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위영 Mar 24. 2017

오독한 당신

여자 4의 집에 여자 1,2,3이 놀러 갔다.

여자 4는 세 여자들 앞에 천혜향 몇 개와 땅콩과 호두 떡 그리고 차 종류를 가져다주며 먹으라고 했다. 

여자들은 거실을 놔두고 여자 4가 여자들에게 주려고 표고버섯탕수를 하는 

부엌 식탁으로 가서 앉아서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여자 2가 말했다.

오늘 설교하시는 목사님 자주 웃으시니 좋아 보이데

여자 3이 말했다. 

어머 그래요, 전 왜 저렇게 의미도 없이 자주 웃으실까...

자신을 포장하시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던데요.

여자 1이 말했다,.

그러니... 자신이 보는 게 전부도 답도 아니라니까요. 

여자 4는 열심히 기름에 버섯을 튀기기 시작했다. 

///////// 

어제 있었던 일들 중 아주 짧은 시간... 아마 한 삼분이나 될 시간의 스케치다.

네 여자는 비교적 친하고 서로에게 관심이 있으며 

한 공간에서 같은 주제에 대하여 생각하며 이야기하고 있지만 

여자들은 전혀 다른 방향을 보고 있다. 

다름에 대한, 혹은 같은 자리 다른 방향.. 다른 시선이 부딪히는 순간이다. 

그 짧은 장면을 푸르스트 적으로 그리려면 한이 없고... 그림이라면... 그리고 사진이라면...... 어떨까,  


이즈음 자주 이런 증상이 나타나는데 

마치 두부 판에서 두부 한모 꺼내 비닐봉지에 담는 듯한 간결한 느낌으로 

어느 순간이 마치 영원이라도 되듯이.... 

혹은 그 장면이 삶의 해답이라도 줄 듯이.... 

아주 선명하게 생의 秘意를 품은 듯 보인다는 것, 

보이는 것을 툭 잘라내 손에 들거나 

혹은 그 장면을 내 시야가 미치는 벽에 걸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이런 증상을 

혹시 내 안의 객관화가 내게서 분리되어가는 가시적 현상으로 보면 어떨까

그러니까 나는 내 삶을 객관에 

신앙.. 자연... 그리고 예술 논리...라는 거울에 비추어 보기를

즐거워하는데 

그리고 그리 하려고 애써 왔는데

혹시 이즈음 명료하게 어느 시점을 잡아내는 것 아닌가. 

하여 매우 기특한 일 아닌가...

 

이런 나만의 경험에 타인의 공감을 바라거나 원하지 않는다. 

모두들 소통... 운운하는데 소통의 최우선은 자신과의.... 것이다. 

이제야 어쩌면 나는 시간의 생의 한 단면을 

어느 순간 잘라서 내 손에 혹은 저기 내 시야가 미치는 벽으로 내걸면서

나를 혹시 아주 조금 바라보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루테르부르의 저녁 호수의 풍경을 보면서 윌리엄 터너는 

자신의 그에 대한 존경심 부러움의 원인에 대하여 천착하듯 물었다.

그리고 그림 속에서 구름과 비에 비친 햇살의 효과를 표현한 방식에 

그가 매료된 것을 알았다. 

그는 그 점을 자신의 그림에서 부각하였다.

터너는 자신을 흥분시켰던 점을 면밀히 분석해냈으며 

선배의 그림에서 하위 주제이던 것을 발전시켰다. 

프랜시스 베이컨도 처음 고호에 의해 깊이 경도되었다고 한다. 

알랭 드 보통은

나보다 한참 나이가 어린데도 

삶이 대개는 지루하고 반복적이라는 것을 

인정과 보상이 부족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 

그보다 더 나이 든 사람을 거침없이 가르친다.  

현실보다 더 초현실적이고 추상적인 것은 없다고 모란디가 말했다.

그의 단순하고 소박한...

어쩌면 사라지려는 듯 아련해서 기막히게 화려하게 여겨지기도 하는... 숭고한 절제미..

앞에서 이 문장을 생각해보면

혹은 그가 그린 실제보다 더한 그림이 결국은 조화를 그린 것이라면, 

그림처럼 지금도 그 조화가 남아있다면....

그의 정물은 현실이지만

정말 초 현실이고 추상적일 수 있다는 것....

그를 이해하는 겨우 한가닥. 

사람이 매우 영적이라는 말은 사람이 매우 육적이라는 말을 근간으로 한다. 

나는 어제 매우 맛있게 표고버섯 탕수를 먹었다. 

그 시간에 카톡이 왔다. 

내겐 약간... 조금 약간 부족한 사촌동생이 하나 있는데

그 아이였다.  

<언니 봄. 이 왔는데. 뭐가. 큰일. 나어요> 

내 카톡 프로필에 ‘큰일 났다 봄이 왔다’에 대해 묻는 글 ,

그 친구가 그렇게 물으니 

나는 답 할 말이 없었다.

정말 뭐가 큰일 난 거지. 

봄이 왔는데.... 

아 그 아이도 이제 오십이 넘었네.  


****

당신은 오독했다

근거는 미약하다

당신이 간간히 긋고 간 밑줄들

연필이거나 볼펜이거나 혹은 노란 형광펜 자국으로 인해, 

책 속의 흔적은 오독을 부인한다

-나는 분명히 읽었어!

그러나 당신이 읽고 싶은 것을

당신의 취향과 방식대로 읽었을 뿐,

당신은 처음부터 읽지 않았고

끝까지 읽지 않았고 혹은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아직 당신 손바닥 위에 놓여 있다

냉정한 당신의 눈을 통해, 나는

시시껄렁하고도 복잡·난해한 나를 읽는다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는다 

예각이 기척을 하기 시작한다

읽다 만 111쪽 페이지를 접고 나는

책장 구석에 책을 잘 꽂아두기로 한다

당신은 읽히지 않는다

더 이상 오독의 위험은 없을 것이다

예각은 무뎌지지 않은 채

단지 우리는 잠시 서로 함구할 뿐,//책을 덮다//김이안



작가의 이전글 처용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