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상락재 Oct 24. 2021

이토록 귀한 인생

올해 유월, 우리는 종양이 거의 사라졌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주치의 선생님은 좋은 일이라면서도, 영상을 보며 연신 갸웃거렸습니다. 지난 3년간 수술을 마다해온 우리를 알기 때문이겠지요. 진료실 문을 나선 월리는 굵은 눈물을 떨구며 한참을 울었습니다. 그리고  마음을    같았던 저는 가만히 그의 등을 쓸어주었습니다. 월리가 자신의 몸과 마음을 돌보기 시작한지 어느새 1 6개월이 흘러 있었지요.  사이  번의 정기 검사가 있었고,  때마다 종양이 조금씩 자랐다는 결과를 들었던 터였습니다. 기대와 다른 결과에 낙담했지만, 더디게나마 우리가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확신으로 마음을 다잡았지요 


그래도 이번만큼은 긍정적인 결과가 있기를 내심 기대했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몸과 마음의 균형을 찾아나가는 월리의 노력이 이제는 몸의 변화로 드러나 주기를 말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기다리던 그 말을 들었을 때, 우리는 '참 잘했어요' 도장을 받은 기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에게 말해주었지요. 지도에 없는 길을 찾느라 정말 고생 많았다고, 앞으로도 잘해보자고.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던가요. 칭찬 도장을 받은 우리는 내친 김에 오래 망설여 온 패러글라이딩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모든 것이 죽고 사는 것에 맞춰져 있던 예전의 우리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요. 천 길 낭떠러지 앞에 서있는 것 같아서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이제 더는 두려워하는 삶을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낭떠러지에서 날아올라 자유롭게 살고 싶었지요.


이른 아침 연무가 덮인 활공장에서 하늘을 날던 그 순간을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요. 주렁주렁하던 족쇄가 다 사라지고, 깃털보다 가벼운 나만 남은 것 같았습니다. 태어나서 처음 경험하는 자유로움이 너무 벅차서 울음을 멈출 수 없었지요. 그리고 나 자신이 존재만으로도 충만하고 온전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동안 내가 붙잡으려 애쓰던 것들이 아주 사소하고 덧없이 느껴지는 순간이었지요.


그 날 이후, '내가 이토록 가볍고 자유로운 존재인 것을 왜 까맣게 모르고 살았나' 하는 물음을 며칠간 품고 지냈습니다. 그리고 알게 되었지요. 내 스스로 만든 족쇄들이 너무 무거워서라는 것을요. 아무도 나에게 강요하지 않은 무거운 굴레를 내 스스로 지고 살아왔다는 것을 말입니다. 내 등에 짐이 있는 줄을 알았으니, 이제는 내려놓아야겠지요. 그리고 아무 것에도 속박받지 않고 내 목소리 하나 따라 자유로이 살리라 다짐합니다. 살다보면 또다시 내가 누구인지 잊는 날도 있겠지만, 제 옆에는 좋은 도반이 있으니 서로 일깨우며 걸어갈 수 있겠지요.


'나 이외의 어느 누구도 되고 싶지 않고, 지금 여기 이외의 어디에도 존재하기를 원치 않는 것' 그것이 행복이라 했던가요. 월리와 만나 함께하는 지금 이 생이 제게는 지복(至福)입니다. 이토록 귀한 인생이 또 있을까요.

이전 13화 내가 뭐 어때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