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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May 16. 2018

자로일기

<180515>


“자로야 오늘은 우리 집에 가서 점심먹자”

“녜”

표정이 환하다.

자로에게도 어둡고 슬픈 그리고 고독해 보이는  특유의 표정이 있다.  

감추지 않는 민 낯, 페르조나에 익숙한 우리들은 절대 지닐 수 없는 자로의 표정은 

자로가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순식간에 알려준다. 

그러나 자로의 표정이 환할 때, 자로의 장애는 사라진다.

왜 사람들이 즐겁고 명랑한 삶을 영위해야 하는가를 무언으로 설명해주는 것 같다. 

계단을 성큼성큼 오른다. 

“:여기가 우리 집이야.“

”녜.“

뭔가 신기하고 재미난 표정 

만화영화를 틀어주며 말했다. 

“이것 보고 있어. 맛있는 떡볶이 해줄게”

자로는 만화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은 듯 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만화영화에도 집중을 못한다면....마음이 좀 스산하다. 

쌀국수와 떡복이를 해서 먹는데 갑자기 고개가 끄덕여졌다.

느리게 밥을 먹는 자로 앞에서 내가 존 것이다. 

잠을 심하게 설치기는 했다. 

이제 정말 늙어가는지 깜빡 잠이 들었다가 깨면 쉬 잠이 찾아들지 않는다. 

생각의 바다가 한도 없이 펼쳐지는데 상당부분 자로에 대한 생각이 많다. 

과연 의미있는 일일까,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아닌가, 

무엇을 해도 아까운 이 봄날에...... 

그렇다면 전라도 말로 그깟 “푸진 돈”ㅡ

(여기에서 푸진 돈은 작고 보잘 것 없는 것을 말함인데 

원래 푸지다는 푸짐하다에서 파생한 언어로 양가적 의미로 사용된 건지도 모르겠다,)

을 벌기 위함이라면 너무 찌질한 삶이 아닌가,  

아람누리 전시관에서 아이들을 향한 전시가 있어서 갔더니 월요일이라 휴관이다.

난감하다. 어딜 가야하나....

미술관과 도서관 사이의 자그마한 틈새 전시관에서 동양수예 전시회를 한다. 

얼마나 가느다란 수로 섬세하게 수를 놓았는지 거기다 커다란 천에 아주 자그마한 야생화....

여백이 좋다. 

자로야 좋지?

녜~

대답은 하지만 과연 자로는 ‘좋음’을 아는 걸까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가다보니 평소에 그렇게 지나다녀도 보이지 않던  장애인 도서관이 있다. 

도서관에는 아무도 없다. 그리고 시각장애인을 위한 책읽어주는 방이 따로 있다.

잘 됐다. 

“곰 사냥을 떠나자”가 눈에 띄었다. 반복적인 문장과 단어가 많은 ...그래, 

동화책을 들고 그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동화책을 자로와 함께 읽기 시작했다. 

곰 잡으러 간단다 / 큰 곰 잡으러 간단다/ 정말 날씨도 좋구나 /우리는 하나도 안무서워/

그러나 정말 좋기만 할까,

위로도 갈 수 없고 밑으로도 지나갈 수 없는 길들이 나타난다. 

사각서걱사각서걱사각서걱

바스락부시럭바스락부시럭바스락부시럭

덤벙텀벙덤벙텀벙덤벙텀벙

휭휘잉휭휘잉휭휘잉

아무도 없어서 자로와 함께 의성어 읽기를 했다.

대박!!! 자로가 읽는다. 아 그렇지 자로가 말을 할 수가 있구나.

한 단어씩 천천히(잘 안되는 발음이 많기도 하지만) 

나는 흥이 나서 목소리가 높아졌고 

강약이 자심해졌고 칭찬뻥이 박수와 함께 세차게 되어지더라.    

그렇다 곰사냥을 떠난 사람들처럼...

가득한 풀이 가로막고 숲이 가로막고 진흙탕이 가로막고 눈보라가 가로막고 

물이 가로막아도 갈수 있겠다.

으스스한 동굴에서 커다란 곰을 만나 사냥은 커녕 쫓기듯 돌아올 때도 

여전히 세상은 풀이고 숲이고  눈보라 휘몰아치지만 집앞 대문까지 곰이 따라 오지만

그들은 이불속으로 들어가 숨을 수 있지 않더냐,  

+어라, 아니지, 

우리 둘이는 목소릴 합쳐 책을 읽었고

신나하는 나를 자로가 어른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그렇구나, 많은 것을 하려 하지 말고 이렇게 한권만이라도 수많은 날을 같이 읽다보면 

인지력은 강화되고

자로가 말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기적에 대한 희망이 생겨난 날 

매우 기쁜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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