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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Jul 31. 2017

강화 성당


강화는 내 가슴속에 새겨진  아름다운 풍경들 중 하나이다.

마음이 삭막하고 건조해지면 달려가고 싶은 곳,

나지막한 산야처럼 나지막한 집들이 

마치 숲이라도 되듯 나무라도 되듯 서로 안 듯이  편안한 곳 

화려하지 않아서 오히려 정감 그득하고,    

시골의 풋풋한 정경을 안겨주며

그래서 마음이 편안해지고 소박해지는 곳,

그러니까 커다란 감동까지는 아니더라도 

모든 것들에 대하여 긍정의 품이 환해지며

아, 그렇지..... 그러네....하게 되는 곳,

   

그중에 성공회 강화성당은 아주 마음에 좋아서 자주  들어가 보곤 한다. 

동네 위에 두둥실 잘 보이는 자리에 있지만

그렇다고 군림하는 모습은 아니고..

한결같이 오래 오래 살아온 모습이 좋다.

그러니까 건물도 오래 살면... 외할머니化,

부드럽고 정겨웠던 외할머니의 품처럼 여겨지기도 한다는 것,  

     

다행히 조금 흐린 날이었다. 

더우면서도 어디선가 약간의 바람이 불어왔다.

좁다란 옛 골목길에 겉만 약간 씩 고친 가게들은

요즈음 중학생...초딩들도 한다던가...아이들의 분홍빛 입술처럼 여겨졌다. 

몸은 드러내놓고 머리만 숨긴 아기처럼.....귀엽기도 했다. 

아 그래서 아이들도 입술을 그렇게 바르는가, 

지인이 사준 추어탕을 먹은 후라 속이 좀 짠 듯 했다.  

커피볶는 집이 있어서 들어가며

아니 이렇게 작은 집에 과연 커피 볶는 기계가 있을까, 했는데...

했는데 역시나였다. 

유리병에 조금씩 담긴 콩들.,

오래되었으면 어떡하지?

주인의 아들임이 분명한 커다란 몸을 지닌 청년이 콩을 가는데

너무  오래 가는 것 같았다. 저렇게 오래 갈면 쓴 맛이 나올텐데....   

그래도 커피 맛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반쯤 마신 뒤  얼음좀 넣어주세요...만들어진 아이스 커피를 들고

성공회 성당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바람이 가끔씩 스치고 지나갔다. 

습기를 머금은 여름바람이라 해도 어느 한 부분 서늘하기도 해 

산 속의 가을바람처럼 커다랗게는 아니더라도 

사람의 마음을 흔들리게  한다.

   

올해 상반기는 정말 질풍노도 같은 시간이었다.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딸아이의 결혼...과 

인생의 방점을 찍는 은퇴...

그리고 내 큰오빠, 

생과 사의 이별이 빚어낸 가슴속에 파인 커다란 슬픔의 웅덩이에

내 큰오빠는 여전히 살아 계신다.

얼마나 세월이 흘러야 그 웅덩이는 메꿔질까,     


유별나게 성당 앞 길가....쪽 밤나무는 밤송이가 토실토실 여물었다. 

그러고 보니 작년 언젠가도 다른 나무 밤알보다 굵다며 호들갑을 떤 기억이 난다.

무덤 가까이 있는 밭작물들은 잘 자라난다고 하던가...

커다란 슬픔들은 존재하는 것들을 오히려 풍성하게 해주는 것인가. 

슬픔의 덩어리....를 등에 지고 살아간다는 부판  

제주도 밭들...사이에 있던  수많은 무덤들....을 떠올리며

밤나무 주변에 눈길을 주었다. 


그렇게 여러 번 성당을 다녔어도 문이 열려 있는 것은 처음이었다.

아주 오래된 격자무늬 유리창 너머로 안을 들여다보기만 했는데

활짝 열린 문으로 쭈볏거리며  슬리퍼가 있었지만 그냥 맨발로 들어섰다. 

나무의 결이 그대 느껴지는 바닥, 

수많은 사람이 밟았을텐데도 여전히 의연한 나무 결의 느낌

속살의 하나이기도 한 맨발에 부딪히는 느낌이라니...

뭔가 적나라한....

아무도 모르는 아니 아무도 모르게  

맨발과 나무바닥은 시간을 전희삼아...지금...

이런 발칙한 생각은 마르틴 발져의 

“불안의 꽃 앙스트 블뤼테‘를 두 번째 읽고 난후라 ....아마도 그래서 였을 것이다.   


        

정말 오래된 유리로 된 스탠드....오래된 예수님...오래된 기도.... 오래된 창문....

그 모든 오래된 것들이...주는 감동을 어떻게 형용하랴,

그리고 그 의자들....나무조각 몇 개로 만들어진 오래된 의자들은

감동 그 자체였다. 

단단하고 여무지면서도 참으로 고요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앉아서

주를 대면하며...자신의 고뇌를 아뢰었을 

그래서 주님과 비슷하게 인간의 고뇌를 알고 있을법한 모습이었다.       

지인 :아 그 때 대문간 지붕위에.... 그 무슨....

 나: 와송이 있었지요.

지인 : 맞아요. 처음 본 식물이었는데.....

나 : 오래된 지붕에서 자라나서 기와송이라고도 하고

    높은 바위위에 자라나서 바위솔이라고 하지요.

했는데 너무 오랜 세월을 버티기가 힘에 겨웠는지 기와가 개비되어 있었다.

이제 어디서 무슨 기와를 구우랴....

사람의 정성이 들어간 기와 대신 가볍고 유능한 현대식 기와. 

그 오래된 기와들은 지붕 위를 떠나  잔디밭 위에 

무덤처럼 도톰하게 쌓여있었다. 

아, 그렇지..... 그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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