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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Mar 13. 2018

삼월에 떠나셨다

큰오빠

                                                             

강... 강물. 강 속의 물, 물이 가득한 세상.... 물의 결과 바람의 결, 그 결 결들이 햇살과 부딪히며 부서지며

반짝이는 형형의 보석이 된다.  

그 잘디잔 빛들의 현란함이라니. 나무, 숲, 강, 사람들에게 뿌려 돋게 할 봄의 움들이  혹 저 빛나는 것들 사이에서 결결이 숨 쉬고 있는 것일까?

겨울에도 여전히 햇살은 내리쬐어 강물을 비추었을 테지만 이즈음의 강물은 확연히 다르다.  저렇게 부드럽고 아름답게 움직이는 것들이라니

장구한 시간 속에서 한 번도 그치지 않고 내보였을 몸짓.

그 한량없는 자태들이  삶의 멀미를 그치게 한다.

한강 물살이 햇살과 함께 빚어내는 은빛 일렁임은 

아, 눈부셔, 봄이네. 를 저절로 중얼거리게 한다. 

투명한 햇살은 마에스트로, 흔연하고 부드러운 바람은 오케스트라, 

고요하게 흘러가는 강물은 봄만이 빚어낼 수 있는 순전한 악상. 

그리하여 빛나는 물살의 편린들은 틀림없이 강림하시는 봄의 여신이 휘날리는 옷자락, 

그 모든 것들이 합하여 거대한 플로어가 되고 화려한 왈츠의 제전이 시작된 듯싶다. 

실제 깊은 땅속 보이지 않는 곳에서 움터 오르는 여린 순이나 나무의 꽃눈보다 

오히려 저 빛나는 은빛 물살은 봄의 생기로 가득 차고 발랄하다. 

초등학교 일 학년 즈음이었을까,

따악 이때만 한 계절이었다. 

서울보다는 훨씬 더 봄의 기운이 이르게 오는 남쪽인데도 내 고향 보성은 

지대가 약간 높아 봄이 아주 짧은 곳이었다. 

봄 오나, 기웃거리며 옷소매 깃 여미다 보면 여름이 와있었다. 

더불어 근접한 바다 탓에 안개는 자주 출몰했고 그 안개 덕에 

차 맛이 깊어지는 곳이다. 

엄마 뱃속에서부터 다니던 예배당은 옛날의 예배당이 거의 그러하듯

약간 높은 산 위에 홀로 있었다.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호젓한 산길을 걸어가노라면 

진한 소나무 향기처럼 무서움도 짙게 풍기는 길이었다. 

그래서 누군가와 꼭 함께 그 길을 가곤 했는데 그날은 혼자였다.

혼자라는 사실을 모르는 채 무심코 걷다가 혼자구나, 라는 사실을 인지한 순간의 공포를

무어라 표현해야 할까,

사위는 따뜻한 햇볕이 환하게 내리비치고 있어 밝고 환했지만 또한 무섭도록 고요했다.

혼자다. 무섭다. 가슴 도근거리는 소리가 귀에 들려온다. 

어린 발자국이 소롯길 스치는 소리에도 온몸이 긴장한다. 

달리고 싶지만 쉬 달려지지도 않는다. 다리는 갈수록 뻣뻣해 온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붉은 흙은 아마 눈이 얼어 있다가 녹으면서 같이 무너져 내린 흙이 

아니었을까, 혹 순간의 착시 인지도 모른다. 

왜냐면 그 상황이 썩 그리 논리적이지가 않기 때문이다.

약간 휘돌아진 산길을 막 벗어났을 때였다. 

갑자기 흰 소복을 입은 할머니들이 나타났다. 셋, 넷? 몸은 아주 자그마한,

모두 하나같이 머리에 흰 수건을 쓰고 있었다. 

그 할머니들이 붉은 흙구덩이에 앉아서 

무엇인가를 먹고 있었던 것이다. 

그 순간의 공포는 지금도 매우 선명하다. 

숨이 훅 들이켜진 뒤 내 쉬어지지 않았고 그 놀라움이 얼마나 컸던지 

잘 걸어지지도 않던 다리가 마치 날기라도 하듯 저절로 달려졌던 것이다. 

두 번 정도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고 숨도 쉬지 못하면서 달리고 난 후에야 

산길이 끝나고 마을길이 보였다.

할머니들은 아마 무덤에 사람을 묻고 오는 길이었는지도 모른다.

흰 소복에 머릿수건, 틀림없이 젊은이들은 잰걸음으로 걸었을 것이고 

나이 드신 할머니들은 뒤쳐져서 쉬는 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에 그렇다 하더라도 왜 하필 붉은 흙구덩이 속인가 말이다. 

햇살 따스하게 비치는 마르고 건조한 풀밭 위를 놔두고,

그리고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내 오른쪽 그 할머니들이 앉아있던 쪽은 분명 응달진 곳이었다.

햇살은 따스했지만 그늘진 곳에서는 아직도 옷깃을 여며야 하는 날씨였는데..... 

봄의 왈츠가 시작되는 눈부신 강줄기를 드문드문 바라보면서 

나는 오래 전의 그 서늘함을 기억해 낸다.  

공포와 함께 각인되어 있는 붉은 흙구덩이 속의 할머니들, 

사실이던 사실이 아니던 그것은 이미 중요하지 않다.

새로운 조합을 통하여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해내는 

기억의 저장창고는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곳이니, 

할머니들이 앉아있던 그 붉은 흙구덩이는 

내게 언제나 죽음과 함께 무덤을 연상시키곤 했다. 

아주 조그맣고 섬세하지만 무섭기도 한 이야기다.  

잘 들여다보면 거기 사후의 세계가 설핏 보이기도 한다. 

부자의 잔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던 거지와

날마다 잔치상을 차리던 부자가 죽었다. 

그 둘 사이의 거리가 사후에서는 얼마나 멀던지 부자가 말한다. 

거기 그 거지 나사로의 손끝에 물 한 방울만.... 

얘, 너는 살았을 때 온갖 복을 다 누리고 저 거지는 온갖 불행을 다 겪었다. 

그래서 그는 여기에서 위안을 받고 너는 대신 고통을 받는 거란다.

죽음 뒤의 세계가 있다면, 

그리고 모든 사람이 그것을 인지한다면 세상은 얼마나 달라질까, 

세상에 남아 있는 자가 

죽은 자를 위하여 하는 모든 행위는 

엄밀하게 본다면 

자기 위안이고 자기 위로다.  

영혼이 떠나고 다시 物이 되어버린 육체를 상상할 수 없는 높은 온도로 

녹여내고 남은 뼈를 다시 가루 내어 썩지 않은 아름다운 항아리 속에 넣어

홀의 정면 가장 눈에 잘 띄면서도 다른 뼈들과는 전혀 다른 위치에 넣는다 한들

그리하여

남아있는 자의 애달픔이나 그리움, 슬픔은 조금 상쇄될지 몰라도

죽은 자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그저 그 앞에서 아주 작은 끈 하나를 연결시키며 떠난 자를 기억한다. 

큰오빠는 언제나 전화기 저편에서

“나다.”라고 했다.

막내야, 나야 나 알지? 큰오빠? 가 생략된 그 두 마디.

삶과 죽음처럼 분명한 것 하나는 

죽음 뒤의 세계는 온전히 죽은 자의 몫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삶 역시 그저 내 것이라는 것,  

떠난 자를 사무치게 그리워하고 그를 생각할 때마다 날카로운 칼날에 순간 손이 벨 때처럼  

그 서늘함이 여전하다 할지라도

산사람은 살게 되어 있는 것이다.

큰오빠 세상을 떠난 지 벌써 일 년이 흘러갔다. 

무서운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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