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이 만든 위대한 발명품 ‘한글’

이성을 가져야 뜻을 이룰 수 있다.

by 위대한필맨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언제, 누가, 왜 만들었는지 기록이 되어있는 문자이기 때문이다. 1444년 (세종 25년)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이 만들었다. 왜 만들었는지가 자부심을 가져도 될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하다. 한글의 이름 ‘훈민정음’의 뜻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다. 나라말이 중국과 달라 어리석은 백성들이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제 뜻을 펼치지 못하는 경우를 보고 딱하게 여긴 ‘애민정신’에서부터 한글 창제가 시작되었다.

세종대왕은 한글을 만들어 배포할 때 많은 장애물들을 넘어야 했다. 조선의 왕은 명나라의 왕을 황제로 여겨야 했기에 한자를 배척하고 한글을 만들었다는 것은 반감을 표출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었다.

유교사상에 물든 대신들 또한 부정적 태도를 보일 것이 눈에 뻔히 보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종대왕은 한글 창제를 시작하셨고 결국 이루셨다.


한글이 아니더라도 백성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을 것이다. 물론 한글 외에도 많은 것들을 백성들을 위해 힘쓰셨다. 충분히 많이 베풀고 있었음에도 한글 창제에 힘쓰셨던 이유는 바로 세종대왕의 이성적 판단이 만든 힘이었다.


세종대왕은 백성들의 삶이 개선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 고민을 하셨다. 그 이유를 환경과 외부에서 찾는 것이 아닌 백성 안에서 찾으려고 했다. 그 답은 글을 깨우치는 것이었다. 내가 우리말을 읽고 쓸 줄 아는 행운을 누리고 있을 수 있는 것은 세종대왕의 이성적 판단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인간의 뇌는 크게 3단계로 진화했다. 가장 오래된 뇌는 ‘파충류 뇌’다. 신체를 조절하는 모든 무의식 반을 관장한다. 즉, 본능의 영역이다. 그 위로는 ‘대뇌변연계라고 하는 오래된 포유류 뇌가 있어서 느낌과 감정을 관장한다. 그리고 다시 그 위로 ‘신피질’이 진화했는데 이 부분이 인지 능력과 인간의 언어를 통제한다.


위의 사실은 인간이 본능, 감정, 이성의 순서대로 반응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판단은 감정에서 이성으로 끌고 갔을 때 제대로 된 방향으로 적절한 방법을 사용해서 갈 수 있다. 감정적 판단이 왜 위험하고 이성적 판단이 왜 옳은지, 그리고 어떻게 이성적 판단으로 이동하는지에 대해 설명해보겠다.




내 안의 편향을 자각하라.


우리는 대부분 이성적 판단을 하고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못하다. 예를 들어 스마트 폰은 주기적으로 새로운 모델이 출시된다. 그와 동시에 광고를 통해서 많은 이들에게 구매욕을 상승시킨다. 많은 이들이 기존의 스마트폰 사용에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기종으로 바꾼다. 이성적 판단을 내린다면 100만 원이 넘어가는 새로운 모델을 굳이 살 필요가 있을까?


자신도 모르게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돈을 지불하는 경우는 이따금 발견되는 현상이다. 이를 ‘집단 편향’이라고 한다. ‘집단 편향’ 외에도 ‘확증 편향’, ‘확신 편향’, ‘겉모습 편향’, ‘우월성 편향’, ‘탓하기 편향’등이 있다. 위의 편향들의 공통점은 선입견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이성적 판단을 흐린다는 것이다. 자신의 편향을 인지만 하더라도 감정적 판단에 탈출할 수 있다.


최근 [MBC 100분 토론]은 ‘게임은 질병인가’에 대해 토론을 벌였다. 당시 토론은 막장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난장판 토론이었다. 여러 이슈가 있었지만 ‘우월성 편향’에 부합되는 패널의 태도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게임 중독은 질병인가를 놓고 토론을 벌이는 장소에서 이런 발언을 하셨다.

100분. 토론 출처 MBC


“여기서 게임이 중독인지 아닌지 토론하는 건 의미가 없다. 그건 언제가 끝나게 되어 있다. 왜냐하면 중독이니까.”


자신들의 주장은 무조건 옳고 상대는 틀렸다는 논리로 토론에 임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중요한 논제였던 만큼 아쉬움이 많은 토론 태도였다. 토론을 마치자 온라인 안에서는 뜨거운 감자가 되었고 ‘우월성 편향’으로 토론에 임한 패널을 무자비하게 비난했다. 이성을 갖고 토론을 준비했다면 하는 안타까움이 들었다.


위의 경우들은 나의 삶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현재 말레이시아에서 테스트를 보고 있다. 같은 포지션인 선수에 대해 평가를 할 때 낮은 점수를 준다. 괜히 싫고 밉다. 하지만 그들은 내게 피해를 주지 않았다. 나는 내가 보여줄 수 있는 퍼포먼스에 집중하고 준비하면 된다. 괜히 감정에 휘말려 멘탈이 휘둘린다면 테스트 평가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고로 나의 몸상태에만 집중하자.



심리적 방아쇠를 확인하라.


어제 연습경기를 해서 체력적으로 힘든 상태였다. 오늘 훈련을 하는데 다른 선수들은 컨디션이 괜찮아 보였다. 왜 나만 무거운 것 같지?라는 생각이 중었다. 운동을 마치고 다른 선수들과 대화를 나눴는데 모두들 무거웠다고 했다. 아마도 테스트라는 압박이 스트레스를 줬고 나만 빼고 괜찮아 보였던 것이다.


나는 인간 본성의 법칙을 읽고 있는 독자로서 금세 내 상태를 인지하면서 나에게 집중했다. 사람들은 압박감이 강해질 때 감정에 쉽게 휘둘린다. 선수들은 자신감이 떨어지면서 퍼포먼스에 영향을 미친다. 이때 자신의 상태를 빠르게 점검하고 이성적 판단을 내려야 한다. 어제 경기를 뛰었고 말레이시아의 잔디에도 아직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자 마음을 편하게 만들 수 있었다.



이성적 자아를 끌어내라


세종대왕의 이성적 자아는 백성을 위한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즉 감정에서 시작된 이성이라는 것이다. 내가 말레이시아 페낭까지 와서 테스트를 하는 이유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가족의 안위다. 아내와 곧 태어날 아기는 몸이 부서져라 뛰어야할 이유다.


목적은 동기부여에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이성적 판단으로 이어진다는 것은 행동으로 옮길 때 유효하다. 생각과 말뿐인 이성은 반쪽짜리 일뿐이다.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자신에 대해 철저히 이해해야 한다. 졸꾸러기는 이를 메타인지라 부른다. 자신이 완벽한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하면서 타인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정립시킬 수 있다.


위의 정립을 토대로 이성적 판단을 만들어간다면 사회 속에서도 우리는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있다.


사건의 중심에서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떨어져 생각하거나 적으면서 고민한다면 이성적 판단에 도움이 된다.


그리스어로 ‘누스(nuos)’는 지성이란 의미다. 도시 국가 아테나의 황금시대를 이끌었던 페리클레스는 아테나 여신을 기념하기 위해 아테나 여신상을 파르테논 신전 안에 세웠다. 아테나는 ‘이성’을 상징했다.


페리클레스는 ‘이성’의 힘으로 아테나를 만들었다. 엄청난 압박 속에서도 자신의 이성을 붙잡기 위해 노력했다. 아테나는 페리클레스의 이성적 판단 덕에 엄청난 진보를 이뤘다. 그의 죽음으로 이성적 판단이 사라지자 결국 아테나는 스파르타에 항복하고 말았다.




숙련된 기수가 되라.


고대 그리스인들은 감정과 사고의 적절한 균형에 대해 ‘말과 기수’로 비유했다.

감정을 위에 이성을 쌓아야 하는 우리는 ‘생각하는 자아’가 되어 숙련된 기수가 되어야 한다. 말은 인간의 본성으로 ‘감정’이다.


말은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지만 기수가 없으면 갈피를 잡지 못한다. 아직 길들여지지 않았고 포식자들의 위협을 받고 있으며, 끊임없이 말썽거리를 찾고 다닌다.


기수는 훈련과 연습을 통해 고삐를 쥐고 말을 인도한다. 이 짐승이 지닌 강력한 에너지를 생산적인 무언가로 바꿔놓는다. 둘은 나머지 하나가 없으면 쓸모가 없다.


세종대왕은 숙련돼 기수였다. 자신의 감정에 자극을 주는 환경 속에서도 적절한 방법으로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었다.




내 안에 잘못된 편향이 있는지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외부 자극에 대한 반응인지 확인해야 한다. 감정의 소용돌이가 몰아치기 전에 이성을 끄집어내어 적절한 판단을 내린다면 괜찮은 상황으로 이끌 수 있다.


이제 3일 차 테스트를 보내면서 이 글을 쓰니 심적으로 불안감을 낮추고 안정감을 높일 수 있었다. 글쓰기의 힘을 체험했다. 내 인생에서 어느 때 보다 이성이 지배해야할 시기다. 고로 내일도 이성적으로 최선을 다하자. 숙련된 기수가 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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