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는 자가 살아남는다.
2002년 월드컵은 나에게 축구선수라는 열정을 불러일으켰다. 축구에 대한 열정은 축구선수라는 꿈을 그리게 했다. 그 꿈속에서 나는 수비수 3명을 제쳐서 강력한 슈팅으로 골을 넣었다. 그렇다. 나의 꿈은 공격수 포지션에 뛰는 축구선수였다.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는 줄곧 최전방 공격수로(이하 공격수)만 뛰었다. 고등학교 2학년으로 올라가는 시점에 코치님께서 중앙 수비수를 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을 하셨다. 나는 한 번도 수비수를 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기에 몹시 당황했다. 하지만 그때 그 시절에는 까라면 까야하는 때였다. 나는 마음에도 없는 "네"라는 대답과 함께 중앙 수비수(이하 수비수)로 뛰게 된다. 등번호도 흔히 수비수들이 쓰는 5번을 배정받았다.
그때는 수비수를 보는 게 너무 싫었다. 일단 공격수라는 정체성이 너무 강했기에 반발심이 먼저 생겼다. 다행히(?)도 학원 축구였던 모교가 FC서울 유스팀으로 전환되어서 포지션 변경이 없던 일로 되었다. 무엇보다도 등번호를 5번이 아닌 19번으로 바꿀 수 있었던 것이 큰 위안이었다. (그 정도로 수비수는 싫었다.)
하지만 고학년으로 올라가면서 공격수, 미드필더, 수비수 포지션을 전부 뛰어보게 된다. 공격수가 주 포지션이었지만 팀의 상황에 따라 포지션 변경을 유연하게 한 것이다. 대학교 때도 마찬가지였다. 다양한 포지션을 돌아다니면서 뛰었다. 믿기지 않겠지만 대학교 3~4학년 때는 거의 사이드 공격수나 공격형 미드필더를 봤다. 여러 포지션을 서게 된 계기는 내가 잘해서라기 보다는 빈자리를 메우기 위한 조치라는 것에 더 가깝다. 전문적인 포지션은 흐릿해졌지만 모든 포지션을 보면서 축구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는데 도움이 되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프로팀에 갈 시기가 왔다. FC서울 유스 출신이었던 나는 우선지명을 받은 상태였다. 나는 2013년도 입단을 했는데 FC서울은 전년도 2012년에 우승을 했던 팀이었다. 당시 공격수들은 데얀, 몰리나, 에스쿠데루였는데 K-리그 최고의 공격수들이었다. 나는 공격수로 프로에서 뛰다가는 경쟁력이 약해질 거라는 판단을 하게 된다. 동계훈련을 가기 전에 당시 수석코치님과 개인면담을 했다.(신인선수들 모두가 다 했다.) 고등학교 때는 도저히 수비수를 하기 싫어했던 내가 먼저 수비수로 전환하고 싶다고 말씀을 드렸다. 그때부터 나의 주 포지션은 수비수가 되었다.
호기롭게 도전했던 변화는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를 얻지는 못했다. 2013년 0경기 출장. '최강 서울 아닌가'라는 생각으로 마음의 위로를 하고 대전시티즌으로 팀을 옮겼다. 2014년 1경기 출장을 기록하게 된다. 그 경기에서 수비수로서 경쟁력을 확인했고 다음 해에 자신감을 갖고 준비를 했다. 2015년 1부 리그 24경기 출장. 기적이 일어났다. 국가대표 공격수 김신욱 선수, 이정협 선수, 박주영 선수들을 상대로 뛰게 된 것이다. 이듬해 충주험멜로 팀을 옮겼고 2016년 총 32경기 출장을 기록했다. 그런데 충주에서 변화의 조짐이 또다시 시작되었다. 당시 팀에는 타깃형 공격수가 없었다. 팀이 지고 있는 상황에 수비수였던 내가 공격수로 올라가면서 플레이를 했는데 그때 공격수의 본능이 살짝 드러난다. 그 후 공격수와 수비수를 병행하면서 경기를 뛰었고 마지막 경기에서는 공격수로 선발 출장을 했고, 친정 팀(대전시티즌)을 상대로 득점까지 성공시켰다.
아산 무궁화에 입대 후에는 다시 본업이었던 수비수에 무게를 실었다. 그런데 수비수를 보게 된다면 도저히 경기를 뛸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보다 실력이 좋은 수비수가 5명이 넘었다. 수비수는 웬만하면 주전을 바꾸지 않는다. 결국 4명이 다쳐야 내가 뛸 수 있는 차례가 온다. 그마저도 미드필더 중에 수비수를 볼 수 있는 선수를 제외한 것이다. 2019년 1월에 제대를 앞뒀기 때문에 2018년 시즌에는 경기 출장이 어느 해보다 중요했다. 나는 자유계약 선수였기 때문에 돌아갈 팀이 없었다. 경기장에 들어가서 나의 가치를 보여줘 했다.
살아남기 위해서 이번에는 내가 직접 코치님께 면담 신청을 했다. 당시 타깃형 스트라이커였던 선수가 제대를 앞둔 시점임을 상기시켜드리고, 충주험멜 때 공격수로서 역량을 발휘했다고 어필을 했다. 그 덕분에 2018년 3경기 출장 모두 공격수로 뛰었다. 리그 마지막에 공격수로 뛴 나를 보고 내셔널리그(현 K-리그 3) 팀에서 오퍼가 왔다. 수비수가 아닌 공격수로 말이다. 결국 그 팀에는 가지 못했다.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해 준 목포시청 축구단을 선택하게 되었다.
목포에서는 다시 수비수로 활약을 했다. 2019년 21경기 출장을 기록하면서 수비수로 다시 돌아왔다. 단 한 경기를 제외하고 말이다. 1위 팀 강릉시청과 경기였는데 공격수들의 줄부상으로 공격수 출장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경기에서 좋은 퍼포먼스가 나왔다. 적어도 내셔널리그에서는 공격수로 뛸 수 있겠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시즌을 마치고 들어온 팀이 바로 천안CityFC다. 올해의 주포지션은 어디일까? 공격수? 수비수? 지금까지는 공격수에 더 무게가 실렸다. 처음 팀에 합류했을 때는 수비수 포지션으로 훈련을 했었다. 본격적으로 남해로 전지훈련을 오고나서부터는 공격수로 훈련을 하고 있다.
8년 동안 프로축구선수 생활을 하면서 주포지션을 바꾼 게 올해로 4번째다. 공격수로 뛰다가 수비수로 내려가거나, 수비수를 보다가 공격수로 올라가는 상황을 제외하고 시즌을 전체로 봤을 때다. 잦은 포지션 변경은 살아남기 위한 나만의 전략이었다. 첫 번째 이유는 비싼 용병들과의 경쟁에서 승산이 없다는 판단에서 변화를 줬고, 두 번째는 제대 전에 나의 가치를 보여주기 위한 처절한 선택이었다. 세 번째는 더 높은 연봉을 준 팀이 원하는 포지션이었고, 네 번째는 지난 2년 동안 보여줬던 공격수로서 가치를 증명하기 위한 변화다. (물론 최종 선택은 감독님이 하신다.)
만약에 변화를 주지 않고 공격수로만 했다면 어땠을까? 나는 내 상황과 팀 상황에 맞게 적절한 선택을 했다고 생각한다. 현재 공격수로서 선택하는 이유도 분명하다. 지난해 내셔널리그에서 수비수를 보면서 전형적인 타켓형 스트라이커가 없다고 생각했다. 키카 크더라도 헤더 경합에서 우위를 점한 공격수는 없었다. 그리고 적극적인 수비 가담도 적었다. 나는 이를 종합해서 '수비형 스트라이커'가 되어보자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천안CityFC에도 수비형 스트라이커는 없었다.
<위대한 나의 발견 강점 혁명>에서는 단점을 보완하는 것보다 강점을 강화시키는 게 현명한 판단이라고 조언한다. 세상 모든 사람들은 강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다. 그 특성들은 저마다 다르다. 메시와 호날두처럼 인간계를 벗어난 신계에 있는 축구선수들도 있다. 그들은 논외로 하자. 그런데 많은 선수들이 강점보다 단점을 보완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완벽한 선수가 되기 위한 노력이라고 할 수 있지만 자칫하다가는 강점이 사라질 수도 있다.
“인생에서 진짜 비극은 천재적인 재능을 타고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이미 가지고 있는 강점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 벤저민 프랭클린
위대한 지성인 벤저민 프랭클린의 조언에 따라 올해는 나의 강점을 더 강화시키는데 전념할 생각이다. 나의 강점은 헤더, 몸싸움, 수비력, 적극성, 스크린플레이이다. 내가 돋보이는 것보다 주변 동료들에게 공간을 만들어주고 수비 부담을 덜어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스피드가 빠른 편은 아니기 때문에 상대 수비 뒷공간을 노리는 위협은 떨어지게 된다. 하지만 단점은 잊어버리고 내가 잘할 수 있는 헤더, 스크린, 활동량을 극대화시켜서 상대 수비에게 위협을 주자. 특히 상대 중앙 수비수들에게 나의 체격 조건과 수비력(?)은 큰 부담이 된다. 물론 공격수로서 득점력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 다만 전략 차이일 뿐이다. 강점들을 강화하다 보면 자신감도 높아질 것이고, 과거 공격수 본능도 살아날 것이라는 기대를 한다. (슈팅 훈련도 정기적으로 할 계획에 있다.)
올해는 공격수와 수비수 두 개의 포지션을 팀의 전술에 따라 유기적인 변화가 생길 것이라 예상한다.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포지션 변경이었다. 처음에는 정체성 혼란과 주 포지션이 없다는 스트레스로 작용했다. 그러나 그 작용이 지금은 공수를 아우르는 멀티 자원으로서 더 높은 가치로 발현되었다. 이를 전문용어로 안티프래질(외부의 충격으로 더 강해지는 상태)하다고 한다. 올해 포지션 변화는 더 특별하다. 한 가정의 가장이 되었고 나이가 32살로서 베테랑 반열에 올라섰다. 이제는 선수로서 유의미한 성과를 보여줘야만이 살아남을 수 있을 때가 된 것이다. 수도승의 삶을 살아가면서 퍼포먼스 극대화에 초점을 맞추는 것을 더불어 공격수로서 강점을 최대치로 높여보겠다.
시즌을 마치고 변화의 시도가 옳은 선택이었다는 것을 증명해보자. 그래서 또 치열한 이 바닥에서 살아남아서 강한 자가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