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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May 19. 2018

비오는 날 여행

봉평

비가 내리는 날, 

다음날도 종일 비가 올 거라는 예보가 있었지만 여자사람 여섯이 여행을 갔다.

비에 심취한,

언제나 일기예보를 흘깃 거리며 비를 기다리는  비 오타쿠인...나야....비가 와서 금상첨화다.

올해 여름날 장맛비 오시는 날. 비옷하나 걸쳐 입고 장화신고 

그럴 때는 공원도 숲도 사람이 거의 없으므로 혼자 마음껏 헤메리~~~

이런 게 마치 꿈이라도 되듯이 가슴에 품고 있는 사람이니....  

   

스타랙스 12인승을 육인승으로 만드니 어떤 대형 승용차보다 널찍하고 편안하다. 

나직하고 그윽하게 비 오시는데 

오대산 전나무 숲길을 향하는 길 

산허리 산봉우리 산그리메..... 

그 산골짝 어디에선가 희디흰 구름들 마치 솟아나듯이 어여쁘고 아득한 차림으로 걸쳐져 있다.

이제 신록을 벗어나 녹음의 세상으로 걸어가는 나무들...

색의 궁극인 초록의 세계에 흰빛 구름은 신비로움을 드리운다.  

어서 오시게...내 품안에 드시게....

친근하고 다정하게 부르는 자연의 소리가 구름 속에서 들려온다.  

카르페디엠! 

나는 심각할 정도의 종말론자여서 모든 존재하는 것들에 실재하는 죽음을 찾고 

그 죽음가운데서 안온함을 누리기도 하나 

오, 카르페디엠~~ 

조그마한 차창문을 통하여 구름을 바라보는 이 순간들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차안에서 이루어지는 다정하고 친근한 벗들과의 담소는

가끔가다 어쩔 수 없이 터져 나오는 커다란 웃음소리들은 또 얼마나 므훗한가,

차안에 음식과 커피 차가 풍성하면서도 

점심에 무엇을 먹을까 궁리하는 즐거움도 좋다.

오늘 봉평 장날이라던데 들려볼까? 좋지, 우리 메밀전병 수수부꾸미 먹자, 

목표를 향해도 좋고 목표를 떠나도 좋다. 

휴게소에 들리니 따끈한 국물이 당겨 국수를 먹고  막국수 라면 비빔밥 ...

느긋하게 봉평 장터 입성....


천천히 걷노라니 장소에 대한 인지력이 발현한다.  

봉평장터는

시골 사람들에게 파티장이고 카페이며 정보를 교환하는 세미나 장소이자 

농사일 하다가 허리를 펴는 여가의 곳이며

사람과 스치며 사람을 느끼는 갤러리라는 것, .   

비가 오락가락 하는 날씨에 모종장이 펼쳐있다.

아이고 저 풀들은 어찌 저리 이쁘다냐? 

고추 수세미 깨 고구마 토마도 옥수수 오메~ 

생각해보니 저들의 생애를 나 훤히 꿰뚫고 있으니  더 이쁜 것이다.

조금 있으면 파릇하게 달릴 고추들 노오랗게 피어날 수세미 꽃들 그리고

싱그럽게 매달릴 오이 푸르다가 빨갛게 익어갈 탱글탱글한 토마토들

그러니까 저 작고 푸른 것들의 전 생애를 나 이미 알고 저 조그마한 풀에서 풀만이 아닌 

그들의 열매까지 생각할 수 있으니 더욱 사랑스러운 것이다. 

쥔장 사진이 붙여져 있는 포장마차로 들어갔다.

시어머니 솜씨를 며느리가 이어서 하는 맛집이었다.

다들 조금도 배가 고프지 않아서

메밀 모둠접시를 시켰다. 

시어머니...강원도 사투리가 구수한 할머니께 올챙이국수가 뭔지 물었다.

일행 중에도 올챙이국수를 먹어본 사람이 없었다. .  

쥔장 할머니께서 안 먹어본 사람은 시키지 말란다. 아무 맛이 없는 국수라며...

평양냉면 맛 같은 맛인가?

한 그릇 줘보세요. 먹어보게요.

양이 좀 작다 싶은데 정말 무맛이다. 

조선장에 양념을 한 간장을 섞어 갓.....김치와 먹으라고 하시는데 

이 갓김치 맛이 또 특이하다.

뭐랄까, 갓 냄새는 분명 나는데 미묘하게 나물 같은 느낌과 

장아찌 같은 맛이 섞여 있는, 식감도 김치라고 하기에는 부드럽고 나물이라고 하기에는 질기다. 

그러나 갓 향기는 많이 난다.

물론 질문을 한다.

이 올챙이국수는 어떻게 만든 거예요?

할머니 신나셨다. 아니 이미 내가 올챙이국수에 대해서 물을 때부터 신이 나셨다.

옥수수로 만드는데 이 옥수수가 여물기전 아주 부드러운 새끼일 때 그 알을 긁어서 만든다는 것,

그래서 여름철에 막 만들어 먹을 때는 옥수수의 비릿한 향기와 함께 지금 보다 훨씬 더 보드럽다는 것, 

전분으로 죽을 쑤어 구멍이 몇 개  난 바가지에 넣어 물에 떨어드리면 올챙이 꼬리모양이 생겨난다는 것,

(당연히 박으로 만든 바가지겠지)

국수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부드러워서 젓가락으로 집히지도 않아 수저로 먹어야 한다. 

그러니 국수라는 단어는 맞지 않은 게 아닌가,


그런데 먹다보니 그 無맛의 맛이 썩 괜찮다.

사람의 격도 소란스럽고 요란한데 있는 게 아니라

달빛 같은 적요함과 고요함에 있듯이

음식의 격도 이리 담박하고 이리 조촐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런 음식을 먹다보면 사람의 성품도 저절로 순후해지지 않을까,

음식 맛이 스승이 되어 극악한 탐욕스러움이 순화되지 않을까,

무맛의 맛, 

이 적은 맛이 우리에게 성장에 대한 무조건한 욕망을 절제시켜주지 않을까,


메밀전도 그렇다.

배추 한가닥 넣고 기름도 두른둥 만둥 아주 얇게 부쳐낸 메밀전 

자극이라고는 거의 없다. 

소리도 없이 조용히 씹히면서 조용히 살아, 

부드럽게 혀에 와 닿으며 순해도 괜찮지? 

요란하지 않아도 생은 충분히 견딜만 해... 속삭인다, 


그렇다. 

여행은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는 일이다.

보이지 않는 것들의 속삭임을 듣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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