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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Jun 22. 2017

새로운 인생

오르한 파묵

오르한 파묵의‘새로운 인생’을 읽으면서 새로운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제는 누워서 책을 보지 말아야겠다는  것, 

나처럼 소설 좋아하는 사람도 누워서 책을  보니 슬슬 잠이 오더라는 것이다. 

한 두번도 아니고 여러  번, 

그렇다고 졸리는 상태도  아닌데. 

책 들고 침대나 소파에 누우면 깜빡 졸음이  왔다. 

슬픔을 자주  느끼거나 잘 바라보는 사람이라선지ㅡ 

(파묵의 문체를 흉내 내는 지칭어다.오르한 파묵은 단순하게 주인공을 지칭할 때 나라고 하면 간단할 것을  언제나 글의 관계랄지 주제랄지 혹은 강조점을 의식하여 면밀하게 다지듯 길다란 문장으로 주인공을 설명하곤 했다.가령 불행한 여행객이자 인내심 많은 보험판매원인 가련한  주인공은.......라는 투다)  

하여간 슬프게도 이 졸음이 오는  상황은 

정신이 육체에 밀리고 있다는 확실한  빙증이다. 

왜 몸은 약해지고 여기저기  낡아지면서도 

오히려 정신보다 더 세지는  것일까? 

우위에 서는 것일까? 

피곤해,쉬어,하지 마,가지 마,힘 들어,중요하지 않는데 너 그것하면 나 아픈다?  

왜 나를 지 맘대로 해가는  것일까?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도 여기에 적용되는 걸까,  

약한 것을 쓰다 보니 아주 재미있는  연상하나. 

블로그 글질이니....ㅋ~ㅎ~  

바닷가 이야기를 엄청 입담 좋게 잘 쓰는  한창훈의 글 한 대목, 

“늙어가면서 피부나 손이나 발등 온몸이 다  거칠어지는데 

정작 거칠어야할 어느 한 대목은 왜 그리  부드러워지는지.....“ 

아 남자 노인 이야긴데 난 이 대목  읽으면서 엄청 웃었다.  ^^*  

이왕 뻘짓거리=해찰= 쓸제없는짓=하기 시작했으니 하나 더  

어느 순진한 캐칼레 여인이 결혼을  했다. 

몇 년이 흘렀으니 그런 이야기도  했겠지. 

달 밝은 밤이었을지도  몰라. 

남편에게 말했다. 

‘남자들은 거기를 씻을 때 잘 펴서 깨끗이 씻어야 할 것  같아“ 

남편이 아내에게  말해다. 

‘그대는스타킹 빨 때 주욱 펴서 빠는가?“  ㅎ~    

나는 새로운 인생을 단정한 자세로  읽었다. 

지루하면 서서도  읽었고 

사이클을 타면서도  읽었다. 

그리고 나는 나의 한 시대와 작별하는  결심을 하나 했다.  

이제 누워서 책을 보지  않겠노라는,  

새로운 인생을 보면서 새로운 결심을  하고 

새로운 자세로 책을 읽게  되었으니 

책의 제목에 합당한  변화이런가....  

한량없이 멋있는 이책의 모두는  이렇다. 

주인공 공대생 스물두 살의 남자 이름은  오스만(내가 보기엔 오르한 파묵임)  

어느 날  한권의 책을 읽었다 

그리고 나의  인생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그리고 이 영리한  작가는 

책을 읽는 사람에 대해 무수한 전개를 하고  그들의 반응을 펼쳐 보이면서도 

그 책이 어떤,무슨,책인가를 끝까지 말해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마치 주제처럼 선명한  제목“새로운 인생”에 

대해서도 어느 귀절 하나 선명하게 풀어놔  주지 않는다.  

책속의 책은 마치 절묘한 추리소설처럼  조금씩 보였다가 사라지고 

이건가 하면 저것이  되었다. 

어느 사람에겐 선을 대표하는 삶을 바꿀만한  매혹이지만 

어느 사람들에게 악의 표적이 되는  책, 

그러나 이  책은 

사람을 변화 시키고 책에 혹하지 않는  사람까지 책을 향해 휘돌아가게 한다.  

책속의 가장 중요한 주인공인  책은 

손에 잡히지 않는 삶 같기도  하고 

이룰 수 없는 꿈같기도  하며 

눈에 보이지 않으면서도 우리를 지켜주는  수호 천사 같기도 하다. 

실제 코란의  천사와 

성경속의 천사가 어찌 다른가에 대한 대목도  나오고 

자난을 천사로  바라보는, 

하여 그 누구도 천사가 될 수  있다는...미묘한 인식도 하게 한다.  

새로운 세상.....을 반쯤 읽어가다 

나는 정말 오래전에 읽었던 하마 삼십  여년전? 

헤르만 카사크의‘강물 뒤의 도시’를 떠올렸다. 

새로운 인생은 죽음 뒤의 도시를  말함인가..... 

사실 그 대목을 오르한 파묵은 유심하게  보는 듯 하긴 했다. 

책을 읽은  후 

익숙함과 기억 같은 것을 떠나 새로운  인생을 찾아ㅡ 

그러나.... 

익숙하다 하여 새로운 일 아닌 것이 어디  있겠는가 

자기의 삶 아닌 새로움을 찾아 떠난다 한들  그 자기는 자기 아니겠는가,  

그래서  오스만은 

사고와 죽음의 지경에서 서성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는 사고가 날만한 버스를 골라타곤  했다. 

사고를  목격하고 

사고를 실제 당하기도  하고 

결국 버스  사고가운데서 

그토록 그리워하며 찾아다니던 아름다운 여인  자난을 만나게 되고 

그녀와 함께 여행은  계속된다. 

새로운 일들이 수도 없이 빚어지는 일상의  후에 

결국 오스만은 메흐메트를  죽인다.  

메흐메트는 오스만처럼 책을 읽고 변화된  후 

새로운 삶을  찾아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버릴 뿐 아니라  사랑하는 자난에게서조차 떠난다. 

그리고  그는 

낯선 도시에서 너무나 평범하게  살아간다. 

그가 하는 일은 아주 맑은 정신으로 책을  베끼는 것.... 

(오르한은 자신의 글이 삶을,인생을,지구를,우주를,베낀다고 생각할 것이다.아마도)  

혹시 오스만이 죽인  메흐메트는 

오스만으로 변해 살고  있던 

자난이 사랑하던 그 남자.......는  바로 그 자신이었을까?  

오스만은 살인자가 된  뒤에서야 

익숙한 원래의 삶으로 귀환해서 결혼하고  딸을 낳고 

그 책을 쓴 이가.... 

그의  아주 어린시절 아버지의 친구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도  오스만을 염두에 둔..  

마치  양파처럼 

그러나 양파와는  달리 

처음과 끝이 유기적으로 융합된 엄청난  알레고리가 마지막까지 

화산폭발 후용암이 끓는것처럼 여기저기  분출한다. 

하긴 알레고리로  치자면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수 없게 가까운>사프란 포어도 뒤지지 않는다. 

소설에 대한 감각이 있는 영리한  사람이라면 

알레고리 정도는 능숙하게 만들 수  있테니....  

그보다는 

모든 글을 겹으로 읽게 하는 뛰어난  능력. 

글의 등장인물에 부여하는 수많은 인생에  대한 담론.  

가령, 

나린 박사는 

각각의 사물들이 가진 고유한 특징들을  발견하는 것을 

삶의 가장 큰 은총으로 여긴다는  대목은 

아주 좋았다.^^*나도 그 타입이라,  

무엇이든 상상 가능하게 하는 열려있는 문이 소설 속에는 가득하다.  

그러면서도 작가의 걸음은 도무지 쉬지를  않는다. 

마치 그는 소설이라는 산책로를  통하여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밟고야  말겠다는 

호기까지 느껴진다.  

그러면서도 애잔하게 흐르는 서정은  풍부하다.  

여름은  푸른하늘을 배경으로한 구름의 시간이기도 하다. 

어제  산위에서 바라본뭉게구름은 아득했다. 

단순한  아름다움이나 매혹이 아닌 

어떤  알지못할 생에 대한그리움을 일깨우는는 모습이었다..  

아내와 딸을 사랑하며 그들과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면서도 

자난에 대한 오스만의  그리움은.......아득하고끝이 없다.  

이글 누군가는 지루하다고  했다. 

사실 지루한 면도 없지않아  있다. 

그러나 그 지루함.....모기장 같은 것 살짝 들추고 들어가기만  하면 

엄청난 세상 펼쳐진다. 

괜히 노벨상 작가가 아닌  것이다. 

오르한 파묵1952년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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