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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Aug 02. 2018

어느 가족

고레다 히로카즈


가끔 드라마를 보다가 화장을 짙게 한 채 잠자리에 들고 이른 새벽 전화소리에 깨어났음에도 여전히 파운데이션으로 도배한 배우들의 얼굴을 보면 배우라는 이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배우가 배우여야 하지 배우가 미인여야 하고 예뻐야 한다는 것에서도 벗어나지 못하면서 그게 무슨 배우냐...그 정도도 자신을 버리지 못하면서 무슨 연기냐.

가면은커녕 나를 벗어던진 채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는 게 연기가 아니더냐. 하긴 이런 상식을 지닌 사람이라면 그런 행동을 하지 않겠다. 

이런 상식은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극명하다. 살아갈수록 솔직하다는 게 얼마나 사람을 자유롭게 하는지,  못하는 것, 없는 것이 자랑스러운 일은 아니나 그게 또 부끄러운 일은 아니라는 것을 터득하는데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으니, 배우도 미모가 아니라 연기를 보여야 한다는 사소한 일, 상식을 그들은 아직 깨닫지 못한 탓이리.  


그런 의미에서 고레다 히로카즈의 <어느 가족>에서 주인공인 안도 사쿠라....는 진짜 배우였다. 

엄마라고 불렀습니까? 라고 묻는 형사의 질문에 맨얼굴을 손으로 한없이 닦아내는 모습은 관객에게 수많은 답을 대신하게 했다. 

-엄마라고 불러야 엄마인가요? 나를 엄마라고 부르지 않았어도 우리는 사랑했어요. 그렇게 말로 되뇌어져야만 사랑인가요? 생각해보니 엄마라고 부르지 않았는데 정말 그 아이들은 나를 엄마라 여겼던 것일까요?‘ 난 정말 그들을 사랑했어요. 그런데 정말 사랑이었을까요? 내가 원했던 삶은 아니었어요. 그러나 살다보니 여기 까지 이렇게 되어 있었어요. 뭐죠? 인생이란 것이? 도무지 알 수 없어요. 당신은 아신가요?-  

 

영화를 본다는 것은 소설이나 시처럼 타인의 인생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그중 영화는  가장 주인공과 체화되기 쉬운 장르이다. 그렇다. 늦은 밤 혼자 한가한 거리를 달리는 기분. 텅 빈 주차장에 주차를 하는 기분. 사람 별로 없는  영화관 앞에서 예매한 티켓을 출력하는 기분. 그리고 손가락으로 셀만한 사람들과 드문드문 앉아서 영화를 기다리는 기분은 먼데 여행을 가서 낯선 풍광 앞에서 입을 벌리는 일과 그리 다르지 않다. 삶을 앙양시키는 충분조건이 되고도 남는다. 그리고 제법 근사하기 까지 하다.  

예순이 넘은 사람이라도 이럴 때는 자신을 근사하게 여겨도 된다고 생각한다.

나만 근사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누구라도 나는 그런 상황 속 사람이라면 근사하게 여겨 주고야 말테다. 


그리고 그 영화가 정말 찌질한 사람들을 내세운ㅡ집안은 다만 가림막이 있을 뿐이지  노숙자의 것들과 그리 다르지 않다. 남자아이와 주인공남자는 마트에서 자잘한 생필품을 협업?하여 훔친다. 남자는 일용직 잡부....비오니까 가지말까? 몸도 안좋은데 하며 ...눈치를 보는, 여자는 일을 하는데 위킹셰어를 하다가 그것도 곧 잘리고

집주인인 할머니는 연금을 타고 그 할머니를 사랑하는 손녀는,  그런 게 우리나라도 있을까? 거울로 자신이 몸을 보여주는....직업을 가지고 있다. 그것도 부족하여 다섯살 아이...부모에게 폭력을 당하고 없어져도 그 부모가 신고도 하지 않는 아이가 가족이 된다. 그러니 아무도 그런 사람들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을 그런 누추한 생활이 펼쳐지는데.....

그런데 그들의 그 누추한 삶속에서 무수하게 반짝이는 영롱한 별빛이 막 쏟아져 내릴 때(클리세한 표현이지만)그 별빛이 누가 뭐래도 너무나 분명한  사람 사이의 따뜻한 정과 사랑일 때, 그리고 그사이로 별이 되지 못한 외로움이 간간히 스며들 때, 스토리를 이어가기 위한 혹은 설명하기 위한 장면들이 나중에 좀 진부하게 펼쳐진다 하더라도 충분히 사랑할만해서 가슴속에 그들의 사랑이 먹먹하게 차올라서 영화에 대한 사랑이 내 삶에 대한 사랑으로 이어지는 것 같을 때. 

사랑이야기가 한마디도 나오지 않는데 눅지근하게 다시 찐 호박떡 먹은 손가락처럼 온통 사랑이야기로 범벅이 된 영화 앞에서 감정을 생각하곤 한다.

감정은 우리네 몸에서 자주 떼어 내 선반위에 얹어두어야 할 그 무엇이다. 그 무엇이 우리 안에 좌정해서 자리가 너무 넓어지면 사람이 형편 없어지기 십상이다. 아 드물게 감정이 내키는대로 살아도 그 감정이 아주 온유하거나 타인을 향하여 열려있는 사람은 제외하고 나 같은 일반적인 사람의 이야기로, 영화를 보러 갈 때면  선반위에서 감정을 내려 든든하게 장착을 하고 가야한다는 것, 그리고 영화 앞에서 그 감정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다. 마치 영화가 빗줄기라도  되는 것처럼 감정은 물에 목마른 식물처럼 그렇게 하면 소쇄된 감정은 습기를 머금고 작아지며 고요해지고.....

그래서 오래된 작가 최일남의 글에서 만난 시 ㅡㅡ   

갈 때는 그냥 살짝 가면 돼/ 술값은 쟤들이 낼 거야 /옆 자리 앉은 친구가 귀에 대고 소곤거린다 /그때 나는 무슨 계시처럼 /죽음을 떠올리고 빙긋이 웃는다 /그래 죽을 때도 그러자 /화장실 가는 것처럼 슬그머니 /화장실 가서 안 오는 것처럼 슬그머니/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고 할 것도 없이/빗돌을 세우지 말라고 할 것도 없이 /왁자지껄한 잡담 속을 치기배처럼/ 한 건 하고 흔적 없이 사라지면 돼/  아무렴 외로워지는 거야 / 외로워지는 연습 / 술집을 빠져나와 /낯선 사람들로 가득한 거리 걸으며 /마음이 비로소 환해진다 //갈 때는 그냥 살짝 가면 돼 ㅡ최일남은 잘빠진 시라고 했지만ㅡ나는 시처럼 마음이 환해졌다. 

영화를 본 감정이 나를 살짝 만들어 시의 깊음으로 들어가게 해주었다고나 할까, 

하긴 그 순번이 바뀌어 먼저 시를 읽었다면 반대의 말을 적을수도 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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