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음
기실 걷는 일처럼 변화 없는 일이 또 있을까,
한발 한발 앞으로 내딛는 일...
뒤로도 옆으로도 걸을 수 없는 두 다리로
그저 앞으로만 향하는 변함없는 몸짓,
이제 걸음이 조금 보인다.
앞으로 왼발 한번 다시 오른발 한번
이 단순한 움직임을 위하여
얼마나 수많은 기관들이 서로를 배려하며 격려하며
이끌고 밀어주는지
맥박처럼 호흡처럼 내 안의 모든 기능이
얼마나 단순하고 쉼 없는 반복에 의해
지금 내가 존재하는가를
느끼게 하더라는 것이다.
<걸음>이
생각 없이 살아온 시간에 대한 성찰을
<걸음>이 하게 한다는 것..
쓸데없는 지성의 교만에 경도되어(그러나 지금도 여전히 별처럼 그리워하는 마음 항존 하니)
사소하고 지루해 보이는 몸을 얼마나 경홀히 여겼던가.
몸이 사유의 근간이며
오히려 정신의 핵이라는 것을....
그 안의 하나만 부실하여도
나는 무등산을 오를 수 없었을 것이다.
오, 걷게 하는 보이지 않는 힘들의 위대 함이여
사람의 영혼을
천하보다 소중하게 여기라는 가르침 속에는 이런 위대한 철학이 스며있는 것이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권유도 결국은 미미한 것들에 대한 , 찬사 받아야 마땅할, 찬사의 존재에 대한
베리에이션 아닌가.
아주 소소한 생각의 한줄기라고
폄훼해버릴 수 있는 사안이기도 하지만
잘하는 일엽지추로 생각해본다면
어디를
가는 것
보는 것
생각하는 것보다.
이제 더 기특한 것.
모든 생의 줄기가
미미하고 사소한 것들에 연계되어 있다는 것,
<걸음>처럼
그 보이지도 않는 무수한 것들의 개별성과
그 개별들이 이루어내는 하모니를
걸음에서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걸음은 보이지 않는
그러나 확실하게
내 안에 내재된 천상의 오케스트라
그들이 빚어내는 연주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걸음>은
이제 내게
겨우 일상을 떠나는 일,
겨우 아름다운 그림을 대하는 일.
겨우 조화로운 음악을 듣는 일보다
한수 더 윗자리를 노리고 있는
아직은 언타이틀인 새로운 예술 사조라고나 할까,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나만의,
그래서 이즈음 나는 그의 유혹에 자주 빠지곤 한다.
걷자 나랑 함께....
마치 내가 아무도 손 내밀지 않는 무도회의 초라한 여인이라도 되듯,
마치 그는 잘생긴 남자처럼
마치 그래서 적선이라도 하는 양
손을 내밀곤 하는 것이다.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서
충무로에 일곱 시 도착 출발
무등산 입구에서 열한 시 이십 분부터 걷기 시작
네 시 이십 분에 다시 주차장에 도착했다.
걸었던 거리는 12킬로미터였고
살눈이 조금씩 흩날리는 날이었다.
신기하게 산의 정상에는 바위가....
대개의 바위는 눕거나 앉아 있는 게 정상인데
무등산의 바위는 서있었다.
이름하여 서석대 입석대....
다섯 시간 동안 아주 잠깐..
커피 마시는 시간만 앉아있었고
내내 아이젠을 신고 걸었다.
네 시간이 넘을 때부터 아이젠을 심어선지
발가락이 여기저기 아파왔다.
자연은 특히 산은 소우주인 그는
무심하고 무념하며 무상하다.
나 등에도 무정하고
나 남에도 무정하다.
표현할 수 없이 많은 생명의 정한을 품고 있는
겨울 산의 무정함이라니...
눈과 나무가 그려내는 가느다란 드로잉.
안개와 구름은 그조차 가끔 생략해 버렸다.
무등산은 완벽한 미니멀리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