련 시즌이다. 당연히 오전, 오후 훈련 두 탕을 했다. 그런데 부주장 선임으로 신경 써야 할 것들이 확 늘어났다. 장비 담담 체크, 창고 정리, 전달 사항, 총무 선임이 있었다. 또한 오늘 해야 할 업무 사이트마다 아이디와 비번을 다시 찾아야 하고, 선수 등록 때는 긴 시간 교육영상을 본 후 등록을 하려는데 보험회사와 보험 증권 번호도 적어내야 했다.
다시 보험사 사이트에 가입해서 증권번호를 찾아 등록했다. 이 와중에 골키퍼 코치님이 맡기신 가족관계 증명서도 사려졌고, 어제 내셔널리그 실적증명서 신청을 보냈는데 하루 종일 승인이 뜨질 않았다. 알고 보니 신청 후 전화를 걸어서 승인 요청을 해야 하는 것이었다. 지금 시각은 밤 9시가 넘어가고 있다. 하... 도대체 오늘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해결해가는 과정에 수많은 저항들은 나의 평정심을 무너뜨려버렸다. 결국 밤 8시 반이 지나갈 때쯤 깊은 화남이 올라왔다.
어젯밤의 나는 분명히 설렘과 행복으로 미래에 대한 기대를 한 껏 품었었다. 그런데 오늘 밤의 나는 대학민국 축구 대표팀이 일본에게 졌을 때만큼 예민한 상태였다. 툭 하며 건들면 펑하고 터질 것 같았다.
평소의 나는 평정심이 잘 무너지지 않는다. 웬만한 자극에도 끄떡없다. 그런데 오늘 같은 패턴에는 배고픈 신생아들처럼 예민해진다. 피곤한 상태에 해야 할 일이 진행되지 않을 때면 답답하면서 화가 치밀어 오른다. 일의 수가 늘어날수록 화의 크기는 배로 커진다.
화내는 대상은 여러 가지다. 나 자신, 일을 진행하는 플랫폼, 업무를 만든 시스템 등 머릿속에 스치는 순간 대상이 된다.
다행히도 현재는 평정심을 찾았다. 예전 같았으면 일을 마무리할 때까지 씩씩대면서 했을 것이다. 아직 내일까지 일이 있음에도 현재는 편안하다. 그 이유는 이렇다. 적었기 때문이다. 일이 많아지자 할 일들을 메모장에 적었다. 그리고 우선순위를 정해서 급한 것부터 해결해 나갔다.
어젯밤 To do list를 적었던 것 중에 아직 못한 것은 내일 아침으로 미뤄진 '실적증명서 인쇄'와 현재 쓰고 있는 '매일 글쓰기', 그리고 '훈련일지'뿐이다. 오늘은 급작스러운 일정으로 (부주장 선임, 코치님과 주장형과 함께 간 카페, 선수 등록)으로 스케줄이 꼬였다. 꼬인 스케줄은 우선순위를 수시로 변경해서 할 수 있는 것들부터 차근차근 해결했다.
그리고 지금 적고 있는 이 글을 통해서 내가 왜 화가 났으며, 화낸 일이 별거 아니었구나를 깨닫게 되었다. 화를 냈던 나의 모습도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으니 자책하지도 않았다.
쓰나미처럼 밀려온 일들이 나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해 줬다. 그리고 화가 나거나 감정의 변화가 생길 때면 이렇게 적어본다는 게 좋다는 것도 깨닫게 해 줬다. 오늘을 계기로 나의 스트레스 한계점은 늘어났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한계점이 늘어나더라도 스트레스에서 자유롭기란 어렵다. 그때마다 오늘처럼 적어본다면 어떨까 싶다.
<베스트 셀프>의 저자 '마이크 베이어'는 ‘반 자아’에 대해 언급한다. '반 자아'는 '두려움과 불안 같은 부정적인 감정과 생각을 유발하는 것'이라고 책에서 정의했다. 오늘 나에게 반 자아가 튀어나왔다. 반 자아는 나를 보호하기 위한 반응일 뿐이다. 이를 인정한다면 ‘내적 성장’이라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인정을 위한 도구인 오늘 내가 사용했던 글쓰기를 통해 분명하게 보면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오늘 밤 화가 났던 나는 글쓰기로 진정하고 다시 내일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다음 말로 이 글을 끝맺으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