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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Apr 01. 2017

잘 있거라 나는 간다

나도 안부

 올봄, 봄님께서 유별나게 기품 있는 가문이신지 자주 몸살을 하는군요. 바라보지 않으면 가마에서 내리지 않겠어! 사랑해 주지 않으면 그냥 돌아설 거야! 주먹 쥔 손이 사랑스러워 주시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듭니다. 

그럼요, 아름다운 봄도 확인받고 싶어 합니다. 자신을 기다린다는 것을, 사랑한다는 것을, 

아름다운 봄이라고 왜 외롭지 않겠어요.

 봄인데....한계령에 눈이 십 센티가량 쌓여 길을 통제한다는 소식이 오늘처럼 들리면 내 한계령에 살지 않더라도 유행가 저절로 받습니다.

이 생각 저 생각 콩만한 봄볕 바라보다가 갑자기 소스라칠 때,

깊은 생각이 멍한 생각이라는 것을 소스라치게 알게  될 때 유행가 받습니다.  

 유행가를 무시하며 살아왔는데 이제 돌아와 서는 나이가 되고 보니 유행하는 노래를 무시한 것은 소갈딱지 좁은 무람한 일이라는것을  깨닫습니다. 협착한 길 걸으며 작은 우물을 대양으로 여기는 개구리였다는 것, 아니 개구리만도 못하다는 것을 알았다는 겁니다. 

 봄인데  바람 불고 햇살은 눈부신데 서늘한 날 유행가 잘 받습니다.

연분홍 치마가 수소 풍선처럼 가볍게  솟구칩니다.  

 

연분홍 치마가 봄 바람에 휘 날리더라 

연분홍이라니.....연분홍치마라니 ....봄바람이라니........ 휘날리더라니.......

설핏 촌스럽기 그지없는 장면인데 가슴을 탁 칩니다. 촌스러움이 지닌 세월에 눈이 열린것이죠. 

새것은 언제나 세련된 대신 세월이 없는데 내게  쌓인 세월이 세월에 대한 눈을 열게 한거예요.  

 휘날리더라는 세상 어떤 언어로도 번역할수 없는 단어죠.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분홍색 치마만으로도 부족해서 옷고름 씹어가며 그를 만난다구요.  

이런 수줍음....은 과거의 시간 풍속을 품고 있어서 아련하지요.  산제비는 아마도 산제비나비를 일컬는듯, 

나비치고는 아주 커다란 너울거리는 산제비나비, 너울거리는 산제비가 그녀에게, 혹은 그에게 너울거리는 환상을 입혀줄까요.

꽃이 피면 같이 울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 날은 간다

그남성 그녀에게 고백하네요. 꽃이 피면 같이 울고 꽃이 지면 같이 울자는 고백

아 알뜰한 그맹세..... 알뜰이 여기에 서있으니 삶이 조촐해지고 마네요. 당연히 사랑도 조촐해지고, 

그래도 봄날은 가.....가버려 무정하기 그지 없는 봄날이여.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 가드라 오늘도 꽃 편지 내던지며 

청노새 쫄랑대는 역마차 길에 별이 뜨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실 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

한 해 지났을까? 아니면 두 해? 조금 더? 여자 혼자 앉아있네요. 자그마하게 흐르는 개울가에 

파란 풀잎이 물위에 떠서 세월처럼 시간처럼 흘러가네요. 새파란 풀잎을 보니 더 쓸쓸해져요,

그남자. 꽃이야기만 한줄 알았더니  별도 따다가 연애에 사용했어요. 그때는 알뜰한 맹세였는데 이제는 실없는 기약이 되어가고있어요. 봄은 저다지도 여전한데....봄은 무참하게도 왔다가 저렇게 가네요. 사라져 가네요 봄. 

열 아홉 시절엔 황혼 속에 슬퍼 지드라 오늘도 앙 가슴 두두리며

새가 날면 따라 웃고 새가 울면 따라울던얄궂은 그 노래에 봄날은 간다.

열아홉 빛나는 청춘시절에도 사랑없으면 황혼이 슬퍼져 뜬구름 흘러가는 신작로 길에 



아 가슴이 너무 아파서 아프지 말라고 두들기네.

가슴에피 생기네



신작로 길에 뜬구름은 어이 저리 하얀고 어이저리 두둥실인고

길마저 데불고 두둥실 떠나가는것 같네. 

새가 날면 따라 웃고 새가 울면 따라 우는

하긴 사랑의 시작부터가 너무 얄궂다. 그러니 저렇게 봄이 갈 수 밖에......

속절없어   잘 있거라 나는 간다. 이별의 말도 없이

오래된 유행가는 노래가 아니라 남편 잃은, 혹은 자식 잃은, 그러나 매우 친한 벗의 이야기 같아요. 

그렇잖아요. 잘 있거라 나는 간다. 이별의 말 도 없이 

이게 무슨 노래냐고요.

-가슴이 찢어질 것 같더라. 커다란 바늘 있잖아 작은 것도 아닌 아주 커다란 

그런 바늘로 사방 데를 푹푹 쑤시는 것 같은 아픔을 아니? - 친구 이야기예요. 

떠나가는 새벽 열차 

이즈음에 서면 이야기가 아니라 눈물 같잖아요. 내 친구처럼 슬픔 없다손 치더라도 그냥 눈물 나잖아요.  

유행가 잘 받는 날 더불어 시를 읽어요.

그래서 오늘도 이 시를 읽어요.  

남자가 뭐 저렇죠? 

그것도 나이 든 남자잖아요. 

오토 카니 앉는 것은 여자잖아요. 

앉는 품새부터 마음에 안 들어, 진짜, 

남자가 눈이 밝기는 왜 그리 밝아요. 

<발목이 햇빛 속에 들었습니다> 

아 정말 쨩나요. 

한 문장, 

그것도 아주 사소해 보이는 한 문장으로 

붐을 다 보여 줘버리잖아요. 

<사랑의 근원이 저것이 아닌가 하는 물리(物理)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 진짜 얄밉지 않아요? 

이 시인,

다자이 오사무보다 순진하지 않아요. 

이 시인,

세상에 저렇게 극진한 사랑을 표현하다니,

꾼 아니에요? 바람둥이요. 

여자들 저 문력으로 오직 울렸을까.......

세상에 얼굴도 모르는, 

늙은 아주머니 홀려대는 것 좀 봐요. 

보통 꾼이겠어요? 

<이 빛이 그 방에도 들겠는데

가꾸시는 매화 분(盆)은 피었다 졌겠어요>

손들었어요. 

아저씨

조용할게요.

그냥 커피나 한 잔 내릴게요

조용히 그리고 마실 깨요 

향기...... 퍼져나가는 것이나 바라볼게요. 

분주한 봄빛은 아니더래도 

그냥 저 봄바람 결 가락 높낮이...... 나 살펴볼게요. 

<흉내 내어 심은 마당가 홍매나무 아래 앉아 목도리를 여미기도 합니다>

아흐, 그만하세요. 

당신 안부로 

나 지레 죽겠습니다. 

봄 몸살 내게로 그대로 옮겨 앉겠습니다. 

열 오르겠습니다. 

살 아프겠습니다.

숨 멈출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제발 숨 좀 쉬겠습니다. 

마디가 古文이라며 눈도 좀 감았다 뜨는 양,

이 시인 古文이

내겐 

拷問입니다. 

알겠지요. 녜, 그것을 노린 겁니다.

극진한 안부가 

고문이 되는 것을요. 

남의 안부가 내게 이다지도 사무친 것은

내가 되돌아서서 길을 가는 것 때문인가요. 

유행가가 받는 날이라 선 가요? 

겨우 두세 송이 핀 매화나무 가지를 보며

봄이 갔네.

해서인가요.

그도 아니면

알아요, 

유행가는

감정을 다잡기는커녕 흐르게 하죠.

생각하며 듣는 음악들이 감 정을조 정하는 힘을 내게 주었다면,

유행가는 

장맛비 수난 내리는데 가득 찬 보에 작은 구멍 내는 일이죠.


봄 아기씨도 

이렇게나 몸살을 깊게 앓으며 오는데


나이 이야기가 나왔으니 주절거려 봅니다.  

오십 까지는 전진하는 길입니다. 언제나 모든 길 아마도 거의 낯설고 새롭고 신선하지요. 가끔 기특한 옵션으로 소스라침 있습니다. 

오십 넘으면 갔던 길 뒤돌아서서 걷습니다. 새롭고 신선하지는 않은데 제법 뭉근합니다. 바삐 가노라 전에 보지 못했던 것들 찬찬히 바라보고 걷습니다. 

소스라침이 점차 사라지면 애틋함이 찾아옵니다. 그것도 아주 작은 것들에서요. 양지바른 쪽에서 푸르른 개불알꽃 한 송이 만나면 당신 제발 그냥 지나치지 마세요. 펴진 무릎 굽히세요. 고개 숙이세요. 

나지막하게 더 나지막하게 눈을 아래로 해서 푸르른 꽃과 눈 마주치세요.

사람을 향하여 가는 마음 꽃에게 그 푸르른 작은 꽃에게 나눠주세요. 

그 푸르름만큼 당신에게 평강 찾아올 거예요.

처음 아주 작을 거예요. 반복되면 많아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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