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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Apr 05. 2017

자네

나도 홍길주처럼 <자네>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보고 싶어.

그러고 보니 정말 그렇더군. 

살아오는 동안

무척 많은 사람에게 

하물며 불특정 다수인 <그대> 와 <당신>에게조차 

그토록 수많은 편지를 써 댔는데 한 번도 단 한번도

수취인을 <자네>에게로 한 편지는 쓴 적이 없으니....


홍길주는 <자네> 에게 일심동체라며 다정한 어조로 시작 하더니

종국에는 자네의 독서가 자신을  만들어 주었지만 

주역과 예기 논어와 대학과 중용을 읽지 않으니 정신이 혼미해져 간다고.....


홍길주는 정신이 밝은 사람이지 싶어.

자신을 ‘나’와 ‘자네’로 명실상부하게 나눌 수 있는 것도 그렇고

자네의 독서를 통렬하게 나무라는 것도 그렇고.


물에 물탄 듯 술에 술탄 듯 사는 나의 자네 같은 사람에게는

저기 먼 지점의 행위이지 싶기도 하지만. 

설령 그렇게 밝지는 못해도 아늑하기도 하고 왠지 다정한 눈빛이기도 해서....

나도 자네에게 한번쯤 그렇게 

아늑하고 다정한 눈빛을 보내보는 것도 좋을 듯해서 말이지. 


여기저기 자꾸 떠다니고 싶어 하는 것도

혹 자네 늙음의 제증상 아닌가....그렇게 늦은 밤....

자네의 바깥도 자네가 어딘가를 가려고 할 때 생기차고

다녀오면 고마움 탓에 평소보다 더 상냥한 흉중을 알아챘을 것이고 

늙으면 그도 다니지 못하리, 자네를 자신화 하는 끈이 있어 

자네의 짧은 여행을 언제든 허용하니, 

오직 자네의 자당께서 아니 이 밤에 어딜 하는 눈빛으로 

걱정스럽게 바라보시지만  

하여간 홀홀히 떠나는 것..... 

늙어가는 것을 

면밀하게 바라보려는 의식보다는 

잊고자 하는 의지가 더 깊은 게 아닌가 싶더라는 거지. 

늦은 밤 열한시반에 충무로역에 도착....

거기 서있는 버스에 타고....

체질이 여행을 잘하게 조직 되었나.... 

비행기 안에서도 잘 조는데

우등고속버스야.... 비지니스 클래스지.

더군다나 오른쪽 혼자 자리니..

자넨 조금 어두운 창밖을 응시하다가..... 

내일을 위해 자야지 생각하며

목베게 위에 고개를 눕히지.

곁에서 큰소리로 코고는 소리가 없으니 

오히려 집보다 더 좋은가 할 정도였으니. 

이 여행을 좋아 하는 이유는 <수다없음>

말을 많이 하면 퇴출되는 여행이지.  그래서 차안은 언제나 고요해....

아내와 함께 온 남편 즉 남자는 한사람이고  차안이 온통 여자들인데..... 

고요해서 우아하지.

더군다나 깊은 밤이니....

두 번 화장실 가는 사람들을 위해 휴게소에서 멈추었다가 차는 조용히 떠나고.....

흘깃 시계를 보니 새벽 다섯시야.

차가 멈추더라고....

아 정남진 장훙에 벌써 온건가....

세상에 바다가 바로 발 아래 있는 거야. 

자넨 그런 새벽 바다는 처음이었지. 

화가들이 색중에서 블루를 자주 쓰는 이유가 

혹 사람의 감정을 표현하는데 그 빛이 가장 잘 어울림 혹은 나타냄인가,

생각을 해보기도 했는데 

이른 아침..

아니 아직 아침이라고 할 수도 없는 

깊은 밤의 끝 

새벽의 시작

그 미묘한 양비의 시간대

거기 블루가 있더군.

환한 햇살아래의 푸르른 바다나 푸른 하늘이 아닌 

아주 적막한 블루. 

그것도 흐르고 있었어. 

어디에선가 하염없이 다가오고

또 어디론가 하염없이 흘러가는 블루...

하루의 시원이기도 해서일까,

바다의 블루나 하늘의 블루나 그리고 옅게 낀 구름들이 혼재되어 있는 양상...

블루의 근원처럼 여겨지기도 했어. 

아주 작은 마치 멈칫거리는 발자국 같은.....

모습으로 다가오는 물결들의 소리에서도 블루가 여겨져

자넨 조금 고개를 흔들기도 해보더군.

이즈음 사소한 것들에 잘 홀리는 습속이 생긴듯해서

홀림을 내보내는 몸짓이었지. 

떠난다는 것, 

일상을 벗어난다는 것은,

낯선 시간대와 낯선 공간 낯선 내음이 비범의 옷자락을 드리운 채....

자네와 동행하는 것, 

그래서 자네 속에 내재하지만 

일상이라는 자장가 속에 깊이 잠들어 있는 더듬이, 

그 더듬이를 

떠남이라는 비범이 살짝 터치하여 일으켜 세우는 일. 

자넨 

처음 보는 블루 앞에서 솜털이 곤두서더군.  

어둡기만 하던....소등섬이 자태를 들어내고...

어여쁘기도 하지 이름.

소등섬이라니.... 불이 꺼지는 고요함을 나타내는 단언가,

왠지 나는 그렇게 여기고 싶었는데 

소의 등 같아서....작은 등불이란... 소등섬..... 

소나무모습이 선명해지고

블루는 옅어지는 듯.... 

해의 정기를 품은 따뜻한 주황빛이 불루에 더해지며

바다 위 하늘은 

조금씩 바닷물과 몸을 나누며 전혀 다른 블루로 화해져 가더군.

움직이지 않는 완벽한 정적인 상태에서의 신묘한 변화....

태풍의 눈 같은 고요함인가, 

삼각대에 카메라를 걸고 해를 기다리는 여인이 말하더군.

해 사진은 한겨울이 좋아요. 아주 깨끗하잖아요. 

차가움이 청결함과 동급이라는 이야기로 자넨 해석을 해 듣더군.

렌즈가 차가움을 인식한다는 해석도 되지. 

카메라 렌즈에 관해 욕심을 부리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던 

자네의 마음이

카메라의 눈으로 

소등섬과 태양

그리고 자네가 좋아하는 길이 소등섬에 나타나기 시작할 때 

다시 흔들리더군.

길사진.... 

더군다나 먼뎃길....

길에 대한 자네의 감흥을 나도 좋아해...자넨 그렇게 대단하던 그랜드 캐넌을 가서도 웅장한 협곡보다

그 협곡 아래 아주 조그많게 ....흐르는 길을 보고 감동을 했으니...길은..눈에 보이는 길은 단순히 길이 아니라는 생각....사람의 발자욱으로 만들어진 아스라한 산길은 특히 자넬 감동시키곤 하지

얼마나 많은 시간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발걸음으로 다져진 길일까, 

생각하면 

조그마한 산길은 

숲으로 난 소롯길은 

단순히 길이 아니라 

사람이고 

시간이고 

유장한 역사 아닌가 말이지.  

소등섬은 썰물일 때면 걸어서 갈수 있는 섬이라고 했는데

자네가 서있는 새벽시간대는 만조였지.

물에 가려 사라진 길을 

자넨 연상하며 

길이 없는 그러나 길이 있음직한 곳을 찍더군.

지나온 어느 시간대...

길이 잘 안보이던 시간을 찍듯이..... 

해는 수평선이 아니라 

구름위에서 어느 순간 둥실 떠올랐고

누구나 가볼 수 있는 소등섬을 

바다가 가로막아 걸어보지 못해도 

자넨 

아무 불만이 없더군.

그 야트막하고 평온한 바다...작은 섬.

하늘의 이내와 바다의 이내가 합일하여내던

푸르스름한 새벽의 블루.....는 

자네가 처음 본 블루였으니... 

홍길주가 바라본 <자네>만큼 

나의 <자네>가 깊은 독서를 못한다 할지라도....

처음 본 블루만으로도 한없이 만족하는 자네가....

그래도 나는 좋아.

소박하잖아.  


그래서 나도 홍길주처럼 

자네에게 이렇게 마지막 문장을 쓰려고 해 

현산자가 현산자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자네의 건필을 기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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