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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Jan 25. 2017

책읽는 여자는 위험하다

                                                                 제시 메리언 킹의마법의 문법,1900년경


                 

사실 책을 소유하는 것도 점점 귀찮아

(나는 이것이 굉장한 초탈이라고 여겨진다.) 

이즈음은 거의 책을 사지 않고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데

빌려서 읽고 난 후에도 가끔 지니고픈 책이 있다.

박상륭의 책 소설법과 잡설품은 도무지 얼른 읽을 수도 이해도 되지 않아

시간을 두고 읽어야 해서 주문을 했고 

오에 겐자부로의 만년의 사색이란 부제가 붙은 회복하는 인간이란 책은 

한참 전에 리뷰를 쓰기도 했는데 

그 명석하면서도 부드러운 작가의 시선이 두루뭉술하게만 남아서

다시 읽으려고 주문을 했다.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는 책은 참하다. 단정하다. 

얼핏 아주 공부 잘하면서 새침 떠는 아이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도 표지가 빨간빛이니 정열적인 느낌도 있다.. 

(빨간색과 정열을 같은 선상에 놓는 것은 너무 도식적인가?) 

내용에 대해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책의 안동네는 여러 가지 색깔이 들어있어 

별다른 안목이 없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신선하다. 

거기다가 어여쁜 명화들이 선명하고 조촐하게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그림들이 다아 여자이고 

다아 손에 글을ㅡ 책을, 그림을, 하다못해 차표라도, 

하여간 글과 연관된 종이라도 들고 있는 그림이다.

그러니 글에 대한 약간의 중독적 제증상이 있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매우 일괄적인 미덕을 지니고 있는 책이다. 

독서를 할 때마다 요즈음 자주 드는 생각이 구슬 꿰기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은 

‘꿰다’가 심각하게 중요하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질 않는가, 

어쩌면 이제 우리 시대는 기막힌 스토리나 발명품이 아니라면 

모든 지적인 작업들이 다 이 구슬 꿰기 인지도 모른다. 

어떤 칼라로 어떤 디자인으로 어떤 배열로(배열은 디자인인가?)

이미 만들어져 있는 수많은 구슬들을 

멋지고 특이하게 강렬하고 정교하게 꿰는가?????, 

이 책은 얼핏 보면 독서에 대한 책이다. 

특히 저자의 말ㅡ 

‘책 읽는 여자’와 ‘화가’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ㅡ는 

흥미를 적절하게 유발시키는 문장으로 간단한 저서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전체 책의 내용을 요악하고 저자의 의도를 길게 설명한 글이다.

오히려 책 읽는 여자와 화가의 관계는 사족이고

독서에 대한 수준 있는 에세이로 읽힌다. 

지금 우리를 이렇게 장악하고 지배하고 있는 독서가

비도덕적이며 위험한 것으로 만류되었을 뿐 아니라 

극단적인 행위로 생각한 시절도 있었다. 

오죽하면 칸트의 추종자였던 아담 베르크는

‘양심의 목소리를 억압하는 것, 

삶에 싫증을 내는 것, 

때 이른 죽음’이라고 

독서를 표현 했을까,

다독을 일종의 정신병으로 본 시절도 있다. 

당연히 독서는 소리를 내어서만이 해야 한다는 시절도 있어

아우구스티누스는 조용한 독서를 하고 있는 대주교를 보며

그 이상한 태도에 여러 가지 설명을 붙이기도 했다. 

그런 낭독만이 독서라는 시대를 지나 중세에 이르러서는

조용한 독서는 행복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했고 

유쾌한 고립행위가 되기도 한다. 

얀베르메르가 그린 ‘편지를 읽는 푸른 옷의 여인’이란 그림에서

편지를 읽는 여인은 집에 없는 남편의 현존을 

편지에서 느끼고 있는 그림이다. 

이 책에는 이런 멋진 문장도 나온다. 몽케스키외가 했던,

“한 시간 동안 책을 읽고 난 다음에도 사라지지 않을 만큼 

엄청난 슬픔을 나는 아직 경험해 보지 않았다.“

책에 대한 글에 대한 놀라운 경외심이 숨겨 있는 문장 아닌가, 

책이 혹은 글이 얼마나 사람의 정신을 혹하게 하는가를 

일목요연하게 설명해주는,  

이 책은 여섯 챕터로 나누어져 있는데 

거기에 전부 진짜 제목과 작은 글씨의 소제목이 붙어 있다. 

예컨대

내밀한 순간은 책에 매혹된 여자들,

짧은 도피는 책을 읽는 고독한 여자들이란 부제를 달고 있다.

그것 까지는 그래도 괜찮다. 

슈테판 불만이란 작가가 쓴 <독서하는 여자는 위험하다>를 

조이한 김정근이란 두 사람이 번역을 했는데

매우 특이하게도 책 안에 

조이한 김정근의 책읽기와 여자라는 제목의 글이 세 장이나 들어가 있는 것이다.

하긴 번역을 하고 책이 잘 팔리기 위해서 하는 일이라며

저자와 충분한 양해를 거친 뒤 진행 했겠지만

그리고 어쩌면 

더 이상한 참여들이 앞으로 새롭게 진행될 수도 있겠지만 

내겐 일단 낯설었다. 

무슨 공저도 아니고 말이지.... 

하긴 이 역시 책에 대한 보수적 시각일수도 있겠다.

젊은 번역가 조이한 김정근은 그리고 출판사는 이런 행위를

단순한 번역이 아닌 창조적 접근법을 사용한 진보적 편집으로 

아마도 만족했고 대견해 했을 것이니. 

하지만 결정적인것은그들의 글 내용이 그다지 썩 새롭지도 않았고

원저에 플러스를 하거나 돋보이게 해주지는 않은 듯, 

약간의 정보를 주는 방향으로는 썩 나쁘지는 않았지만,  

책의 말미에도

엘케하이덴라이히의 글- 소논문처럼 보이는 -

여자가 책을 지나치게 많이 읽을 때 생기는 위험에 관해서-가 한편 실려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 마음에 들어 소유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그림 때문이다. 

선별된 그림들은 충분히 흡족하다. 

그리고 그림에 대한 별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설명은 여백을 주어 상상하게 한다. 

눈이 피곤한 날 밝은 햇살 아래 슬슬 넘기며 그림을 보면

아주 기분이 좋아질 것 같은,  

혹여 마음이 슬퍼지는 날이라면

페테르 일스테드의 그림 

‘책을 읽는 처녀가 있는 실내 풍경’ 이란 그림을 보면

슬픔이 묽어질 것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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