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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김 1인분, 잘라서 떡볶이 소스에

거리 위에서 마음의 허기짐을 채워주는 한 접시

by sangre

길을 걷다가 모락모락 김이 나는 떡볶이 노점을 지나치거나, 매대 위에 각종 튀김들이 놓여있는 분식집을 발견하면 '튀김 한 접시 무쳐달라고 할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길거리에 늘어선 노점들을 보며, '떡튀순' 같은 유명 메뉴를 떠올리는 사람들도 있고, 뜨끈한 '오뎅 국물'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고, 연기 자욱하게 구워주시는 달짝지근한 닭꼬치를 먼저 떠올리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메뉴는 '떡볶이 소스에 무쳐진 튀김 한 접시'이다.

떡볶이를 좋아하지만 떡은 그렇게 좋아하지 않고, 튀김을 좋아하지만 그냥 간장에 먹기에는 조금 느끼하고, 또 매대에 올려진 한 번 튀겨진 튀김들이 그냥 먹기에 그다지 훌륭한 품질은 아니기에, 떡볶이 소스에 버무려진 튀김 한 접시는 내게 있어 참으로 절묘한 음식이다. 누군가는 '튀기면 신발도 맛있다'라고 했고, 떡볶이 소스는 순대나 어묵, 심지어 치킨을 찍어먹어도 맛있는 궁극의 소스인 만큼, 둘을 섞어 먹는 음식이 맛이 없을 수가 없다. 뿐만 아니라 버무려진 정도에 따라 바삭한 튀김의 식감을 살려서 먹을 수도 있고, 눅눅하게 떡볶이 소스를 흠뻑 적셔서 먹을 수도 있으니, 즐기는 방법도 다양하게 컨트롤이 가능하다. 또한 김말이, 야채, 고구마, 오징어, 새우, 만두 등 여러 종류의 튀김을 순서대로 골라먹는 재미까지 갖추고 있으니, 그야말로 짧은 시간에 풍부한 만족감을 안겨주는 궁극의 노점 메뉴라 할 수 있다.


이 메뉴를 처음 접하고 좋아하게 된 건, 학교 앞에서 자취하던 대학시절이었다. 대전에서 고등학교까지 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떡볶이 따로, 오뎅 따로, 튀김 따로 이런 식으로나 먹어봤지, "튀김 일 인분만 잘라서 떡볶이 소스에 무쳐주세요"라는 주문은 경험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학교 앞 노점에서 누군가가 저런 식으로 주문하는 걸 처음 보고 '오, 서울에서는 저렇게 먹는구나~'싶었던 아주 오래된 기억이 있다. 그 뒤로는 마치 비밀 메뉴를 주문하듯이,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저 주문을 반복해 가며, 여러 노점을 돌아다니며 떡볶이 소스에 버무려진 튀김을 사 먹곤 했다. 맛고 있고, 가격도 저렴했고, 잠깐 서서 금방 먹을 수 있고, 학교 앞 하숙집들이 몰려 있는 동네에는 저런 노점들도 꽤나 많았으니, 때로는 심심해서, 때로는 식사 대용으로 자주 먹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사는 곳이 달라지고 생활 패턴이 달라지면서, 예전만큼 이 음식을 자주 먹지 않게 되었는데, 일단 내 동선에 떡볶이를 파는 노점을 찾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아 졌다. 실제로 그런 노점들이 많이 사라진 건지, 아니면 내 동선이 달라져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예전만큼 가게들이 자주 눈에 띄지 않는 게 사실이다. 또한 여유롭게 길을 걷다가 노점에 들러 어묵 하나 집어먹고 갈 수 있는 심적인 여유와 시간적인 여유가 별로 없다고도 할 수 있다. 쉽게 말하면 '그러고 있을 시간' 자체가 별로 없는 편이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그 자체가 대단히 훌륭하고 몸에 좋은 음식이 아닌 만큼, 나이가 들어 갈수록, 건강을 생각할수록, '떡볶이 소스에 버무려진 튀김 한 접시'는 더 손이 잘 안 가는 음식이 되어버렸다.


따라서 내게 있어 우연히 마주치는 노점 앞에서 저 메뉴를 떠올리는 건 추억을 환기시켜주는 일종의 향수에 가깝고, 그 메뉴를 즐기던 시절, 또는 그 음식을 맛있게 먹었던 행복했던 기억에 대한 그리움에 가깝다. 그 음식이 실제로 먹고 싶다기보다는 그 음식을 먹으며 즐거워했던 기억을 반추해 보는 경험이 더 많아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마음이 허허롭거나, 혼자만의 작은 보상 같은 걸 기대할 때면, 홀로 노점에 들러 보란듯이 이 음식을 주문하곤 하는데, 그럴 때면 여전히 언제 먹어도 참 맛있는 음식이라는 생각을 한다.


어쩌다 가끔, 늦게까지 회식을 하거나 술을 마신 날이면 운전해서 퇴근할 수가 없기에 공덕역까지 가서 광역버스를 타곤 한다. 공덕역 1번 출구를 나서면 거기에 늦게까지 하시는 작은 떡볶이 노점이 하나 있다. 늦은 시간, 버스는 한참을 기다려야 하고, 늦은 귀갓길에 몸도 마음도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 때면, 그 집에 들러 튀김 한 접시를 떡볶이 소스에 무쳐달라는 주문을 한다. 이미 늦게까지 많이 먹어 배가 많이 부른 상태지만, 그때 먹는 튀김 한 접시는 주린 배가 아닌, 공허한 마음을 채워주는 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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