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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Mar 14. 2017

나는 드문드문 귀신과 만난다

폭폭한 삶 속에 놓인 당신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당신의 아이들은 틀림없이 귀신 이야기를 좋아할 것이다. 

어떤 영화가 보고 싶냐고 물어보면 이구동성으로 대답하겠지. 

“무서운 영화요” 

만약 당신의 아이와 친해지고 싶다면 그리고 그들과 대화하고 싶다면 

아주 무시무시한 

그러나, 제법 실감 나는 귀신 이야기 하나 장만해가지고 아이의 방에 들어가면 

이전에 느끼지 못한 놀라운 친밀감이 아지랑이처럼 움터 오는 것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밝고 환한 날 예배를 드리지만 

나 어렸을 때는 아주 깊은 밤 제사를 드렸다. 

어둑한 부엌에서 음식 장만을 하시던 엄마, 

일렁거리는 촛불과 아버지의 붓글씨가 기억난다. 

아마도 어린 나이여서 잠이 들어버렸는지 절을 한다던가, 

차려져 있는 상에 귀신의 모습이 어른거리던가....

라는 으스스한 기억은 없지만 

하여간 자그마한 흰 종이에 붓글씨를 쓰는 아버지 모습은 선명하다. 

제삿날 귀신이 오면서 그 목이 걸리지 않게 하기 위하여 

빨래 줄을 치운다는 이야기를 누구에게 들었던가, 

휘청거리는 허깨비처럼 마당으로 들어서다가 빨래 줄에 목이 턱 걸리는 귀신?ㅡ 

귀신을 모신다 하면서도 귀신의 맹목을 슬쩍 꽈는 

살아 있는 자의 유모어,

혹은 정리정돈이라도 애써 하는 일종의 예의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일본에도 여우에 홀린 사람들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아주 예쁘게 생긴, 

귀족 소녀 속에 들어간 여우, 

한 번 식사에 세 통의 밥을 유부 몇 조각만으로 다 먹어낸다. 

귀신이 간기를 싫어한다는 것은 일본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며칠을 쓰고도 남을 거대한 통속의 물을 하룻밤에 다 마신 소녀는 

갑자기 늙은 남자처럼 컬컬한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묶여있던 어린 소녀는 자신을 덮고 있던 이불을 다 먹어치우고 

그래도 부족해서 자신의 손목까지 먹어치운 다음 결국 사라져 버린다. 

매혹적이면서도 비극적인 귀신 이야기다. 

못 갈 곳이 없는 귀신의 성향(?)대로 귀신은 인터넷을 거점으로 하기도 한다. 

현란하게 움직이는 화면과 칼라플한 색채, 

요란한 백 뮤직을 거느리고 다닌다. 

게임을 하고 있는 아이들을 본 적이 있는가, 

그의 움직이는 손과 반짝이는 눈, 

어디에도 아이는 없다. 

아이는 게임에 惑해 게임 속으로 들어가 버리고 모니터 앞에 있는 것은 아이의 허깨비일 뿐이다. 

‘멜’이라는 인터넷 귀신에 홀린 연인의 이야기를 

오스트리아 작가 다니엘 글라타우어가 잘도 그려내고 있다. 

작가뿐 아니라 대다수의 사람들은 사랑이야기라고 하겠지만 

나는 이 소설이 귀신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새벽 세 시, 바람이 부나요.’ 

제목도 여우에 홀린 귀족 소녀처럼 참 어여쁘다. 

우연히 잘못 전해진 메일 탓에 얼굴도 모르는 남녀가 메일을 교환하게 된다. 

그리고 서로에게 빠져 들어간다. 

망상의 바다이다, 

그러나 실존하지 않아서 더 깊이 빠지게 되는 모순을 안고 있는 무서운 바다이다. 

가벼운 손가락 터치 한 번으로 멀리 있는 상대방에게 

순식간에 당도해 사람의 마음을 잡아먹는 귀신인 멜, 

결국 여인의 남편에게서 멜이 온다. 

제발 아내를 만나주세요, 당신 때문에 우리 가정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지혜로운 남편은 둘이 얼굴을 맞대는 순간, 

그렇다 

그 순간 상대에 대한 사랑이 환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거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밤새 내 도깨비와 생사를 건 싸움을 했지만 

아침에 보니 빗자루였다는 이야기와 흡사하질 않는가. 


어젯밤도 귀신을 보았다. 

아니 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귀신의 손을 보았다. 

쇼팽의 폴로네이즈 53번 영웅을 78살의 루빈스타인과 82세의 호로비츠가 연주하는 오래된 영상물이었다. 

가만히 꼿꼿하게 피아노 앞에 앉아있는 루빈스타인, 

그러다가 움직이는 손, 

손가락들, 

피아노 건반 위에서 손이 움직이기 시작하는데....... 

숨을 헉 들이켰다. 

크고 길고 강인한 힘이 들어있는 손가락들, 

그 손은 적어도 내겐 사람의 손이 아니었다. 

무엇인가에 홀려 있는 손, 

주인을 떠나 그 홀로 존재하는 손, 

아니 주인의 넋과 에너지를 다 빼앗은 뒤 주인을 잊어버린 손, 

그 손은 주인을 휘어잡은 것만으로도 만족하지 못하여 

어느 순간은 주인의 몸까지 맘대로 일으켜 세우는 위력을 발휘했다. 

주인은 손의 노예로서 아주 만족한 듯 

그의 부름에 감읍한 듯 황감하게 반응하곤 했다. 

그 손은 피아노를 잡아먹고야 말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푸르스름하게 내뿜고 있었다. 

호로비츠 손도 예외는 아니었다. 

처음 그의 손은 피아노 건반을 푹 감싸 안은 듯 아주 정겹고 다정해 보였다. 

그러더니 서서히 헨젤과 그레텔을 홀리는 마귀할멈처럼 변형되어 갔다. 

그의 손가락 사인 한 번에 나는 녹아웃 되었다. 

음악이란 나라 속으로 

아무도 거역하지 못한 채 

무서운,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는 아주 무서운 나라로 우리는 좌초되어 갔다. 

연주회 영상을 보는 동안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니라 

그 음악을 이루어내는 손을 바라보았다. 

손이 이루어내는 격렬한 힘의 아우라, 

그것은 사람의 손이 아니었다. 

아름다운 귀신의 손이었다. 

나는 드문드문 귀신과 만난다. 


윗그림은 헨리 퓨즐리의 침묵ㅡ 아래는 에곤쉴레의 죽은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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