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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May 11. 2018

<자로일기 >

180509


그러니까 나는 무한 긍정의 소양이 많은 사람이다. 

복지관 카페 유리창으로  눈부신 오월의 햇살이 그득하다. 

블라인드가 반쯤 내려와 있어서 햇살은 자그마한 창가 쪽 꽃밭과 

맨발에 샌달 신은 내발에만 와 일렁인다. 

푹신한 의자에 허리를 기대고 마냥 햇살을 즐기는 맨발이 아주 좋아 보인다. 

그리고 그 맨발의 주인이 나라는 게 더 좋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바라보거나 혹은 생각하지도 못하는 소소한 것에서 ‘좋음’을 찾아내는 

소확행小確幸의 대가...라고 해도 괜찮지, 나는 나에게 말을 건넸다.    

당연히 자로랑 앉아 있는 것도 좋았다. 

자로의 수업시간 까지는 시간이 한참 남아 있어서 

우리는 아주 천천히 복지관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싼 가격 때문인지 사람이 많다. 

그러나 젊은이는 별로 없고 나이든 사람들과 자로와 비슷한 아이들

그 아이들과 함께 하는 사람들....

전형적인 보성 촌사람이라 내가 지니고 있는 성향이 다 촌스럽고 소박한데

이상하게 비위만은 그렇지 못하다. 

시각이 입맛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나 할까, 

늙은 할아버지들을 위시해서 청결치 못한 사람이 눈에 띄면 

급 비위가 약해져서...

결국 몇 젓가락 끄적이다 말았는데 웬걸, 자로가 의외로 밥을 잘 먹는 것이다.

너무 많이 먹나.... 걱정이 될 정도로...

나도 느긋하니 사람들 구경하며 가끔 반찬도 얹어줘 가며

식사를 마치고 옥상공원을 좀 걸으며 시간을 보니 세상에, 

밥 먹는 시간이 한 시간이 되었다.

 ‘자로야 우리 한 시간이나 밥을 먹었어.’

내 말 뒤에 자로가 아주 크게 웃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이십여 년 넘게 자로를  봐왔지만 

그렇게 활짝 웃는 것은 처음 보았다. 우리는 한참 그렇게 웃었다.

어떤 의식이나 계획된 의도 없이 그저 함께 웃는 웃음은 맑다. 

맑음은 서로를 투명하게 비추어내 서로간의 벽을 허물어낸다. 

그 순간 우리는 한 발짝 더 친근해졌다.     

바둑 장기 두는 곳이 비어있다.

머리에 반짝 등이 켜진다.

자로야 우리 오목 두자....

가로세로 대각선 다섯 개를 몇 번 하자 흥미 없다는 눈초리다. 

핸드폰 속에서 오목을 찾아서 돌 놓기를 시켜보니 아주 좋아한다. 

가장 낮은 급을 해주고 혼자 해보라고 했다. 

그게 소심함일까 두려움일까, 혹은 요즈음 사람들에게 흔한 결정 장애 같은 것일까?

아주 사소한 일도 쉽게 하지 못한다.

신발을 벗어들고 신발장에 넣기 까지 몇 번을 망설이다가 

누군가 곁에서 넣어 하면 그제야 넣는다. 

처음 오목을 둘 때도 그러더니 저혼자 몇 번 해보더니 제법 편하게 놓는다.

그러다가 내가 다시 조금 가르치면 돌을 들고 또 망설이기 시작한다.

그래서 혼자 생각했다. 여러 번 가만두다가 한번 정도 가르쳐야지....

자로가 오목을 나와 함께 둘 수 있는 날이 올까?

아니 그보다 패배... 승리.... 그 단어를 이해할 수 있을까? 

이해는 한다 치더라도 이겨야 된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그러고보니 자로는 사람들에게 근본적으로 심어져 있는 욕심일지 질투일지...

이런 부정적인 감정들은 아예 없는 지도 모른다. 

그러니 오목이 아니 그 이기고 짐이 무슨 상관이랴...         

수업을 끝낸 자로와 도서관 제일 작은 어린이들 방에서 한 시간 가량 책을 읽다.

자로는 글을 읽긴 하지만 전혀 말을 못한다. 

 겨우 내는 소리라고는 녜~가 전부....

그래도 이해는 한다. 

질문하며 가리켜 보라하면 한다. 

세네 살 쯤 되었을까, 아이가 엄마랑 와서 놀기에 

이리와 형아랑 책 읽자....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엄마와 읽었던 책 한 권을 들고 온다. 

글씨는 거의 없는 그림책....물고기를 좋아해....

나는 사실 그 아이 엄마가 내가 동화책 읽어주는 것을 보고 배우시오, 는 

못하지만 배웠으면 했다. 매우 간단한 스킬을 사용만 하면 점점 깊어질 것이니,  

 오랜만에 동화책 읽는 혹은 보는, 혹은 추리하는 실력을 발휘하니 나도 즐거웠다. 

제법 말을 잘하는 아이가 유심한 눈길로 자로를 바라본다. 

그 어린 눈에도 자로가 다른 사람과는 다르다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자로의 식구들은 이런 눈초리들을 얼마나 많이 봐왔을까?, 

일차적 사안보다 더 사회화된 이차적 고통이었을 것이다. 

쉬엄쉬엄 나도 가져간 책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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