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들은 겨울 여행을 하기 위해 ‘경화’ 과정을 거친답니다.
세포벽의 투과성이 증가해서 물은 흘러나오고 당과 단백질 산은 농축된다고 해요.
농축된 화학물질은 효과적인 부동액 역할을 하고 세포들 사이의 공간은 순수한 물로 채워지는데
이 물이 너무 순수해서 영하 40도가 되어도 얼지 않는다고 합니다.
아랫녘에는 벌써 매화가 겨울여행을 마치고 피어 오른 곳도 있던데
梅蘭菊竹 사군자의 첫 자리를 차지하는 ‘매화’, ‘경화’를 생각하니 더욱 신비롭습니다.
그렇게나 수많은 준비를 해서 겨울을 지내고 우리 앞에 현현하는 아름다운 존재.
매화나무는 꽃의 우두머리를 의미하는 화괴(花魁)
추운 날씨에 피어 동매(冬梅),
일찍 핀다 하여 조매(早梅),
눈 속에 핀다고 설중매(雪中梅),
꽃의 색에 따라 백매·홍매 등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눈 속에 핀 매화를 찾아가듯 매화그림을 대합니다.
조희룡의 매화도입니다.
조희룡은 추사와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추사가 문인화의 정점에서 문자향 서권기를 절대가치로 삼고 있을 때
수예론을 이야기 했어요.
문의 향기와 책의 기운이 있어야만 격을 나타낼 수 있다는 절대가치 앞에서
그는 당당하게 손의 기량이 있어야 한다는 선언을 한 거지요.
조선시대 선비들은 처음 그림을 아주 가벼운 여흥으로 삼았습니다.
문인화라는 이름도 실제 화가들의 것과 구분하기 위한 이름이었어요.
조선 전기의 강희안은 수많은 작품을 그렸지만 화가로 이름이 남을까봐
자신의 그림을 소각하라고 했을 정도였지요.
그러나 문인화는 점점 발전되었고 추사에 이르러 그 화풍은 절정에 이릅니다.
추사가 격과 품을 나타내는 그림을 그렸다면
조희룡은 그림은 아름다워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 때까지 문인화 속의 매화는 고목에 꽃 몇 송이 피어난 작품으로 선비의 격일지 품을 드러내고 있었는데
조희룡은 수많은 꽃송이가 가득가득 피어난 아름다운 매화나무를 그린 거죠.
조희룡은 앞사람들이 그린 기법을 따라 하지 않았어요.
그만의 방법으로 아름다운 매화나무를 새롭게 탄생시켰습니다.
그는 임자도로 귀양을 가게 됩니다.
그곳에서 그는 특별한 경험인 화아일체를 느끼기도 하고
아마도 용오름이었을 용의 승천이야기를 세세하게 들게 됩니다.
그리하여 그의 매화나무는 점점 하늘로 승천하는 용처럼 더욱 환상적으로 피어나게 되었어요.
이 작품에서도 병풍 전면에 줄기는 용이 솟구치듯 구불거리며 올라가고
좌우로 긴가지를 뻗어내며 흰 꽃과 붉은 꽃이 피어납니다.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조희룡이 쓴 글에서 나옵니다.
아 그는 그림뿐 아니라 시문에도 능했고 저술된 책도 여러 권입니다.
매화 그림을 마치고 난 어느 날 꿈을 꾸었답니다.
꿈속에 어느 도사가 나타나셔 하시는 말씀
“나부산에 오백 년을 사는 동안 매화만 그루를 심었다오.
특별히 석 난간 옆의 세 번째 매화가 가장 기굴 해서 사랑하던 차
어느 심히 비바람 부는 밤 사라져 버려 애통했는데
그대의 붓 끝에 끌려 왔을 줄 몰랐도다.
이제 이 도사, 저 어여쁜 매화나무 아래 사흘만 자고 갈 터이니.....”
자신이 그림 매화나무를 이렇게 서정적으로 자찬자화 할 수 있다니 대단한 사람입니다.
홍백매도, 여덟 폭의 병풍,
전통적인 격식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파격적입니다.
이전에는 없던 다양한 구도와 색감, 대범한 필법, 자유로운 붓놀림,
거리낌 없는 표현력을 보이면서 독자적인 회화세계를 만들어나갔습니다.
당시 중인 서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어서
특히 전기, 김수철, 이한철, 오경석, 유숙 등은 주제뿐 아니라
작품양식에 있어서도 조희룡과 밀접한 관련을 보인다고 합니다.
매화의 향기를 암향暗香이라고 합니다. 어
두울 暗은 매화의 향기가 강하거나 되바라지지 않고
그저 깊고 은일해서 비오는 어느 시간이랄지
사람 없는 한적한 곳에서
어느 순간 살짝 다가오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교계신문 연재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