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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Jun 01. 2016

구이린 客愁散錄(1)

      돌아오며 떠나며

이른 새벽, 네 시 좀 넘어 비행기에서 내린다. 

인천 공항은 새벽도 낮도 없는 

그리하여 잠들 곳 없는 객수客愁天地다.  

사람들은 마치 낮인 양 환하게 깨어나서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는데 

아주 잠깐, 나를 위시해서 모두 미이라....... 휘적거리며 걸어 다니는.... 

무서운 쓸쓸함을 생각했다.     

웬걸. 착각이지. 사람들은 그저 즐겁기만 한 것을. 

아주 젊은 아이가 사람 찾는 피켓을 들고 서있었다. 가엾어라, 여행사아이구나. 

이 시간에 깨려면 얼마나 힘들었니.....우리 집 아이들 잠을 생각했는데.....

사실 젊은 날 잠을 줄여가며 열심히 일하는 것 자신을 위해서 아주 멋진 일 아닌가, 

사람을 가엾어 하는 것, 이것, 아주 오만이다. 

가령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쪽으로 패키지여행을 가면 필수 조건이 마사지 샵이다. 

내 아이들보다 더 어린 아이들 힘써 마사지 하는 것, 안쓰럽다. 

근데 왜? 그들은 그들의 방법대로 아주 열심히 살고 있는데. 죄짓는 것도 아니고  남에게 해를 끼치는 일도 아니고 남의 몸을 만진다 하여 혹은 발을 씻겨준다 하여 

그들의 인격에 해가 되나. 

그들은 그렇게 번 돈으로 부모님을 봉양하기도 하고 동생들 학비도 댈 수 있을 텐데. 

미래를 위해서 저축할 수도 있을 거고. 

오히려 직업의 귀천을 나누는 내 의식이 더 문제 아닌가.

단순히 자본주의의 논리라서가 아니라 주어진 삶속에서의 최선은 무엇이든 아름답다는 이야기.

보여지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의 의미가 오히려 전부일수도 있다는,

     

짐 찾는 곳에 서서 기다리다가 고개를 약간 드니 백록담 사진이 아주 크게 걸려 있었다. 

연노랑 두메 양귀비가 피어있는 사진..

사진 한 장이 마음을 환하게 해주는 것은 그만큼 마음이 가볍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가벼워서

부유하듯 여기저기 떠나고 싶은 걸까? 

집 떠남은 말할 것도 없고 벗과의 떠남 삶에서의 떠남도,

시간에서도 떠나 도달하는 시간과 곳은, 등등 

정리하기를.... 그리고 줄까지 쳐가며 썼던 문장 하나. 

떠남은 혹 우리 삶의 핵심일수도 있어!    

 



구이린의  이 월 날씨는 정말 이상했다. 

식물의 작황 증세로 보아선 아마 우리나라 추석 즈음, 

아주 만추도 아니고 그렇다고 초추도 아닌 유채 꽃은 노오랗게 피어나 있었고 

배추는 새파랗게 자라나고 있었다. 

그러나 추위는 몸속에 숨어있는 가슴까지 사시나무처럼 떨리게 했다. 

추위가 가슴속을 온통 백양나무 이파리로 만들어내는 것, 

사시나무는 이파리가 가볍기도 하고 잎자루가 가지에서 떨어져 있기도 해서 잘 흔들리지만

탄력이 아주 좋아서 조그마한 진동에도 섬세하게 반응한다.  

꼭 바람이 아니더라도 과다한 수액을 방출하기 위해서

스스로 흔들거린다고 하니 스스로 내는 소리라고도 볼 수 있고..... 

하여간 계림에서 나는 한그루 사시나무가 되었다. 

내내 안개처럼 보이는 옅은 구름은 다정한 벗처럼 곁에 머물러서... 

돌아오는 날에서야 

그동안 내내 단 한번도 햇살을 마주한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추위는 해님이 없어서 그대도록 을씨년스러웠고

셀 수도 없는 계림의 산봉우리들 중 가장 높다는 요산- 

그래도 일천 미터가 안되는-에 리프트 카를 타고 올랐을 때 

유리구슬 같은 결빙이 나무에 피어나 있었다.  

눈도 아닌 것이 서리도 아닌 것이.......추위를 잊게 할 만큼 눈을 사로잡았다. 

그래서 혼자 이름을 지어주었다. 

는개고대, 

는개결빙,....    


나그네가 되었다는 것을 실감나게 하는 것이 내겐 언제나 ‘나무’라는 것을

그대에게 말했는지 모르겠다. 

깊은 밤 계림에 내려 공항건물 밖에서 만난 나무들은

내가 사는 곳과는 다른 아열대지대를 단박 떠올리게 했다. 

꽃도 있겠네. 설레는 마음도 함께 불러일으키고.

무엇보다 구이린의 가로수화 계수나무.

계림은 계수나무라는 나무가 만들어준 이름이다.  

나는 사실 계림의 계수나무가 꼭 보고 싶었다. 

계수나무 하얀나무 토끼 한 마리.......의 계수나무

‘공자가 사랑한 나무 장자가 사랑한 나무’라는 책을 쓴 

나무박사 강판권의 책에도 계림의 계수나무가 나온다.

그는 계림을 가보지 못했기에 

계림의 시화인 계수나무에 대해 이리저리 추적하고 추론한다.

그는 새로운 나무와 만나면 그와 소통하기 위해서 

먼저 인사 하고 그 다음 자주 찾아 뵙고...주도 면밀하게 살핀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결국 계수나무를 만났는데

계수나무의 첫인상은 슬프고 수줍은 기색을 띈 시골처녀라고 적고 있다. 

사철 늘푸른 나무 계수나무는 정말 구이린 시 곳곳에 심어져 있었다.  

금계화수 은계화수 담계화수 사계절화수 등

네 종류가 있어 일 년 내내 꽃이 피어난다고....가이드가 말했다. 

그리고 꽃이 피어나면 온 도시가 그 향기로 가득 차 오른다고.....

자세히 보니 보면 볼수록  계수나무가 우리나라 아래 지방에 사는 

물푸레 나뭇과의 금목서 은목서와 비슷해 보였다.

금목서의 그 향기는 발칸의 장미에 비할 바가 아닌데

아니 그렇다면 구이린에 꽃이 필 때면, 

온 도시에 금목서의 향기가 가득 찬다는 것????..

그 때 과연 이 도시는 어떻게 변하게 될까,

아~~ 그 때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하는 걸까, 

그렇게 아득한 가운데서도 사계절화라는 단어가 선명하다

그렇다면 분명 어디선가 계수나무에 피어난 꽃이 있을 텐데, 

그리고 나는 만났다. 딱 두 송이 아주 조그맣게 피어나 있는 계수나무 꽃을, 

먹음은 상태라 혹은 제철이 아니라 아무런 향기도 없었지만,

사진 찍기 나쁜 곳에 피어나 앵글에 안기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桂林山水甲天下, 

계림의 산수는 천하의 제일이다.

강은 푸른 비단 띠를 두른 듯

산은 백옥으로 만든 바다 같구나

계림의 풍경을 보고 당나라 시인 한류가 적은 시다.  

桂林이라는 지명은 

계수나무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 있는 도시라는 뜻이고,

내가 바라본 계림 시내 여기저기를 흐르는 이강은 이른 새벽이 아니어선지 푸른빛은 없었지만

안개에 가득 젖어있어 끝을 보여주지 않는 우아함이 흐르는 강이었다.

안개는 언제 어디서나 자욱했다. 

아침에도 안개네...하다가

개인가 하면 다시 또 가득 덮혀 오고

수묵화처럼 펼쳐지는 셀 수도 없는 산봉우리들은 

안개에 젖어 오히려 더 신비로웠다.     


 

산을 보려면 황산엘 가고

물을 보려면 구채구를 가고

산과 물을 보려면 계림을 가라는 중국말이 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중국의 산과 물을 다본 셈이네.  

가게 앞에 거뭇하게 생긴 기이한 대나무가 길게 잘라져 있었다. 

사탕수수란다. 오메, 바로 쥬스로 내려준다는..... 

달고 시원한, 거기다 약간 비릿한, 아주 어렸을 때 먹은 찰 옥수수 대의 냄새가 살짝 밴, 

달아서 촌스럽고 자연 그대로라 소박한 음료를 보이는 곳 마다 기쁘고 즐겁게 마셨다.

계림여행을 즐겁게 만들어준 공신이기도 했다.

사탕수수 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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