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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Jun 22. 2017

분꽃 찻집

우리 동네에 있는데 잘 찾으시려나 모르겠어요. 

눈이 환하시면. 

명민한 눈으로 찾아만 오신다면 아주  좋으실 텐데.  

우선 그 찻집 의자가  좋거든요. 

상수리나무로 만든 의자도  있지만 

전 개인적으로 소나무 의자가 더  좋더라고요. 

우선 향기가  그윽하잖아요.  

솔향은 침엽수 아니랄까 봐 향기가  직선이에요. 

둥글둥글하지 않죠. 

바로 파박 가느다란 모습으로 쏘는 듯이  다가와요. 

여자로 치자면 아주 날씬하고 기다란  여자? 

그러니 복잡하던 머릿속이 조금 가라앉기도  해요. 

뭐든 선명한 것들이 치고  들어오면 

나른한 것들은 숨을 죽이곤  하지요.  

가령 비애 같은 것  말이죠. 

어느 시인은 태어날 때부터 비애를 가지고  왔다고 하더라고요. 

하긴 

모노 노 아와 레.... 

탐미적이면서도 니힐한 이 비애의  정조가 

일본인의 미의식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으니 

비애를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왔을  거라는 

시인의 추론도 그다지 틀릴 것 같지는  않습니다.ㅡ 

아이 아무리 찻집이 급해도 이 시 그냥  하나 읽고 가야겠어요.. 

조금 있으면  분꽃 피어나는 시간이니까  

//////// 

분꽃이  피었다 

내가 이  세상을 

사랑한 바  없이 

사랑을 받듯  전혀 

심은 바  없는데 분꽃은 뜰에 나와서 

저녁을  밝히고 

나에게 이  저녁을 이해시키고 

내가 이  세상에 오기 전의 이 세상을 

보여주는  건지, 

이 세상에 올  때부터 가지고 왔다고 생각되는 

그悲哀보다도  화사히 

분꽃은 피어서  꽃 속을 걸어나오는 이 있다 

저물면서 오는  이 있다.(장석남) 

//////  

그 찻집에서 읽으면 아주 좋을 시 같기도  해요. 

사실 꽃이 핀다는 것은 그냥 한 구절  만으로도 시가 돼요.  

분꽃이 피었다.  

진달래 핀다.  

장미 피어났다.  

백합 향기  가득하네  

그렇잖아요. 

잠깐 멈출 수만  있다면, 

멈추질 못해서 시가 되질 못하는  거죠.  

생각하게 하고 기억하게 하고 그리워하게  하고 

그 정도면 시의 근간인 모노 노 아와래  아닌가요?  

그제 

내가 그립다는 문자를  받았어요. 

스마트 폰에 써진 일곱 자도  시냐고요? 

그럼요 시구 말고요. 

당신이 그리워하는  것, 

당신을 그리움으로 내모는  것, 

그것은 다 시라고 봐도  무방해요.  

조금, 약간, 눈곱만큼 

공평무사하게 보이는 보편성이 없어서  그렇지.  

하긴 보편성도 엄밀하게 말하면 시인이란  이름 때문에 주어지는 것이지 

시 자체가 부여한 것은 아닐  거예요.  

이 시 좋죠. 

아주 좋지 않나요? 

나는 아주 좋아해요. 

분꽃 만 피면 이 시  생각나요. 

분꽃이 저녁을 밝히고 세상을  이해시킨다는..... 

나처럼 세상을 잘 이해 못하는  사람은 

이 시를 읽을 때마다 분꽃을 보며 하염없이  서있고 싶고 

어느 땐 분꽃의 목을 흔들고  싶어요. 

날 이해시켜,. 빨리..... 

단지 부러질 것 같아서 흔들질 못하는  거죠.  

아마 시인도 그것을 알았을 것  같아요. 

이해 못한다  하더라도 

분꽃의 목을 따는 일은 하지 못할  거라는, 

그래서 담대하게 그렇게 써놓고 아마 씩  웃었을 것 같아요..  

결국  어스름해지고 

꽃 더위 정접을 향해  치솟으면 

분꽃 앞에서 비애보다  화사한.... 사랑에 대해 생각하게 되겠지요. 

특히 사랑이 뭔 줄 모르는 나 같은 사람은  더더욱이요.  

그 찻집 

의자만 좋은 게  아니에요. 

전망이 아주 끝내주는  집이에요. 

여늬 찻집처럼 창문 앞만 전망이 좋은 게  아니에요. 

사통팔달이죠. 

어젠 특별히 시원한 바람도 함께  하더군요.  

팔월이면 나무 꽃.... 꽃처럼 보이는 모감주 열매나.... 회화나무 뒷자태.... 

아 산초나무 꽃 이제 머금어 오르긴  하더군요. 

하도 작아서 잘 보이질 않아서 문제긴  하지만. 

대신 바람이 있어요. 

바람이 꽃처럼 보여요. 

가만히 있는 나무들 가볍게 흔들고 지나가는  바람..... 

그 바람이 꽃처럼  여겨져요. 

아니 꽃보다 더 아름다울 수도  있어요. 바람. 

그런 바람이 가득 들어차 있는 그  찻집  

커피 맛도 일품이에요. 

이즈음 하도 더워서 얼음 동동 띄운 커피를  마시는데요. 

당연히 달달하죠. 

얼음 커피는 달아야  해요. 

그래도 설탕은 조금..... 

그 집에서는 그런 내 맘을 알아 그린  스위티를 넣어 달달하게 타주죠. 

어젠 정말 사람 한 명도  없더라고요. 

아  그 찻집 들어서지 않고 그냥 스쳐 지나가는 사람은 몇 있었지요만, 

세상에 그렇게 좋은  찻집..... 에 말이죠.  

주인장 눈치를 슬몃  보았더니 

장사와는 상관없다는 듯 느긋한  표정으로 

그도 나처럼 바람 보고  있더군요.  

그 집은 음악이 없어도  좋아요. 

그래도 음악이 듣고 싶으면 맘대로 틀어도  돼요. 

말러나 레퀴엠에 집중하기엔 너무  더워 

그냥 흘러가는 곡  틀었어요 

하이든의 황제랄지.... 찬송가 몇 장이 더라라.... 

신세계에서.... 도 들으며 이게 찬송가 몇 장인데....  

거기다가 서울 시내 전경이 한눈에 다 들어와요. 

남산도 보인다니까요. 

가시거리가 좋은 나이면 서해 바다..... 

인천대교 

인천공항에 들고나는 비행기도 보여요. 

잠자리보다 더 작긴 하지만.....  

무엇보다 그 찻집은 하늘이 너무 잘 보여요. 

하늘과 이웃사촌이라도 된 듯하다니까요.  

이런 찻집 

우리 동네에  있어요. 

아, 조금 아주 약간 걸으시긴 해야  해요. 

찻집 주소  올립니다. 

한번 꼭  찾아가 보시길요.  

경기 고양시 덕양구 북한동 북한산  삼천리골 사모바위 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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