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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Mar 30. 2017

고구마

재작년 보성 고구마는 아주 맛있었는데 

작년에 부쳐온 고구마는 별루다. 

그래서 감자 깍는 칼로 껍질을 벗겨 깍뚝 썬 다음

넓은 접시에 깔고 렌지에 오분 정도 돌린다. 

푹 무르지 않는 약간 설익는 미묘한 상태. 

팬에 올리브 오일을 두른 다음 청량고추 몇 알갱이 넣고

저민 마늘 넉넉하게 넣는다. 

그리고 그 다음 간장을 조금 넣고 쌀로 만들었다는 조청...을 넣고 

그것들이 알맞게 섞이며 끌어 오르면 

보글거리며 거품이 날때 살짝 설익은 고구마 깍두기를 투하...

저으며 조려준다. 

푹익은 고구마를 조리면 쉬 부서진다. 쪄도 무르기 쉽고, 

머 반찬으로 먹으니 고춧가루는 넣어도 좋고....안 넣어도 상관 없다.

그냥 순한 반찬인데...

내가 개발한? 고구마조림, 

이즈음 가장 선호하는 음식요리법은 

“간단할수록 매력적인”이다. 

복잡한 요리법은 아무리 맛있어도 싫다. 

사실 복잡하다 하여 꼭 맛있지는 않다. 

맛은 특히 사먹는 음식의 맛은 거의가 짠맛과 심한 단맛, 

나물이 좋은 이유는 짠맛과 단맛을 벗어난 맛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고구마 벗기다가... 껍질이 보였다. 

감자칼로 삭삭 벗기는데 

세상에 그 어두운 보랏빛 고구마 껍질이 

아주 얄팍하게 벗겨질 때, 이햐, 

여자들 속살이 이렇게 깨끗하고 예쁘다면....옷을 벗기고도 싶겠다...

단단해도 이렇게 예쁜데 거기다 삶지 않아도 부드럽다면... ^^

고구마를 깍으면서 섹시한??

하여 난데없이 남성성에 대한 이해력이 증폭되더라는 것이다. 

이해되지 않던 일반론적인 습속이 단순하게 이해 되더라는 것, 


무수하게 껍질을 벗겼다. 

감자도 고구마도 배도 사과도...

그런데 어제 

고구마를 깍으며 

그 얇은 껍질이 보호하고 있는 속살...

을 보며 그 얇은 껍질이 참으로 위대해보이더라는 것이다.  

예컨대 비유나 은유가....우회하는 쉬운 길이라면 

사소한 일에서 거대 담론을 어느 순간 이해하게 되는 것은 

매우 개인적인 경험일수도 있는데.

껍질이 그 얇은 피가....

엄마!!!!로 여겨지더라는 것,  


가끔 지금도 엄마는 위영! 하고 나를 부르신다. 

몇 년 전만 해도 마이 부라더는 엄마하고 이야기 할 때 

영이가...하더니 이젠 그러기엔 너무 늙었는지 이름은 사라지고 

요즈음은 규서엄마,,,라는 호칭으로 슬그머니 바뀌어졌고. 

내 이름이 남아있는 대상은 학창시절 친구들과겨우 친정식구들이다. 

이름이 그 사람을 의미한다면....

가장 나로 존재하는 상태가 친구나 친정식구들이라는 이야기가 되겠다. 

하긴 규서와 담휘에게

위영이 무슨 필요가 있을까..엄마면 되지...

마이 브라더에게도...규서 담휘의 엄마나 아내면 충분할 것이고 

물론 그 모든 것이 나이기도 하고....

늙어가는 이상으로 사람들에게 무수하게 변하고 나뉘고 

새로운 어떤 존재로 내가 파생해 간다는 것,

나누는 것이 어쩌면 무위한 일일수도 있지만.

프르스트적으로 생각해본다면...

그런 무위한 일들이 사실 우리네 삶을 움직여가는 아주 미세한 동력일수도 있겠지.

 

누구에게나 그렇지만 이 세상 사람들 중 가장 오랜 관계가 

엄마와 나의 관계가 아닐까,

엄마의 몸 안에서 엄마를 먹고 자라났으니... 

엄마가.... 나를 위영! 하고 부르실 때는...

아직도 자신이 나의 엄마라는 의식을 ...

혹은 무의식적으로라도....인지하실 때일 것이다. 

뭔가 확실한 이야기를 해야 할 때,

가령 오빠나 언니.... 혹은 조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실 때...

그리고 그 이야기가 적어도 내겐 꼭 필요한 이야기 일 때

엄마는 위영! 하고 부르신다.   


여행을 가거나 등산을 할 때

엄마에게 미안할 때가 있다. 

엄마는 당신 생애에 등산을 가보신 적이 없으시다. 

물론 시골에서는 행세도 하시고 출입도 하신..... 

아부지 따라서 시골 사람 치고는 꽤 많이 여행 다니셨다. 

제주도도 여러 번 가셨고 한라산도 올라가셨다고 하니 ...

그리고 성지순례도 다녀오셨으니...

그러나 그것은 여행에 이은 부수적인 거지

나처럼 등산을 위해 산을 오른 적은 없으시다는 것, 

글쎄...당신은 다리가 아파서..잘 걷지도 못하는데

배낭 메고 산에 가는 뒷모습을 볼 때.....

잘다녀와라 조심해라. 위험한데 가지마라...하시지만

내겐 그런 엄마의 눈길에서

금방 내게 다가올....내가 지닐 시선을 생각하며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할 '늙음에 대한 서늘함'이 감지되곤 한다.  

그러니 엄마는 평생 내 스승이기도 하다. 

지금도 저렇게 몸으로 앞서가시며 내게 늙음을 알려주시니 말이다.  

지난번 여행을 다녀올 때 예상 보다 조금 늦게 집에 도착했다. 

남편이나 아이들이야...머 엄마..조금 늦나부다.....

별 관심도 없는데 엄마는 아니시다. 

전화를 무수히 해도 받지 않으니..

마이 브라더에게 같이 간 사람들에게 전화해보라 까지 했고 

아 조금 늦나 보네요...해도

속으로 애간장이 타신 거다. 

집엘 들어서니 .소리를 버럭! 지르시는 거다. 

인자 여행 가지마라.....원 사람이 살수가 있어야제....  

당신의 걱정하신 품에 비하면

버럭~ 암것도 아니지만 

다 늙은 딸에게 버럭~ 이 미안하셨던지.

다음날 

아나...하며  편지 한 장을 주신 것이다.  

엄만 초등학교 문턱에도 못가보신 분이시다. 

그렇게 야학이라도 가려고 애를 썼는데 

외할아버지...

책만 보면 아궁이에 넣어버리셨다고 한다. 

그참, 

아주 영리하셔서..그 옛날에 농사를 지으시면서도 

어찌나 머리를 잘 쓰셨던지 

8남매 군것질 거리가 안떨어지게 먹고 살았다고 

울엄마 말씀하시곤 하는데.....그런 외할아버지께서도 여자가 무슨 글을... 이셨던 것이다.


겨우 익힌 언문으로 여전히 날마다 성경보시고...

기억력은 나보다 더 높으시고 사고력은 눈부시다. 

사람 보는 눈은 예리하시고 판단력은 정확하시다. 

 

나무의 껍질은 나무의 생명을 보호하는 장치이다.

나무학자 강판권은 어릴 때 나무를 하러다니면서 터득했다고 한다. . 

나무를 자를 때 절대 상처난 곳을 자르려고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상처를 입었기에 온몸의 진기를 다해 그곳을 보호하며 애를 써서 

다른 어느 것보다 더욱 단단하다는 것,  

고구마도 사과도 감자도 껍질은 속을 보호한다. 

껍질이 상하면 안은 저절로 상한다. 

엄마의 버럭~ 은

여전히 엄마가 나의 껍질이라는 선언이요. 

너는 절대 다쳐서는 안돼....라는 보호자로서의 품같은 것 


고구마 몇알 깍으며 드는 생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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