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는 기회이고, 누군가에게는 위기일 때
남해에 전지훈련을 온 지가 2주를 꽉 채워서 정확히 14일 째다. 이쯤 되면 선수들이 조금씩 심적으로 지치기 마련이다. 처음에 전지훈련 장에 왔을 때는 숙소, 식당, 음식, 스케줄, 잔디 상태, 팀의 축구 철학 등 적응을 할게 많다 보니 긴장감을 늦출 수가 없다. 이 바닥(축구계)은 긴장감을 풀다가는 잡아먹히는 곳이다. 그러나 자신도 모르게 하루 일과가 쳇바퀴 굴러가듯 반복적인 일상이 되면서, 익숙함에 긴장감이 자연스럽게 풀린다. 우리 팀에게는 그때가 바로 지금이다. 그 말은 즉슨 잡아먹힐지 모른다는 말과도 같다.
우리 팀은 4주, 총 28일의 일정을 잡고 남해에 왔다. 상대적으로 날씨도 따뜻하고 천연잔디를 매일 쓸 수 있다는 메리트가 남해 상주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다. 좋은 게 있다면 나쁜 게 있는 법이다. 훈련하기는 좋지만 훈련 외의 시간을 보낼 만한 곳이 적다. 은모래비치 해변가 또는 '화소반'이라는 카페가 그나마 여유를 느끼게 해 준다. 하지만 2주 내내 두 곳만 다니다 보면 그 또한 익숨함에 질리게 된다.
이때부터가 선수간의 경쟁에서 우위를 선점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이자, 밀릴 수 있는 위기이다. 반복적인 일상이 만드는 부작용은 타성을 젖게 한다는데 있다. 의식하지 않고 밥시간 되면 밥을 먹고, 운동 시간 되면 운동 준비하고, 잘 시간 되면 잔다. 특히나 우리 팀처럼 외진 곳에 있게 되면 더 심화된다. 몸도 고된 상태이다 보니 우리의 뇌는 활동보다 쉬고 싶어 한다. 안 그래도 돌아가지 않는 두뇌 회전이 멈춰버린다. 타성에 젖게 된다는 의미는 현재 자신이 하고 있는 것을 왜 하는지 잊어버린다는 말과도 같다.
타성에 젖은 선수들에게 가끔 드는 생각은 빨리 전지훈련을 마치고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클 것이다. 여자 친구와 데이트도 하고, 부모님과 맛있는 식사도 하고, 재밌는 영화도 보고, 친구들과 술도 한잔 할 생각으로 그나마 버티고 있을 공산이 크다. 그런데 아직 남은 일정이 2주가 더 남았다는 사실을 확인하면 멘붕이 온다.
"아, 아직 2주나 남았네..."
위와 같이 타성에 젖은 선수들은 지금 이때가 가장 위기의 순간이다. 자신도 모르게 훈련장에서 집중력은 떨어지게 되고, 예민해지게 된다. 자신이 왜 훈련하고 있는지 목적이 흐릿해졌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은 그것을 눈치채지 못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이와 중에도 집중력을 갖고 훈련에 임하는 선수들이 있다. 그 선수들은 애초에 목적이 뚜렷하다. 타성에 젖는 상황을 만들지 않는다. 왜 남해군 상주면에 와서 4주간의 기간 동안 전지훈련을 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 동계훈련을 통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단련이 되면, 리그 중에 위기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면역력을 키우는 과정으로 인식한다. 더불어 매 훈련 시간마다 더 나아진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 준비 과정에 공을 들인다. 훈련할 때는 팀이 요구하는 플레이가 무엇인지 파악하는데 신경을 곤두세운다. 팀이 원하는 플레이 위에 자신의 강점을 쌓으려고 또 고민을 한다. 이런 선수들은 반환점을 도는 이 시기가 기회가 된다. 타성에 젖은 선수들은 떨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팀도 예외는 아니다. 현재 누군가에게는 기회이고 누군가에게는 위기다. 나는 지금 순간을 기회로 만들기 위해서 공을 많이 들이고 있다. 그래서 지루하지가 않다. 과정이 즐겁고 기대가 된다. 가장 위험한 위기는 익숨함에 나태해지고, 생각을 멈출 때다. 나는 타성이 젖어드는 시기일 수록 더 페달을 밟고 있다. 어떻게 하면 더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유지할 수 있을지 말이다. 예전의 나는 이 시기가 위기로 다가왔다. 타성에 젖어서 동계훈련 시즌이니까 열심히 하는 게 당연하고 생각만 했다. 그래서 개막전 선발은 아직 한 번도 없다.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나에게서 얻은 교훈 덕에 현재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정확하게 알고 실현해나가고 있다.
프로 스포츠 선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정신력이다. 정신력은 이 악물고 버티고, 몸을 사리지 않고 부딪히는 것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매 훈련마다 최고의 집중력의 상태로 만들 수 있는 정신 자세를 갖추는 것 또한 정신력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즉, 어떤 자극에서 현재 해야 할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상태다.
'왜 동계훈련을 하는지 잊지 않고 훈련에 임하는 선수들의 공통점'은 축구선수라는 정체성이 뚜렷하다는 것이다. 혹시나 자신의 나태함을 발견했다면 페달을 밟아라. 그렇다면 선수 선발 경쟁에서 우위를 점령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스승님 신영준 박사님은 안티프래질한 사람이 되라고 조언한다. 안티프래질이란 외부 자극에 더욱더 강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시골 마을에서 반복된 일상은 자극이다. 안티프래질한 사람. 즉, 왜 이곳에서 훈련을 하는 지 알고 있고, 목적이 있는 사람은 더욱더 강해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안티프래질한 선수가 돼서 2020년 3월 7일 토요일 오후 2시에 천안축구센터에서 열리는 '천안시 축구단' vs '춘천시민축구단'의 개막전 경기에서 꼭 선발로 뛰겠다는 목표를 이루겠다.
끝까지 읽는 독자라면 눈치채셨겠지만 경기 홍보하는 게 맞습니다. 저희 '천안시 축구단'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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