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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Mar 03. 2017

규서에게

 



여혼이라고도 하지 딸을 시집보내는 일말이다.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니 여혼은 그냥 딸의 혼사가 아니라 딸이 온 세상만한 여자라는 말도 되겠다.

어디 작은 사람 있으랴먄 내겐 네가 정말 그러하구나.  

너는 지금도 자그마한 몸피이니 일곱 살 나이에 얼마나 작았겠니.

네가 입학한 초등학교는 지하철 길을 지나 공장단지를 걸어 다녀야 했다.

이즈음 아이들이 겨우 한 블럭이나 걸어 다닌다면 그 때 너는 세 네 블럭은 되었을 거라.

입학식하고 한두 번 데려다 주었을까,

너는 아침마다 그 먼 길을 새 같은 다리로 걸어 다녔다.

엄마는 당연히 엄마 어릴 때 생각을 하고 있었지.

시오리길 아주 먼데서 걸어 다니던 옛날 아이들 말이야.

그러니 네가 걷는 길 정도는 아주 당연했지.

근데 네가 결혼을 얼마 앞두고 있는 지금 문득 그 생각이 나며 왜 이렇게 가슴이 아린거니,

네가 꼬막만한 몸으로 그 사나운 길을 날마다 걸어 다녔을 모습이 말이다.

언젠가 엄청나게 비가 내리던 날, 다들 마중을 나왔는데 엄마만 나오지 않았다고, 

집엘 돌아오니 골목길과 집 마당에 종아리 까지 물이 차올라서 텀벙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다고, 

기억도 없는 이야기를 네가 할 때 엄마는 속으로 좀 부끄러웠다.

젊었을 때는 대범하고 자랑스러웠던 일이 나이 들어서 바라보니 가슴 아픈 일이 되어 있어, 

엄마는 그 때 ‘방목’이란 단어를 교육의 지표로 여기고 있었거든.

일일이 체크하며 도와주는 것은 ‘사육’이라 생각했지.

자유롭게, 네 스스로 네 일을 알아서 하게 하는 것이 강해지는 비결이며 아름다워지는 일이라고,

이즈음 캥거루족이나 헬리굽터 맘들이 생각하면 모성애 없는 차가운 엄마라고 혀를 찰 수도 있겠지만

그 때 엄마는 아마도 젊어서 더욱 단호했을 거야.


사육하지 않아서 너는 평범하게 자라났고 방목하는 대신 스트레스 없는 너그러운 성품을 지니게 되었다.

적어도 사람의 영혼을 최우선으로 치는 우리 집 분위기도 네게 작용을 했겠지.

그러다보니 너는  너보다 더 가진 사람을 자연스럽게 인정하고 너보다 못한 사람을 부드럽게 수용하는,

그들은 그들의 삶을 살고 나는 나의 생을 살아간다는 단순한 사실을  네 삶속에 이미 적용하게 되었어.

지혜로울 뿐 만 아니라 늘푸른 나무처럼 싱그러운 일이지.

사실 사람들은 거의 평생을 타인과의 <비교>에서 오는

질투나 상처를 품고 살아가는 경우수가 의외로 많더구나.

그러니 “어디서나 무엇 앞에서도 나는 나다!” 라는 신앙의 견고함을 네게서 볼 때

엄마는 한량없이 기쁠 수밖에,

네게 혹 시린 상처가 두엇 있을지는 몰라도 너는 강하고 아름답게 자라주었다.


 얼마 전에 강릉 선교장엘 갔다.  

여러 번 가본 곳이라 이번에는 입구에서부터 선교장을 감싸고 있는 뒷동산으로 올라갔지.

마치 병풍처럼 너른 선교장을 포옥 감싸고 있는 길이야.

사람하나 없는 산길에 봄바람 치고는 조금 세찬 바람이 있더구나.

바람과 소나무가 아주 친근한 대화를 하는 것처럼 여겨졌어.

그렇겠지 수백 년의 벗이니...바람에 의해 움직이는 나무들은 언제보아도 경이롭지.

마치 나뭇잎이 하늘을 움직이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해.

선교장은 다스한 봄 햇살을 가득 담고 있었는데

앞에서 보면 그렇게 거대한 건물들이 위에서 바라보니 옹기종기 해보이더구나. 

<시선>이 아주 중요하다는 거지.

어디에서 바라보는가

산을 거의 다 내려올 즈음 세상에, 매화가 피어나 있더구나.

오랜 고목에 여백을 거느린 고매는 아니더라도

아름답고 고귀해 보였어.

꽃이 피어날 때 나무는 아주 새롭게 보이곤 하지. 열매도 그렇고....

하지만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보면 나무가 있기에 꽃두 열매두 있는거야.

나무는 마치 생활 같은 거지.

지루하고 멸렬하고, 그저 인내해야하고....

결혼생활은 마치 나무 같은 것일 수도 있어.

꽃두 피어나고 열매두 맺히지만 그 시간들은 아주 짧지,        

 

이제 너는 새로운 삶 앞에 서있구나.

아주 열심히 살겠지.

지금까지처럼,

그래도 엄마는 가끔 네가 뒷동산엘 올라서 네 삶을 바라봤으면 해.

거대한 문제처럼 여겨지는 것들이 문득 옹기종기 해지는 그런 곳 말이야.

뒷동산에서 만나는 네 꽃은 더 향기롭고 열매는 더욱 그윽할 거야.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하는 내딸 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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