램브란트 ㅡ 돌아온 탕자
램브란트 ㅡ 돌아온 탕자
성경 어디에도 없지만 그가 아버지께 돌아갈 마음을 품은 것은 이른 봄이었을 거예요.
그는 들에서 돼지를 치고 있었으니까요.
북풍한설이 물러가고 따스한 햇살이 내리 쬐는 날이었죠.
아, 어느새 솟아나있는 저 어린 풀들이라니요.
어디선가 불어오는 부드러운 훈풍은 나무에서 돋아나려하는 새순을 만지듯
그를 어루만졌을 거예요.
아련한 아지랑이는 그의 외로움을 지나 기억의 창을 열었을 거예요.
차마 사람이라는 체면 때문에 꼭꼭 닫아걸고 열지 못했던 창문 말이죠.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그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었을 거예요.
가야할 길을 아는 지혜로움도 거기 자리하고 있었겠지요.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램브란트는 평생 성경을 깊이 묵상하면서 그림을 그린 사람입니다.
돌아온 탕자도 여러 버전으로 많이 그렸다고 해요.
젊은 시절에는 탕자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나이 들어갈수록 그는 탕자를 받아들이는 아버지에게 포커스를 향했다고 합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포옹을 하고 있네요.
그런 그들을 바라보는 세 사람의 응시 좀 보세요.
저 맨 뒤의 흐릿한 가운데 있는 사람은 호기심 가득한 눈빛이네요.
아마도 직속상관인 큰아들에게 구박을 당하던 시종일지도 모르겠어요.
돌아온 둘째 아들을 환대하는 아버지를 보며 이야 재미있군, 과연 다음 장면은 뭘까...
구경꾼이네요.
예수님 주변에 많았던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많은 구경꾼이요.
모자를 쓴 사람은 아주 진지하게 이 장면을 바라보고 있네요.
아마도 그 집의 모든 일을 관리하는 집사장이 아닐까.
그는 아버지와 아들을 바라보고 있지만
실제는 그 장면이 가져올 자신에 대한 영향을 생각하고 있는 듯해요.
수많은 권력가나 제사장들이
예수님을 보는 대신 자신에게 다가올 파급효과만을 생각했듯이 말이죠.
서있는 사람은 큰아들입니다.
아니 도대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작금의 상황은 뭐지?
아버지! 한 번도 나를 그렇게 안아주신 적 없으셨잖아요.
나는 날마다 아버지 곁에서 아버지 말씀에 순종하고 살았는데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질투와 욕망에 젖어있는 눈빛을 좀 보세요.
우리가 거울에서 자주 보는 우리의 눈 아닌가요.
거지가 되어서 돌아온 아들은
차마 고개를 들지도 아버지를 바라보지도 못한 채 아버지의 품에서 울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손길이 이렇게 따뜻하다니,
아버지가 나를 이 죄 많은 나를 이렇게 아직도 사랑하고 계시다니...
슬픔과 회한에 가득차서 차마 얼굴을 들 수 없었겠지요.
아버지는 어떤가요. 환한 빛 가운데서 아들을 품고 있는 아버지요.
아 눈을 감고 있네요.
너의 두려움도 너의 더러움도 너의 죄악도 너의 불순종도..다 보지 않겠다.
오직 돌아온 너만 내 아들인 너만 보겠다는 선언을 저렇게 감은 눈으로 하는 거겠지요.
봄이 지척입니다.
약동하는 봄처럼 우리의 영혼도 새롭게 소생하길.....
생명이나 존재로부터 멀리 떠나 있는 탕자들도 용기를 가지고 아버지에게로 돌아오길....
그림을 보며 글을 쓰며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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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서 욕심을 버린 지 꽤 됐다.
도서관에서 저 많은 책들을 언제 다 읽어 내냐,.......
라는 언감생심 자리에서 내려온 후일 것이다.
한참 나이가 든 후에도 꿈인지 바램인지 혹은 용감함인지....
버리지 못하는 것들이 있기 마련인데
그중에서 책이라는 종류가 특히 그랬다.
어느 날 오후였다. 해저물녘이었으리.
나는 항시 가던 길을 걸어 도서관으로 들어섰다,.
특유의 책 냄새가 훅 끼쳐오고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약간 왼쪽으로 휘어진 계단이었다. 그 계단 어디쯤에서 문득 생각이 났다.
책은 한도 없이 끝도 없이
마치 생명처럼 태어나고 젊음처럼 눈부실터인데
어찌 감히....그런 괴이한 꿈을 꾸는가....
글에서 어지간히도 중요한 게 팩트이자 진실이지만 그 둘은 꼭 등가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꼭 계단이었을까? 꼭 오후였을까? 정말 욕심을 버렸을까?
아니면 어떠리....
그래서 나는 책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았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오에 겐자부로의 글을 읽으며 아 이런 분께서도 책 정리를 하는데
나 같은 사람이 모아 놓은 모질한 책들이야...하면서 책을 꽤 많이 버리기도 했다.
오에 선생의 흉내를 낸 일이지만 나는 책을 버리는 내가 기특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작은 생각 혹은 몸짓이 의외로 여러 군데에
영향을 미치더라는 것,
아 저는요, 미니멀리스트가 제 꿈이에요.
꼭 필요한 가구 그리고 그릇만 가지고 살거예요.
아주 아주 단출한 살림살이.....
지금은 못하지만 앞으로 해야할 일....하고 싶은 일로 분류 되는 것도
책 욕심을 버린 후일 것이다.
그렇다고 아주 이쁜 그릇 앞에서 멈추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멈춰서 이리보고 저리보고 아이구 참 색깔 곱기도 하지...까지만 한다는 것,
소유에 대한 욕심은 없다.
비싸서 살 형편도 안 되고 그런 그릇 가지고 그릇에 어울리는 요리를 대접할 일도 아니고
날마다 쓰기에는 혹시 깨질까봐 그리고
이젠 팔이 늙어서 무거운 것 들면 안 돼....
가끔 패키지 여행을 우습게 여기는 사람이 많은데
나는 패키지여행 예찬론자다.
자유여행? 그 버벅거림 어딘가 한 곳애 가려면 길다란 줄을 서야하고
한 끼 때우려면 그 동선과 시간들을 계산해야 하며
치러 내야할 무수한 선택들은 얼마나 머리 아픈가,
설령 그렇다 해서 얼마나 더 자유를 누릴 것인가. 더 많이 느낄 것인가 더 많이 볼 것인가
거기서 거기다.(근데 이게 참 엄청나기도 하다 ㅎ) 라는 결론.
지난번 글에서 썼듯이 이번 러시아 여행에서 가장 큰 기대를 한곳은
에미르타지 박물관이었다.
러시아의 레닌그라드에 있는...이 아니라
쌩페트르브르크에 있는 박물관이다.
소련이 붕괴되고 나서 레닌그라드는 예전의 생페트르부르크로 바뀌어졌다.
생트-성 표트르= 페트르= 베드로 부르크-땅의 복합적인 단어.
베드로의 땅이라는 의미이지만
생페트르부르크를 세운 사람 표트르대제의 땅이라는 의미도 되겠다.
에미르타주 라는 말은 은둔처...라는 뜻이란다.
분명히 이층인데 일층처럼 정원이 있는 궁전...
에미리타주 박물관을 만든 예카테리나 대제는 이곳에서 파티를 즐겼다고 한다.
루브르와 대영박물관에 이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박물관
그러나 프랑스나 영국처럼
도둑질 하지 않고 컬렉션한 작품이라는 자부심이 강한 박물관.
방이 1056개에 지붕 위 조각만 해도 170여개
작품 하나에 일분씩 할애한다 해도 팔년이 걸린다 하니
무슨 감상을 할 수 있을까....
더군다나 르네상스 작품이 그득한 신관은
시간이 없어서 아예 가보지도 못했다.
구관에 있는 작품ㅡ 그러니 감상이 아니라 구경을 할 것이고
램브란트의 ‘돌아온 탕자’와
마티아스 스토머의 ‘야곱과에서’ 두 작품만 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설마 눈을 밝히 뜨고 다니면 보이지 않을까 했는데 오산이었다.
에미르타주의 가장 유명한 작품인 돌아온 탕자는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서라도 알현 할 수 있었는데
야곱과 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설마 없는 것일까,
러시아가 너무나 좋아 러시아를 알리는 직장에 취직하고 싶다는
문학을 전공하는 가이드는 야곱과에서 작품을 얼른 검색해 보더니
그 방을 들어가지 않고 지나쳐 왔다고 했다.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사람이 많았다.
나 혼자도 아니었고 공간지각력이 결여된 사람이 혼자서 그방을 찾아갈 용기도 없었고
다시 일행과 합류하기에도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갈듯 했다.
인생이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지.
중요한것도 중요하지 않게 바로 곁에 있어도 알지 못한 채
돌아온 탕자는 정말 눈부신 작품이었다.
그렇게 오래된 작품이 어쩌면 그렇게 눈부실수 있을까,
그리고 생각보다 의외로 컸다.
눈을 감은....늙은 노인의 표정과는 달리 손의 크기가 선명히 다른
아들의 어깨를 품은 두 손은
자식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기다리겠다는 희망과 함께
결연한 사랑을 보여주는 듯 했다.
헤진 발과 벗겨진 낡은 신발 짝은
아버지의 품을 떠난 자의 삶을
어떤 설교보다 더 웅혼한 목소리로 고스란히 보여주었고
내가 읽어냈던 큰아들의 표정은 조금 더 다르게 쓰고 싶을 만치 강렬했다.
전율까지는 아니더라도 경이로웠다.
그 작품앞에 내가 서있다는것 자체가,
혼자 속삭였다.
당신을 보아서 이미 만족합니다.
이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