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 노래로 가득했던 대학교 신입생의 여름방학
때는 1998년 여름, 은퇴했던 서태지가 갑작스레 솔로앨범을 발표했다. 그즈음 나는 매년 여름이면 고등학교나 대학교 친구들과 함께 시골 할아버지 댁에 놀러 갔었는데, 그 해에는 이제 막 대학생이 된 고등학교 친구들과 함께 할아버지 댁이 있는 섬마을을 찾았었다. 마침 서울 생활을 마치고 시골로 돌아가시려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위해서 아버지께서 직접 집을 지으셨고, 그런 김에 민박용 독채도 같이 마련해서, 여럿이 같이 놀러 가기에 좋았던 시절이었다. 아버지께서도 내가 친구들과 시골에 놀러 간다 말씀드리면 직접 가이드와 픽업 기사를 맡아 주시고, 맛있는 것들을 아낌없이 내어주셨으니 나는 그 덕에 친구들을 초대해서 맘껏 생색을 낼 수 있었다.
그해 여름에도 “친구들은 몸만 오라고 해~맛있는 거 먹게 해 줄게”라는 아버지의 말만 믿고, 이제 막 대학생이 된 친구들과 섬마을을 찾았다. 도로가 익어버릴 것 같은 뜨거운 날들이었고, 몇 번의 버스와 배를 갈아타야 하는 긴 여정에 도착하기도 전에 다들 녹초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무사히 섬에 내릴 수 있었고, 선착장에는 그런 우리들을 마중 나오신 아버지께서 기다리고 계셨다. 나는 아빠 차에 오르며 이제 막 발매된 서태지 테잎을 카오디오에 밀어 넣었고, 그렇게 여행 내내 주구장창 그 앨범만 듣게 되었다. 노래도 몇 곡 안 되는 앨범이라, 테잎은 금방금방 돌아갔다. 노래를 들으며 아버지의 안내에 따라 섬을 간단히 둘러본 뒤에 우리는 해수욕장을 찾았고, 해가 떨어질 때까지 축구를 하며 놀았다. 온몸이 벌겋게 다 탈 때까지 바닷가에서 놀던 우리는 (누군가 가져온 선크림을 다들 열심히 발랐지만, 그때는 아침에 한 번 바르면 저녁까지 천하무적일 줄만 알았다) 해가 저물 무렵에야 다시 서태지 노래를 들으며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맛있는 거’는 바로 갓 잡은 삼치였다. 여름이면 서해 바다에서는 삼치를 잡기 시작했다. 지금은 그래도 수산시장이나 ‘남도맛집’ 종류의 식당에서 이른바 ‘대삼치’를 종종 볼 수 있지만, 당시만 해도 사람들이 자주 접할 수 있는 삼치는 생선구이집에서 나오는 고등어보다 조금 큰 사이즈의 ‘고시’라고 불리던 것들이었다. 당시 아버지께 듣기론 바닷가가 아닌 곳에서 커다란 삼치를 접하기 어려웠던 이유가 ‘배에서 바로 일본으로 팔려가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커다란 대삼치의 맛을 보려면, 조업을 나가는 삼치잡이 배에 미리 이야기해서, 커다란 삼치 몇 마리는 팔지 말고 가져와 달라고 미리 이야기를 해놓아야 하는데, 그날 조업 결과에 따라 그마저도 실패할 수 있었다. 그날은 운이 좋아 그렇게 어렵게 구한 ‘갓 잡은 대삼치’ 몇 마리가 집으로 와있었고, 다들 처음 보는 그 크기부터 놀라워했다. 1미터가 넘는 삼치들은 아버지께서 직접 회를 떠주셨는데, 잡자마자 죽어버리는 삼치의 특성상 현지가 아니면 결코 맛볼 수 없는 음식이었다.
갓 잡은 삼치회는 그 기름진 맛과 함께 입에서 녹듯이 사라져 버리는 아이스크림 같은 부드러운 식감이 일품이었다. 따라서 일반적인 생선회의 쫄깃쫄깃함을 기대하던 사람들은 깜짝 놀라곤 하는데, 그 식감 때문에 호불호가 나눠지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어린 시절 할아버지 댁에서 처음으로 맛본 삼치회가 너무 맛있었던 기억에 항상 오매불망 그리워하던 음식이었는데, 그해 여름에는 아빠가 직접 떠주시는 회를 친구들과 실컷 나눠먹을 수 있어 무척 행복했었다. 친구들도 처음 먹어보는 삼치회를 다들 좋아했는데, 한 친구는 처음 참치횟집에 갔을 때보다 더 맛있다고 회만으로 배를 다 채울 정도였다. 별다른 안주도 없이, 삼치회에 할머니가 만들어주신 초장에, 밭에서 따온 깻잎만 가지고 한참 술을 마셨다. 그러고도 모자라 동네 방파제로 나아가 밤늦게까지 밤바다와 별을 안주삼아 친구들과 술을 마셨다. 소주가 달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던 밤이다. 그렇게 꿈 이야기도 하고, 연애 이야기도 하던 중에 누군가 그런 이야기도 했다. “이젠 차에서 서태지 노래 좀 그만 듣자.. 노이로제 걸리겠어..”
그 뒤에도 몇 번이나 삼치회를 먹을 기회가 있었다. 서울에서 맛본 삼치회는 모두 냉장숙성된 선어회 스타일이었고, 남도 스타일로 묵은지와 김에 싸 먹는 집이 많았다. 그리고 가격이 무척이나 비쌌다. 아버지께서 대삼치 몇 마리를 통째로 썰어주시던 그때의 기억에 비하면 한없이 작은 접시 위에 예쁘게 장식된 삼치회가 몇 점 올라가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맛도 늘 아쉬웠다. 메뉴에서 삼치회를 발견하면 아직 안 먹어본 사람들에게 강추하곤 했지만, 소박하게 올라온 삼치회를 한점 한점 소중하게 먹다 보면 그해 여름 친구들과 나눠먹던 삼치회가 그리워지곤 했다. 이젠 돌아갈 수 없는 어린 시절에 대한 그리움 때문인지, 입맛이 변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진짜 선어회와 갓 잡은 대삼치의 맛 차이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그날의 기억이 떠오르는 삼치회를 다시 맛볼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