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워서 숨고 싶었다.
사람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딱 하나로 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각자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다를 수는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이것을 들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바로 많은 사람들 앞에서 스피치 하는 것이다. 다수의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보여준다는 것은 대담한 용기가 필요하다.
중학교 1학년 음악 수업 중에 리코더 시험이 있었다. 동요 한 곡을 리코더로 연주하면 되었다. 나는 시험 점수를 잘 받기 위해서 맹연습을 했다. 곡도 다 외웠고 소리도 잘 나왔다.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품었다. 나의 점수는 어땠을까? 당연히 잘 나오지 않았을까? 결과부터 말하자면 요즘 말로 폭망 했다.
연습도 많이 했고 완벽하게 숙달되었다고 자신했는데도 폭망 한 이유는 무엇일까?
당시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 보자. 내 차례가 오자 리코더를 들고 강단 앞으로 나갔다. 음악 선생님께서는 '시작'이라는 신호를 주셨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내 팔과 다리가 심하게 떨리는 게 아닌가. 지진이라도 난 걸까. 그건 아니었다. 오로지 내 몸만 벌벌 떨고 있었다. 점점 숨이 가빠지면서 어둠의 그림자가 나를 덮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온몸이 벌벌 떨리는고 숨이 가빠지는데 연주를 제대로 하기란 불가능했다. 당연히 점수는 최하점을 받았다.
나는 연습한 만큼 결과가 나오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운 생각보다 선생님과 친구들이 벌벌 떨면서 연주를 했던 내 모습을 겁쟁이로 생각할까 부끄럽고 두려웠다. 진짜 다시 과거로 돌아갔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왜 과거로 돌아가는 주전자는 만화 속에만 존재하는지... 세상이 야속했다.
현재로 다시 돌아와서 생각해보면 평소에 사람들 앞에 나가서 나를 보여준 경험이 열 손가락도 안되었다. 그 경험들도 발표나 인사 정도였다. (축구였으면 1등이었을 텐데...) 그러니 생전 처음으로 악기 연주를 44명 앞에서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시험 전까지 몇몇 친구들 앞에서 할 때는 자연스럽게 잘했는데, 멍석을 깔아주니 벌벌 떠는 겁쟁이가 되었다. 평가를 받는 자리에서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해야 한다는 것이 엄청난 부담감으로 돌아온 것이다. 혹시나 잘 못할까 봐, 실수할까 봐, 점수가 낮을 까 봐 하는 생각들이 머릿속을 하얗게 만들었다.
그로부터 16년 후 아산 무궁화 팀을 대표해서 신광초등학교에 진로교육 강연을 갔다. 150명의 4~6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축구선수의 삶에 대해 이야기해줬다. 중학교 1학년 때와는 다르게 자신 있게 내용을 전달했다. 강연을 마치고 3개월 후에 경기를 보기 위해 이순신 종합운동장을 찾은 신광초 학생들이 나를 알아봤다.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쓰면서 왜 경기 안 뛰냐고 순수한 눈빛으로 물어봤다. (선생님은 경쟁에 밀렸단다...) 나는 이때다 싶어서 학생들에게 강연에서 전달했던 메시지를 기억하냐고 물었다. 애들은 우렁찬 목소리로 "미쳐라, 포기하지 마라"라고 합창을 해줬다.
감개무량한 순간이었다. 3개월이 훌쩍 지났는데도 나를 기억하고 메시지도 기억하다니 말이다. 16년 전의 나와는 딴판이 되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나는 준비도 중요하지만 자신감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연습은 자신감을 높여주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리코더 시험에서 배웠듯이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연습을 통해 숙달을 시켰다면 다음은 리허설 또는 이미지 트레이닝으로 다수의 사람 앞에서 한다는 가정을 두고 해봐야 한다.
축구선수들도 연습용과 시합용이 있다. 연습 때는 기가 막히게 잘하는데 시합을 뛰면 실력은 반도 보여주지 못한다. 타인의 시선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리코더 시험을 망친 나처럼 말이다. 하지만 16년 뒤 나는 첫 강연에서도 자신 있게 할 수 있었다. 연습도 연습이지만 실전과 같은 이미지 트레이닝을 반복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고 메시지 전달력도 높일 수 있었다.
다시 리코더 시험을 본다면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적어도 폭망은 안 하지 않을까. 생각해보니 나의 결혼식 때 부른 축가도 망쳤다. 그때는 연습을 너무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