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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Jun 07. 2016

마라도,유월

   견고한 태고의 힘을 지니고 있었네




마라도. 
왠지 마라도에는 ‘홀로’와 ‘고독’이 그득할 것 같질 않는가.
무리지어 걷는 것 보다는 

해안가 절벽에 혼자 가만히 앉아있는 사람이 어울릴 것 같은 섬.  
그 사람 앞으로 푸르른 바닷물 바람에 흔들리고 
오히려 파도소리 있어 더욱 적막할 것 같은 섬.  
들이치는 비와 바람.  햇살도 바다길 지쳐 잠간 쉬어갈 것 같은 섬.     

어린왕자가 사는 행성은 하도 작아서 해와 달이 함께 보이는데 
마라도 역시 일출과 일몰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섬이라고 했다. 

마라도를 가기위해 모슬포 항구에 다다른다. 

모슬포의 ‘모슬’은 모래의 제주 방언 ‘모살’의 와음이라는데, 
내 고향 전라도에서도 모래를 모새라고 불렀다. 

모래보다 모살은, 혹은 모새는 하얗고 투명한 느낌이다. 

산딸나무가 무리지어 피어나 있는 길을 달려 간
구름 가득 낀 모슬포 항 어디에도 모살은 보이지 않는다.  
바닷물 깊은 속으로 가라앉아 버렸는지 

그저 바닷물만  깊은 산 계곡처럼 맑고 푸르르다. 
금방이라도 비를 흩뿌릴 것 같은, 

그래서 바다 가까이 내려앉은 구름들은 

오히려 바닷물에
어두운 구름빛을 드리워 

눈시린 청람빛이다.


배의 후미에 서서 온몸으로 바람을 맞아들인다. 

바다를, 

그 색을,

그 품을 가슴속에 채운다. 
바다가 지닌 두려움과 공포에게도 나를 내어준다. 
세찬 바람이 휙 불어오더니 나를 덮석 안는다. 

그리고 바다에 던져 버린다.
깊고 넓은 바다에서 작은 나뭇잎처럼 떠가는 나. 

그냥 바다에 몸을 맡기라고 속삭인다.
네가 네 몸을 어찌하려 하지 말고 그냥 바다에 맡겨, 

그리고 가볍게 떠가는 거야. 
흐르는 거야.  

세상이 삶이 바다가 아니라고 그 누가 단언할 수 있으리.
가파도를 지나 마라도에 다다르는 50여분 

그렇게 나는 세상을 떠나 또 다른 삶과 함께한다. 

자그마하게 보이던 섬이 점차 땅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바다를 향해 커다란 입을 벌리고 있는 듯 한 동굴들이 여럿 보인다.
이름하여 海蝕洞窟, 

설마 바다가 절리 층을 혹은 약한 바위를 갉아 먹었을까, 


그보다는 바다도 쉴만한 집을 가지고 싶었을 게다. 
저 어두운 동굴은 

물들이 바람의 힘을 빌어 애써 만들어 낸 

물의 집일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리도 망망한  바닷길을 하염없이 없이 오고갈 때 어이 바다라 하여 
잠시라도 아늑하게 다리 뻗고 쉬고 싶지 않겠는가.
그렇다. 

바다는 거칠게 달려오다 

저 어둠속으로 들어가 피곤한 다리를 슬쩍 걸칠 것이다. 

설령 뒤이어 다가온 물들에게 금방 내어줄지라도 

어둡고 아늑한 동굴 안에서 감미로운 쉼을 가질것이다.
짧아서 더욱 그리울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마라도는 禁섬이었을지도 모른다.
오랜 세월 수많은 바닷물이 

힘을 모아 만들어놓은 동굴의 안식을 먼저 갖기 위해 
마라도에 다가올수록 파도는 더욱 세차지는 것이다.  

안식을 위한 고투라고나 할까. 

생각을 하노라니 

점점 다가오는 그 자그마한 섬 마라도가 더욱 신비롭다. 

   
살레덕 포구에 배가 멎는다.  
층층이 겹쳐있는 암벽의 모양이 

마치 찬장처럼 보인다 하여 이름 지워진 살레덕.

살강의 제주도 말이 살래라는 거지.
오호, 그렇다면 저 커다란 암벽을 보고 겨우 통나무 두어 개 설핏 엮어 
부엌 그릇 얹어내는 살강을 연상했다는 것이 아닌가.  
오래전 사람들의 사유는 

그 자체로 얼마나 소박하면서도 넓고 깊은가.      

여행에 동행이 있다는 것은 다행이기도 하지만  
마라도에 올라서서 넓은 초장을 바라보는 순간만큼은  

정말 정말 ‘혼자가 되고 싶었다’. 
혼자가 되어서 천천히 여기저기를 거닐어보고 싶었다. 

저기 저 까만 돌 위에는 혼자 앉아 있어 보고 싶고 

저기 저 빗물 받아놓은 허드렛물가-
말들이 목을 축이고 바닷가에서 놀던 아이들이 몸을 씻던 빗물샘 -에서는 
그 물에 손을 담그며 오래 된 빗물이 내는 웅숭한 이야기 소리도 들어보고 싶었다.  
자그마한 키로 옹기종기 모여앉아서 하얗게 꽃을 피워내는 
갯비름나물 옆에서 그들이 들어낸 파도소리도 들어보고 싶었고 
그보다 똘망똘망한 갯까치수염에게는 물어보고 싶었다. 
이렇게 사는 것 좋으니? 

바다가 좋으니? 

바람은 어떠니? 




비스듬하게 땅에 누운 채  

노오란 풀꽃을 가득 매달고 있는 자그마한 무덤에게도  
물어보고 보고 싶었다. 

오래 되셨수? 

그곳은 어떤가요? 

살만하시우? 

이곳이 그리운가요?

슬프디 슬픈 전설이 어려있는  

애기업개당  처녀당, 할망당이 있었다.
마라도에서 모슬포가 가장 잘 보이는 곳,  
해안가 한쪽 귀퉁이에 그저 다른곳 보다 돌이 둥글게  쌓여있고 가운데가 조금 비어있으며
누구든 들어오라는 듯 쌓인 돌 한쪽 귀퉁이는 허물어져 있다.
(허물어진 곳은 문이다. 

내게도 누구나 들어설 수 있는 그런 허물어진 곳 있을까,)

**
나도 데려가 줍서! 제발 데려가 줍서!

애기 못 낳는 여인이 수풀 속에서 여자아이를 발견했네.
딸처럼 고이 길렀다네. 그러나 진짜 그 집에 애기가 생겼다네.
먼저 들어온 아이는 애기업개가 되었다네.
금섬(마라도)에 들어올 수 있는 날은 망종으로부터 십오일이었다네.
모두들 풍성한 농사를 바다에서 이끌어냈다네. 
집으로 돌아가려고만 하면 파도가 세찼다네.
꿈이 찾아왔다네. 늙은 선주에게도 애기업개를 키운 여인에게도 같은 꿈이 찾아 왔다네.  
누구에게는 꿈이지만 애기업개에게는 사형선고였다네. 
아이구 얘야. 아기 걸렁이(기저귀)를 안가져왔구나 저기 저 하얀 걸렁이를 걷어오렴.
애기업개가 뒤돌아선 사이 배는 금섬을 떠났다네.
걸렁이를 쥐고 돌아온 애기업개 떠나는 배를 향해 소리쳤네.

나도 데려가 줍서! 제발 데려가 줍서!
**

마라도.
이제는 금섬이 아닌 

마라도는 우리나라 최남단이란 별호에 의해 

무수한 사람들의 발길을 이끌어들인다. 

그러나 아무리 숱한 뭍사람들의 발길에 마라도를 뒤덮는다 할지라도 
하룻밤 새 불어온 바다를 달려온 바람은 

그 모든 것들을 씻어내고도 남음이 있는지, 
처음처럼, 

태고처럼,  

여전히, 너무나, 자연스러움 섬.

 
마치 태어나길  절대절명 순수한 성품을 타고난 사람이 

그 평생 
아무리 험한 삶을 살아간다 할지라도 변함없이 순전한 것처럼 

마라도가 그랬다. 
몇 안 되는 주민들의 호객행위가 이어지고 

짜장면 집도 즐비하며 

골프전동차가 많았어도
마라도는 태생이 자연이었다. 

구릉하나 없는  조그맣고 평평한 섬 
우리나라 제일 남쪽 섬 마라도.
그는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태고의 힘을 지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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