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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Mar 15. 2017

산수유

삼월







삼월이 가는 발자국 소리가 선연하다.
이상하게 봄 가운데 있으면서도 
마냥 봄을 그리워하는 정처 없는 心情이다. 
힘센 자석에 이끌리듯 자꾸 땅을 들여다는데 
청결하고(?) 살기 좋은 도시(?)일수록 땅은 이미 없다. 
우리가 밟고 사는 땅은 이미 땅이 아니다. 
콘크리트로 숨통을 완전히 막아버린 생명이 없는 땅, 
죽어버린 땅을 우리는 땅이려니 하며 딛고 살아가는 게다. 
살아있는 땅이라고는 자그마한 화단가나 나무 심어 있는 공원뿐, 
마치 사랑하는 아이와 눈 맞춤하듯 고개를 숙이고 허리를 구부려 바라보곤 한다.

잘 있니, 오늘은 누가 솟았니. 누가 더 자랐니, 
누렇게 말라가던 잔디 속에서 연푸른 잎들이 솟아나고 
먹을 수도 없는 냉이도 솟은 듯, 
이 자리쯤 눈곱만 한 별꽃들이 무성하게 피어났었는데ㅡ 
차암, 그 아이들..... 

그렇게나 작은 것들이 가장 먼저 단단한 땅에 
길을 낸다는 생각을 해보라

참으로  눈물겹지 않은가, 

골리앗을 이겨낸 소년 장사 다윗처럼  
저 여린 것들은 혹한의 겨울을 이겨내는 준비된 전사라니, 
어쩌면 저 여린 것들은 

땅이 토해내는 양심의 소리 거나 
진실의 토로일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이런 인내와 슬픔과 고통 정도는 지녀야 존재 아니니? 
혹시 햇살 아래 눈부신 여린 풀들이 
당신과 나의 삶을 투명하게 비추어내는 

잘 닦여진 맑은 창문일 수도 있겠다.         

동양에서 수선은 `물 위를 걷는 선녀`라고 해서 
`능파 선 자(凌波仙子)라고 했다.. 
그냥 선녀만도 아름다울진대 그 선녀가 물 위를 걷는다는 상상을 해보면
생각 속에서 향기가 뿜어져 나올 듯도, 

초록 줄기 사이에서 한두 송이 피어오르는 

꽃대궁 솟아나는 수선을 보며 
잠시 눈을 감고 선녀와의 조우를 상상해본다.  

작년 이 무렵이었던 가, 

산수유가 가득 핀 마을엘 들렸다. 
동네 어귀에서  잠깐 빗방울이 내렸다. 
바람보다 더 작은 몸짓으로 산수유 꽃잎들이 빗방울에 의해 흔들렸다.  
마치 그 모습은 

정교하고 섬세한 떨잠 위의 떨새처럼 

아니 그보다도 더 훨씬 우미하고 가느다랗게 

흔들리는 듯 그렇지 않은 듯 흔들리며 나를 흔들리게 했다.  

산수유 꽃잎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가지 위에 솟아나 있는 모양이 
우아한 왕관처럼 보인다.  
산수유는 시 춘화라고 부른다. 

봄을 맞이하는 꽃이라는 뜻이다. 
봄을 환영하는 꽃인 영춘화도 있고 

산속 깊은 곳에서는 산수유보다 더 먼저 
노란 생강나무가 피어나기도 하지만

마을 주위를 자그마한 병풍처럼 두르고 
서있는  노란 빛의 산수유는 

삼월의 기적이다. 

가만 산수유 노란 빛에 취해 있으면 눈빛이 노랗게 변하는지 
보이는 모든 것들이 노란빛으로 물 들어 버린다. 
삼월 속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신비로운 일이다. 

어지러운 산 옛 절을 감추었네, (亂山藏古寺). 

그림을 좋아하던 송나라 휘종이 畵題를 내자 
화가들은 무수한 산과 절을 그려댔다. 
그러나 정작 일등으로 뽑힌 그림 속에서 절은 어디에도 없었다. 
산속에 난 아주  작은 길과 물길 어가는 중의 모습이 있었을 뿐,

동양화의 화법 가운데 홍운 탁월 법(烘雲托月法)`은 수묵으로 달을 그리려 할 때 
희디 흰 달을 색칠할 수 없으므로  

달만 남겨 둔 채 그 나머지 부분을 채색하는  방법이라고 한다. 

이것을 드러내기 위해 저것을 감추는 법, 

이런 짧은 대목 속에서 

삶이라는 시간의 목적지는 결국 죽음일진대 
그 죽음에 이르기 위한 살아가는 방법이 하나쯤 떠오르지 않는가? 
절을 그리지 않고도 절을 그려내듯이,
봄 가운데 있으면서 봄을 그리워하는 것,         

그대와 내 삶 속에서도
가능한 홍운 탁월 법(烘雲托月法月法) 

그대 삼월 가득하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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