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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Jul 21. 2017

그대  와흘리 팽나무




아주 오래전 현기영의 소설 <순이 삼촌>을 읽긴 했는데

시절을 담은 상처를 지닌 한 여인에 대한 이야기 정도로만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얼마나 성기게 글을 읽은 겐가, 

혹시 긴 시간이 흐르다가 기억의 강 어디에선가  슬쩍 잠겨 버린 겐가,.

제주도에서  “삼촌” 이란 단어가 

여자 남자를 불문하고 먼데 친척에게 쓰는 단어라는 것을 

즉 순이 삼촌이 여자라는 것을 유홍준의 답사기에서 알았기 때문이다.

전라도에서는 <아재>라는 단어가 광범위하게 쓰인다. 

친척 당숙을 아재로 부름과 동시에 이웃집 친한 사람들을 아재로 부른다. 

남편의 친구나 동생들도 아재로 호칭되며 외숙에게도 아재를 사용한다.  

아재는 매우 정겨운 단어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시골을 정 많은 곳이라고 속으로 인정하고 있다.   

남자에게만 해당되는 삼촌이라는 단어를 

여자에게도 사용한다는 것은  

외떨어진 섬이 지닌 너그러움 탓 아닐까,

(여행을 가면 사람이 저절로 너그러워져서 

너그러운 추론을 하게 되는 것이다. ㅎ)     

제주도의 본향. 본향단은 낯설면서도 고개가 끄덕여졌다.  

마을마다 신당이 있는데 그 신당을  본향당이라 했다. 

와흘리의 본 향단인

엄숙하고 귀기 어린 팽나무를 보고 싶었다. 

신은 나무다. 

외로운 마음과 허전한 마음을 신산한 갈래를 고통을 부끄러움을,,,,

참을 수 없는 슬픔을 사람 아닌 나무에게 고하는 것이다.    

고뇌에 찬 여인이 거대한 팽나무 밑에 와 선다.

나무는 이윽히 그녀를 바라다본다.

그녀는 소지를 한 장 품에 안고 중얼거리기 시작한다.      

그것은 아주 오래전 누군가가  시작한 일이다.

너무나 가슴이 아파 가슴에서 진기가 흘러내렸을 것이다. 

혹은 고통에 찬 눈물을 닦으려고 가슴에 쥐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천에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아마 생에 쩐 땀과 생애 찌든 때가 하얀 천에 배어났던 것일까?) 

마치 자신의 고통에 대한 절절한 기록물처럼 여겨져 

그녀는 그 수건을 나무에 매달았다. 

나무에게 고하던 때 

자신의 문제에 대한 객관화가 이루어졌을 것이다. 

나무 앞을 떠나올 때 그녀의 발걸음은 조금 가벼웠을 것이다.

그렇게 힘들어도 햇살은 여전하며 벼는 누렇게 가을들판에서 익어갔을 것이다. 

노란 올벼쌀과 그 쌀로 만든 하얀 백설기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희망이 저녁 어스름처럼 살며시 차올랐을 것이다.

아늑한 집.... 과 식구들 생각에 발걸음이 총총 차올랐을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그토록 사무친 문제들은 

기억이 되었을 것이다.

자신의 딸아이가 고통을 당할 때 넌지시 말해주지 않았겠는가,  

얘야, 그냥 혼자 삭히지 말고 팽나무에게 가보렴 

거기 가서 니 문제를 아뢰면 오래오래 산 팽나무님이 너에게 할 일을 일러줄 것이야.

하얀 손수건 한 장 가슴에 품고 가서 실컷 울다 오렴.

그 손수건에 네 문제가 그려질 거야. 그 천을 나무에게 걸어두고 오면

네 문제가 해결될 거야... 나도 그랬거든.... 

유홍준 선생은 이일을 傳寫로 표기했다.      

나무도 생명체라 특별히 장엄하고 특별히 엄숙하며 특별하게 기센 나무가 없으랴.  

와흘리 본향당 팽나무가 그러했다.

사람들과의 숱한 대화 속에 그는 그저 나무였지만

연약한 사람들의 강요와 다짐 속에서

점점 기이한 생명체가 되어갔다.

얼룩덜룩한 옷을 해 입히고 덩실덩실 춤을 추고 

촛불을 수도 없이 밝히더니

결국  그 불에 내 몸을 태워버리고 말았구나....    

내비가 가리키는 대로 자그마한 골목길에 들어섰더니 

 돌담에 윤기 흐르는 동백나무가 가득하다. 

 팽나무는 어딜 갔을까...

 들어가도 신령한 나무는 보이질 않는다. 

길은 하도 좁아서 다섯 번 정도 핸들을 바꿔서

겨우 오던 길에 다시 들어섰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나타난 하얀 대리석 몸을 지닌 나무!

 이야, 저거다.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도 저절로 알아지는 나무    

가보니 무당들이 하도 난리를 하다가 결국 불이 나서 한 나무는 사라지고

한 나무만 남아있는데 그것도 문을 잠가 놨다.

이제 불이나 버렸으니 그저 평범한 나무가 되어버린 것일까, 

조금 보이는 것만으로는 도무지 만족할 수 없어서

결국은 그 철책 문을 열었다. 

다행히 열쇠는 채워져 있지 않았다.

도시女들은 풀에 벌레 있을까 봐  못 들어오고

오~~

타버린 잔해, 한그루 나무... 남았음에도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다. 

이렇게 기이한 나무를 내 어디서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인가.

비록 소지를 가슴에 품고 내 삶을 아뢰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긴 세월을 한자리에 서서 한결같은 모습으로 존재해냈을...

그리고 앞으로도 존재해 갈...

아름다운 생명체... 

그대  와흘리 팽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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