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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Feb 05. 2018

나도? me-too

 


저두 혹시나 해서 지나간 시절을 면밀히 살펴 보았으나

성폭행에 이를만한 것은 없고 

폭행과 추행 사이가 어딘지 잘은 모르겠네요.  

이십대 후반인가 친구네 집에 있다가 

조금 늦은 밤 집에 돌아가는 길에 그 길이 좀 어둡긴 했어요

버스 정류장 가는 길이

어떤 남자가 가슴을 툭 치고 휙 지나가더군요.

처음에는 멍하다가 아니 이게 뭐지,  아니 저 새끼가 지금 내 가슴을?

처음에는 멍하다가 화가 나며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고 굉장히 기분이 나빴고..

오래도록 그 생각만 하면 화가 났고 

그 뒤로 밤길이 무서웠고...그러다가 차츰 잊혔고....

외국에서 일어난  me-too 현상

타임지 커버....



그게 누가 내게 심어준건지

성폭력에 대한 사건을 접할 때마다 

거길, 그곳을, 그런 못된 놈들을, 잘 피하지 왜 그렇게 되엇을까....

이런 말도 안되는 의식이 내안에 있어서 옷차림 생각도 하곤 했지요. 

성폭행 사건에 분노하면서도 슬쩍  피해자에게도 눈길을 주었다는 이야기지요. 

생각해보니 이게 얼마나 보수꼴통이며 무식한 생각이냔 말예요.

어느 책에선가 성폭력을 한번 당한 여성들이 

다시 또 그 상태에 서게 되면 똑 같이 당한다는 거예요.

왜 그래 바보같이...대항해야지 다시 또 그런 상황을 만들지 ㅁ라았어야지...

가볍게 생각햇어요.

그러니가 그런 일들 속에 배인 두려움 부끄러움 절망 ...

그런 것을 하나도 모르면서 아주 쉽게 내 생각대로 판단했다는 거지요.     

서지현 검사가 쓴 글 전문을 읽어보며

그제야 내가 단지 그런 입장에 처하지 않았을 뿐이지

 나도 당하게 되는, 여자들은 누구나 당하게 되어 있는, 

사회라는 것이 뼈저리게 각성 되더라는 거죠.     

누군가에게 죄질을 묻는 집단에서 조차

그것도 평범한 여자도 아닌 검사를  

세상에....그 여검사에게 추행을 하고 그것을 바라보는 남자들은 못 본 척....

그래서 그녀는 이게 환상인가...생각이 들었다는....

글을 읽고 나서야 아 이게 말 그대로

폭력이고 폭행이구나...몸서리치게 다가왔어요.  

그러니 그런 곳에서도 그러는데 그렇지 못한 힘없는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얼마나 심할까? 많을까?

성폭력은 단순히 성에 의한 폭력이 아니라

권력이 일으키는 가장 비열한 일인데요.  . 

가장 유치하고 치사하며 더러운 힘에 의해 저질러지는 권력질 말이죠.

힘이 더 세다고 해서 남자라고 해서

 아이구 세상에 온 우주에 단 두 가지 성...

남자 아니면 여자인데 그것이 무슨 자랑질이라고 

그게 권력이라도 정말 되는지? 

지가 좀더 힘이 세다고 욕망이 더 거세다고 

거기다가 그런 일을 겪는 여성들에게 쏟아지는 한심한 눈길들 좀 보세요.

멀리 갈 것 없이 제 눈길부터요.

어제 밤 늦게 틸레비젼에서 열 한 살을 성폭행한 운동코치가 나오더군요.

그 여성이 십 수 년의 세월이 흐르고 그 남자와 마주치는데

무서워서 도망쳐 나와서 가슴을 쥐어뜯다가 

그 남자가 여전히 아직도 어린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자신의 어린 시절 자료를  찾아가며 고소를 하게 되고 현재 재판중이더군요. 



 곡시 哭詩 / 문정희

—탄실 김명순 *을 위한 진혼가  

한 여자를 죽이는 일은 간단했다 . 

유학 중 도쿄에서 고국의 선배를 만나 데이트 중에

짐승으로 돌변한 남자가

강제로 성폭행을 한 그날 이후

여자의 모든 것은 끝이 났다 .

출생부터 더러운 피를 가진 여자 ! 처녀 아닌 탕녀 !

처절한 낙인이 찍혀 내팽개쳐졌다 .

자신을 깨워 , 큰 꿈을 이루려고 떠난 낯선 땅

내 나라를 식민지로 강점한 타국에서

그녀는 그때 열아홉 살이었다 .

뭇 남자들이 다투어 그녀를 냉소하고 조롱했다 .

그것도 부족하여 근대 문학의 선봉으로

새 문예지의 출자자로 기생집을 드나들며

술과 오입의 물주였던 당대의 스타 김동인은

그녀를 모델로 '문장 ' 지에

소설 '김연실전 '을 연재했다 .

그녀에게 돌이킬 수 없는 사회적 성폭력 ,

비열한 제 2 의 확인 사살이었다 .

이성의 눈을 감은 채 , 사내라는 우월감으로

근대 식민지 문단의 남류 (男流 )들은 죄의식 없이

한 여성을 능멸하고 따돌렸다 .

창조 , 개벽 , 매일신보 , 문장 , 별건곤 , 삼천리 , 신여성 ,

신태양 , 폐허 , 조광 **의 필진으로

잔인한 펜을 휘둘러 지면을 채웠다 .

염상섭도 , 나카니시 이노스케라는 일본 작가도 합세했다 .

그리고 해방이 되자 그들은 책마다 교과서마다

선구와 개척의 자리를 선점했다 .

인간의 시선은커녕 편협의 눈 하나 교정하지 못한 채

평론가 팔봉 김기진이 되었고

교과서 편수관 , 목사 , 소설가 늘봄 전영택이 되었고

어린이 인권을 앞세운 색동회의 소파 방정환이 되었다 .

김동인은 가장 큰 활자로 문학사 한가운데 앉았다 .

처음 그녀를 불러내어 데이트 강간을 한

일본 육군 소위 이응준은

애국지사의 딸과 결혼하여 친일의 흔적까지 무마하고

대한민국 국방 경비대 창설로 , 초대 육군 참모총장으로

훈장과 함께 지금 국립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

탄실 김명순은 피투성이 알몸으로 사라졌다 .

한국 여성 최초의 소설가 , 처음으로 시집을 낸 여성 시인 ,

평론가 , 기자 , 5 개 국어를 구사한 번역가는

일본 뒷골목에서 매를 맞으며 땅콩과 치약을 팔아 연명하다

해방된 조국을 멀리 두고 정신병원에서 홀로 죽었다 .

소설 25 편 , 시 111 편 , 수필 20 편 , 희곡 • 평론 등 170 여 편에

보들레르 , 에드거 앨런 포를 처음 이 땅에 번역 소개한

그녀는 처참히 발가벗겨진 몸으로 매장되었다 .

꿈 많고 재능 많은 그녀의 육체는 성폭행으로

그녀의 작품은 편견과 모욕의 스캔들로 유폐되었다 .

이제 , 이 땅이 모진 식민지를 벗어난 지도 칠십여 년

아직도 여자라는 식민지에는

비명과 피눈물 멈추지 않는다 .

조선아 , 이 사나운 곳아 , 이담에 나 같은 사람이 나더라도

할 수만 있는 대로 또 학대해보아라 .

피로 절규한 그녀의 유언은 오늘도 뉴스에서 튀어나온다 .

탄실 김명순 ! 그녀 떠난 지 얼마인가 .

이 땅아 ! 짐승의 폭력 , 미개한 편견과 관습 여전한

이 부끄럽고 사나운 땅아 ! 




『문예중앙 』 2016 년 겨울호에 실린 시니...이런 일들이 일어나기 전 시입니다.

 김별아는 탄실 김명순을 주인공으로 그녀에 대한 글도 썼군요. 

여전히 지금도 김명순...탄실이 고통당한 시대와 별로 다름이 없다는것에 대하여  

내 의식을 보며 깨닫게 됩니다.    



    

김명순(1896~?)은 한국 최초의 여류소설가로서 필명은 탄실(彈實) 또는 망양초(望洋草)라 했다. 그는 1918년 3월 《청춘》지 현상모집에서 이광수 고선으로 〈의심의 소녀〉가 당선되어, 조선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소설가가 되었다.

고선자인 이광수는 “이 작품은 구투를 완전히 탈각한 소설”이라 호평했고, 후세의 한 평론가는 “우리의 초기 소설들은 모두 ‘하더라·이더라·이러라’로 되어 있지만, 이 〈의심의 소녀〉에서는 한둘의 경우가 보일 뿐, 그 어미는 거의 다 ‘이다·하였다·뿐이다’ 등으로 되어 있고, 허식과 군소리가 전혀 없는 새로운 소설문장체로서 리얼리즘의 선구적인 작품”이라고 좋게 평가했다.

1911년서울진명여학교(進明女學校)를 졸업한 뒤, 1917년 잡지 『청춘(靑春)』의 현상소설에 응모한 단편소설 「의심(疑心)의 소녀(少女)」가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1919년 동경유학시절에 전영택(田榮澤)의 소개로 『창조(創造)』의 동인으로 참가하면서 본격적인 문필활동을 전개하였으며, 매일신보(每日申報)의 신문기자(1927)를 역임한 바 있고, 한때 영화에도 관여하여 안종화(安鍾和) 감독의 「꽃장사」·「노래하는 시절」 등에 주연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1939년 이후 일본 도쿄로 건너가 그곳에서 작품도 발표하지 못하고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정신병에 걸려 동경 아오야마정신병원[靑山腦病院]에 수용 중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소설 「칠면조(七面鳥)」(1921)·「탄실이와 주영이」(1924)·「돌아다볼 때」(1924)·「꿈 묻는 날 밤」(1925)·「손님」(1926)·「나는 사랑한다」(1926)·「모르는 사람같이」(1929) 등이 있으며, 시작품으로 「동경(憧憬)」·「옛날의 노래여」·「언니 오시는 길에」·「석공(石工)의 노래」·「시로 쓴 반생기」 등이 있다.

신문학 최초의 여류문인으로서 여성해방을 부르짖은 선구자적 역할을 하였으며, 여자주인공의 내면심리를 치밀하게 묘사한 소설들을 많이 남겼다. 개인적인 생활의 고뇌와 사랑의 실패 등으로 인하여 불우한 삶을 살았으나, 창작집 『생명의 과실(果實)』(1925)을 간행하여 문단의 주목을 받기도 하였다.(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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