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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Oct 24. 2017

사스래나무와 거제수

곰배령




      

사스래나무는 수목한계선에 사는 나무다.. 

그러니 무주 덕유산 꼭대기 흰 눈 가득 쌓인 곳에서 

눈을 이불 삼아 그렇게 의연히 살아가고 있었던 게지. 

햇살을 받은 사스래나무는 물결 위의 햇살처럼 윤슬로  반짝였으니 

흰 눈보다 더 고급스럽다고나 할까, 더 우아하다고나 할까, 

사스래나무와 전나무는  수목한계선에 사는 가까운 동지라고 한다.  

전나무는 침엽수림이라 그렇다 쳐도 

낙엽활엽수인 사스래나무가 수목한계선 최전방에서 살다니.

뿐 아니라 어린 전나무는 사스래나무 품속에서 자라난다고 한다.  

사스래나무를 의지해서 추위를 이겨 나간다는 것, 

그러다가 전나무는 결국 사스래나무를 몰아내고 만다. 

전나무의 그 굳건한 몸새를 

구불거리고 많이 자라지도 못하는 사스래나무가 어찌 이길 수 있을까, 

잔혹하다... 싶지만

사실 우리 모두 다 지니고 있는 성향들이기도 하다. 

우리의 부모들을 의지해서 살아난 후

부모들은 늙음과 고독의 세상에서 살다가 떠나고

다시 우리의 자식들을 돌보다가 우리 역시 우리 부모님처럼 그렇게 된다는 것,

물론 사람마다 약간의 편차는 있겠지만 

큰 골격은 비슷할 것이다.        

가만히 그 고요한 지대에 서있는 사스래나무를 생각해 본다. 

고요는 고독의 절정일 것이다. 

존재하는 방법이 달라서 

식물이 고요를 모르거나 고독을 느끼지 못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그 방법을 우리가 배우거나 익히지 못할 뿐,   

  

점봉산 곰배령. 약 10여 KM를 천천히 걸었다. 

십사오 년 전 즈음에 한번 걸었었는데.....

산천은 의구하나 인걸은 간데없다는 난데없는 구절이 떠오르면서

여전히 나무는 그때 그 자리에 서있을 거라는 생각에 가슴이 좀 뜨거워졌다. 

변하지 않고 변덕도 부리지 않고 변심도 하지 않은 채

그저 그렇게 한결같이...

나무의 한결같음.  

산의 초입은 애잔한 단풍으로 그득했다.

농염하거나 짙은 블루가 아니라

사랑스러운 단풍

평일인데도 단풍철이라선지 제법 사람들이 많았는데

잠시 사람 모습 보이지 않으면 

숲은 얼마나 고요한지.... 

그러니까 숲과 나무는 그 태생이 고요함이다. 

경건함이 그득한 고요.     



곰배령을 같이 걷는 사람이

저거 자작나무네... 하길래  아니 사스래나무일걸요...

하고 내려오다가 팻말을 보게 되었다. 

이름하여 거제수나무....

얼핏 자작나무처럼 보이나 살결이 조금 붉다.

그제야 보이기 시작하는데 산길에 거제수나무가 제법 많다.  

몇 년 전 구채구의 자작나무들이 생각났다. 

어느 낯선 마을이었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 

점심을 먹고 식당을 나서니 바로 멀지 않은 곳에 숲이 있었다.. 

약간 가팔라 보였으니 산자락이었을 것이다.  

바람이 살짝 불어오니 푸르른 하늘을 배경으로  

우수수 져내리던 그 연 노랑빛 잎새들...

껍질이 말갛게 벗겨지는 자작나무를 봤다. 

그런데 그 껍질이 하얀 것도 있었고 약간 붉은 기가 도는 것도 있었다. 

나무에 붙어 있는 팻말 紅紫를 읽었다.

아 붉은 자작나무,,,, 인가했는데 

생각을 해보니 자작나무의 자작은 우리말이다

자작나무 이파리가 자작자작 소리를 내며 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그러니 붉은 자작이란 내 연상은 틀린 것이다. 

아마도 틀림없이 거제수가  홍자.... 자작나무 과일 것이다. 

기억이란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하는 존재인가

그러니까 나는 곰배령의 거제수나무 앞에서 

구채구의 가을을,

그 푸르른 하늘을, 

바람 살짝 불어 우수수 눈처럼 나뭇잎 휘날리는

낯선 동네에서 다가오던 아름답고 서러웠던 풍경을

그리고 홍자라고 붙어있던.... 거제수나무를 

다시 온몸으로 느꼈다.    

곰배령의 거제수.

너무 잘 생겨서 가까이 다가서

껍질도 살짝 벗겨보고

껍질 벗겨진 매끈한 살결 차가운 듯 단단한 그러나 분명 온기를 지닌 

살결도 살짝  만져보았다.      

숲을 가서 좋은 것이 바로 그것이다. 

고요를 맛보는 것, 

고요를 조금이라도 내 것으로 하는 것,  

그리고 그  고요를 조금이라도 배우는 것,

숲의 고요는 사람에게 들어와

마치 천칭의 축처럼  자리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번다한 일상이 사정없이 휘몰아칠 때도

경건이 깃든 고요의 힘으로 

세상일을 객관화시켜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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