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위대한필맨 Feb 16. 2020

축구를 더 잘하는 방법

기록의 힘은 상상 이상이다.

초등학교 때 가장 귀찮고 싫었던 과제가 있다. 바로 '일기'다. 방학 숙제 중에도 일기가 있었는데, 방학 마지막 날에 몰아서 썼던 기억이 난다. 안 쓰면 매 맞는 시절이라 맞고 싶지가 않았다. 나의 아버지는 가끔 일기 검사를 했었다. 만약 일기를 쓰지 않았다면 매를 맞았다. 처음부터 일기 자체가 귀찮았는데, 매를 맞다 보니 더 쓰기 싫어졌다. 원래 누가 시키면 더 하기 싫은 법이 아닌가.


내가 그토록 싫어했던 일기를 지금은 매일 같이 쓰고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훈련일지'다. 축구를 시작하면서 훈련일지를 매일 같이 썼다. 처음에는 중학교 때도 훈련일지 검사를 했었기 때문에 수동적으로 써야 했다. 하지만 축구를 더 잘할 수 있는 과정이라는 말을 듣고 검사하지 않을 때도 최대한 지속적으로 썼다. 유명한 선수들 중에서 훈련일지를 쓴 선수들이 많다는 것을 알았고, 나도 그들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에 썼던 것 같다. 하지만 훈련일지를 매일 쓴다고 내 축구실력은 변함이 없었다. 그 이유는 훈련일지를 쓰기 위해 훈련일지를 썼기 때문이었다.


https://blog.naver.com/sangpil_14


나는 네이버 블로그에 매일 훈련일지를 쓰고 있다. 그런데 예전에 써왔던 훈련일지와는 확연히 다르다. 예전에는 훈련시간, 훈련 프로그램, 몸 컨디션 상태에 대해서만 적었다. 축구선수들이라면 공감하겠지만 어느 팀이든 훈련 프로그램은 거기서 거기다. 도돌이표처럼 전에 했던 프로그램을 반복하는 경우가 많다. 어느새 훈련일지는 훈련 프로그램을 기록하는 노트로만 작용하게 된다. 그래서 훈련일지를 쓰다가 말다가를 반복했었다. 반복된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적는 게 별로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현재 쓰는 훈련일지는 훈련 프로그램을 따로 기록하지 않는다. 형식은 그날 했던 훈련에서 느꼈던 점을 주제로 글을 쓴다. 어찌 보면 '훈련 에세이'라고 할 수 있다. 왜 기존의 형식이 아니라 에세이 형식의 훈련일지를 쓰는지 밝혀보겠다.


훈련 에세이를 쓰는 이유

1. 장기기억 전환

2. 하나만 남겨도 성공이다.

3. 기록의 힘은 정체성을 강화한다.

4. 멘털 강화 (객관화, 정리)



1. 장기 기억 전환

학습은 크게 인풋과 아웃풋으로 나뉜다. 인풋은 배우는 과정이고, 아웃풋은 배운 것을 해보는 과정이다. 독서가 인풋이라면 글쓰기는 아웃풋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축구에서 인풋과 아웃풋은 어떻게 나뉠까. 나는 훈련이 인풋이고 경기가 아웃풋이라고 나눴다. 물론 훈련과 경기 모두 인풋과 아웃풋의 교집합 안에 있다. 다만 비율을 따졌을 때 더 많은 쪽에 두었다.


훈련은 팀에서 요구하는 전술, 전략을 습득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새로운 팀에 합류하거나 새로운 지도자를 만나게 될 때면 팀에서 요구하는 것을 빨리 캐치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떨 때는 지금까지 배웠던 축구와는 다른 축구를 만나게 될 때도 있다. 그럴 때 도움이 되는 것이 '훈련 에세이'다. 지도자들이 언급했던 부분을 글로 옮김으로써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글을 쓰는 작업은 아웃풋이라고 했었다. 머릿속에 더 오랫동안 남아있게 되면서 다음 훈련 때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빠르게 파악할 수 있게 된다.



2. 하나만 남겨도 성공이다.

위에서 나는 지금껏 훈련일지를 기록에만 중점을 뒀었다고 언급했다. 훈련했던 전부를 기억하려고 하니까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전략을 바꿨다. 하루에 하나만 남기자! 꼭 훈련이 아니더라도 훈련 중 느낀 감정이나 관련된 에피소드를 적기도 한다. 훈련도 중요하지만 멘탈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 계단 한 계단 차근차근 올라가는 게 중요한 것 같다. 훈련일지의 목적은 더 좋은 선수가 되기 위한 것이다. 단순히 기록이 아니라는 것을 상기시켜보면 하나만 남겨도 큰 수확이다.



3. 기록의 힘은 정체성을 강화한다.

나는 직업 축구선수다. 축구를 잘해야 가치를 인정받고 연봉도 높일 수가 있다. 훈련 에세이를 쓰는 목적도 축구를 더 잘하기 위함이다. 훈련 일지를 에세이 형식으로 쓰는 이유 중 하나는 정체성을 강화하는 데 있다. 매일 축구에 관련된 글을 쓰게 되면 내가 축구선수라는 것을 매일 같이 의식하게 된다. 정체성이 강화된다는 것은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강력한 힘을 얻은 것과 같다.

실제 100만 달러 수표와 짐 캐리와 그의 아버지. 출처 : TvN 강용석의 고소한 19

영화배우 짐 캐리가 수표용지에 100만 달러를 적어서 지갑에 넣어 둔 일화는 유명하다. 매일 그 수표용지를 보면서 꼭 이루겠다고 되새겼다. 결국 5년 뒤 <베트맨 포에버>의 출연료로 100만 달러를 받게 된다. 짐 캐리는 지갑에 넣어둔 수표용지 100만 달러를 꺼내볼 때마다 무슨 생각을 했을까. 돈을 벌 생각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신은 100만 달러의 출연료를 받는 영화배우라고 되뇌었을 거라 짐작한다.  정체성은 100 달러 출연료를 받는 영화배우가 되기 위한 고민과 실천을 끄집어냈다. 


훈련일지를 매일 같이 쓰면 자신이 되고 싶은 축구선수 정체성이 강해진다. 나는 K-리그 3 최고의 선수라는 정체성을 강화시키고 있다. 나는 정체성에 따라 행동하고 생각하는 중이다.



4. 멘털 강화 (객관화, 정리)

프로 레벨에 진입한 선수에게 가장 중요한 능력은 정신력이다. 정신력이 약한 선수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체능력을 백분 발휘하지 못한다. 프로 레벨의 선수들은 모두가 좋은 신체능력을 갖추고 있다. 학생 때야 실력 차이가 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신체 능력 자체로 덮어버릴 수 있다. 프로는 학생 때 날고 긴 선수들이 모인 곳이다. 정신력. 즉, 멘탈이 강한 선수가 자신의 가치를 꾸준히 증명할 수 있다.


훈련일지에는 나의 감정과 생각도 적는다. 감정과 생각을 적게 되면 나를 객관화할  있고 정리할  있다. 부정적 감정이 넘치려고 할 때 그 감정을 글로 쓰고 읽게 되면 별거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복잡해진 머릿속의 생각도 적어서 보면 실타래가 풀리 듯이 정리가 된다.


위의 과정은 멘탈을 강화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선수들이 멘탈이 약해지는 이유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대다수다. 실수할까 , 경기에 뛰지 못할까 , 지도자가 나쁘게 생각할까   부정적인 생각들이 스스로 위축되게 만든다. 감정과 생각을 적고 읽는 과정은 부적적 생각이 스스로 만든 허구 거나, 노력하지 않는 자신의 모습에 대한 합리화 작업이었음을 깨닫게  준다.




유의미한 훈련과 경기가 되기 위해서는 매일 기록하면서 장기 기억으로 전화시켜야 한다. 그리고 모든 것을 다 기억하려고 하지 말고 단 하나라도 남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기록은 정체성을 강화시켜서 현재 무엇을 해야 할지 뚜렷하게 해 주며, 더불어 멘탈도 강화시켜준다. 멘탈이 강하다는 것은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는 상태인데, 실수를 줄이는 스포츠를 하는 축구선수에게 중요한 부분이다.



무엇보다 훈련일지를 쓰는 목적이 훈련일지를 쓰는  있어서는  된다.  나아진 축구선수가 되기 위한 훈련일지 기록이 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내게 이런 설명을 제대로 해준 사람이 없었다. 이 글이 축구선수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


나는 지금부터 훈련일지를 훈련 에세이로 바꿔서 사용해야겠다. 일지보다는 에세이(일기)의 의미가 더 강한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훈련일지든 훈련 에세이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적는 것이다. 평소에 읽기와 쓰기와는 거리가 먼 축구선수들에게는 힘든 과정일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은 더 나아진 축구선수가 되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기억하길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뜻이 있어 마침내 이루다(유지경성)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